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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크 Mar 08. 2020

2020 세계 여성의 날, 추천하는 여성영화 24선

작년 여성영화 추천 글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여성의 날은 1908년 열악한 작업장에서 화재로 불타 숨진 여성들을 기리며 미국 노동자들이 궐기한 날을 기념하는 날로, 1975년부터 매년 3월 8일  UN에 의하여 공식 지정되었다.

작년과 달리 올해는 큰 맘을 먹고 3월 8일에 맞게, 8 주제 * 3 영화 추천 글을 써봤다. 평소에 내가 여성영화를 파악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을 주제로 묶어보았다. 대부분의 영화는 극장 혹은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감상 가능하다.(왓챠/네이버시리즈온/퍼플레이)

24개의 여성영화와 함께 3월을 보내보는 건 어떨까.




1. 일초에 아흔 번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인 벌새는 일초에 아흔 번 날갯짓한다고 한다. 멈춰 있는 것처럼 보여도 누구보다 부지런하게, 누구보다 간절하게.
영화 속 미성년, 특히 소녀는 스펙터클로 소비되었다. 남자 주인공의 성장 서사에서 소녀는 첫사랑이라는 역할이자 아름다운 추억에 머무는 이미지였다.
그러나 최근 한국 영화의 여성 감독들은 소녀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소녀는 멈춰있는 이미지가 아닌 살아있는 몸의 주체가 된다. 어지러운 세상에 홀로 놓인 소녀는 삶이 자신의 것이 아닐 때도 모험한다. 온몸으로 날갯짓하는 주인공은 누구도 아닌 스스로를 진동한다.


<벌새> - 김보라, 2019

1994년 중학생 은희는 사랑받길 원하고 그의 곁에는 사람들이 지나간다. 자신의 궤적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지만, 은희는 여전히 궁금하다.

<벌새>는 우리가 잊고 살았던, 잊기 위해 살았던, 살기 위해 잊었던 질감을 소환하고 어루만진다.

긴 여정 위에 선 은희가 미소 짓기를 나는 간절히 바라고, 끝내 웃지 않는 그 얼굴이 나는 참 위로가 된다.


<걸스온탑> - 이옥섭, 2017

우희와 그녀의 이별 이야기. 짧은 단편이지만 볼 때마다 힘이 난다.


<도희야> - 정주리, 2014

경찰인 영남은 서울에서 작은 어촌마을로 쫓겨나고 그곳에서 도희를 만난다. 폐쇄적인 마을에서 고통받는 도희를 무시하고 싶지만, 마음이 쓰인다.

<도희야>는 각기 다른 이유로 삶이 버거운 두 사람의 관계 맺기이자 연대에 대한 영화이다.





2. 이상한 노크

어딘가 이상한 여성 인물에게 매력을 느낀다.이들은 가부장제의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다. 그렇기에 새로운 방향으로 탐색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다.
 여자는 왜 이상한 행동을 할까, 왜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을까.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가 노크한다. 문을 열지 않으면 부수고 들어올지도 모른다.


<성냥공장 소녀> - 아키 카우리스마키, 2001

성냥공장 노동자 이리스는 순종하면서도 욕망한다. 얌전해야 할 여자가 어긋난 행동을 할 때, 그는 악녀가 되고 마땅히 처단당한다. 하지만 이리스는 자신을 소멸시키려는 바다의 물살을 거스르며, 그러나 만끽하며 걷는다.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 - 페드로 알모도바르, 1988

사랑, 딱 죽기 직전의 유해함에 대하여.

페파는 연인의 부재에 잠도 자지 않고 그를 찾아 나선다. 비겁한 남자들로 비롯된 신경증에 골머리 앓는 세 여성의 코미디이자 해방극.


<에이프릴의 딸> - 미셸 프랑코, 2019

에이프릴과 딸은 '진정한 여성'의 자리를 쟁취하기 위해 돌진한다. 정상 가족의 신화를 해체하는 대신, 그 시스템 안으로 포섭되고자 고군분투한다. 그로 인해 여성성이 만들어지는 구조를 마주한다. 에이프릴의 건조한 광기는 가부장제의 도덕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3. 거울 앞에 선

생애 최초의 사랑은 거울 앞에서 실패한다. 엄마와 내가 하나가 아니라는 좌절에 이르러야 ‘나’를 인식한다.
어떤 영화의 인물들은 여전히 거울 앞에 서 있다. 실패를 앞에 둔 엄마와 딸은 어떻게 웃을 수 있을까.


<비밀은 없다> - 이경미, 2015

갑자기 사라진 딸 민진을 찾는 연홍은 생각하기 시작한다. <비밀은 없다>는 여성영화로서 다양한 발견이 가능한 영화이다. 특히 엄마인 연홍과 딸 민진 사이를 흐르는 감정은 무척 독특하다.


<영하의 바람> - 김유리, 2018

영하의 세계는 차곡차곡 무너진다. 마땅히 영하를 보호해야 할 엄마 은숙은 대답이 없고, 영하는 이해할 수 없다.


<미성년> - 김윤석, 2019

<미성년> 속 네 여자는 역할을 딛고 각자에게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로서 행동한다. 서로가 서로를 역할로 종속하지 않고 마주 선다. 그 과정에 엄마는 딸이 되기도 하고 딸은 엄마가 되기도 한다.



4. 목마른 자가 우물을 만났을 때

오래도록 금기시되어 온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영화들이다. 욕망의 대상이었던 인물이 주도권을 되찾았을 때, 우물로 달려갈 뿐이다.


<더 페이버릿 : 여왕의 여자> - 요르고스 란티모스, 2019

정신없는 욕망의 변주. 영화 <더 페이버릿>을 보고 나면 욕망의 폭발하는 운동성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18세기 영국 역사 속 세 여성은 개인적이자 정치적으로 서로를 욕망한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 셀린 시아마, 2019

사랑과 예술에 비춰지다 이내 서로를 응시하는 여성들. 카메라와 주인공과 관객의 시선이 '여성적으로' 합일하는 영화는 정말 드물고 소중하다.

뿐만 아니라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레즈비언, 여성 예술가, 임신 중단, 결혼제도, 연대 등 영화에게 바라던 여성의 거의 모든 것을 담아낸다. 셀린 시아마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밤치기> - 정가영, 2017

정가영은 꾸준히 스스로 대상이 되어 카메라 앞에 앉는다. 밤과 여성 사이 의도적으로 부가되는 섹슈얼리티가 아닌, 여성 자신이 섹슈얼 텐션을 조성한다. 하고 싶은 말은 직접 하는 불순함과 약간의 꾸질함. 그는 어디에나 간다.



5. 글 쓰는 여자

자신의 삶을 예술로 남기는 여성들은 줄곧 단절되어 있던 실을 잇는다. 그것은 과거와 현재, 세상과 나를 여성의 눈에서 인식해 온 역사이다.


<작은 아씨들> - 그레타 거윅, 2019

가족과 세계를 바라보는 루이자 메이 올컷의 따스한 시선과 맑은 영혼, 그에 응답하는 2019년의 그레타 거윅. 소란했던 시대에도 어떤 방식으로든 살았던 여성들은 존재만으로도 힘이 된다.




<콜레트> - 워시 웨스트모어랜드, 2018

문화와 예술의 영광이 남성에게만 허락되었던 벨 에포크의 여성 작가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가 주인공이다.

<콜레트>는 성공하기도 했지만 실패하기도 했고, 작가이기도 했지만, 작가임을 거부하기도 했던 '아이콘'이 아닌 실체로서의 콜레트에 대한 이야기이다.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르는> - 배꽃나래, 2019

위에서 아래로, 옆에서 옆으로 기억하는 역사. 가로채진 언어를 대신해 몸으로 새긴 여성의 역사에 대한 영화이다. 우리의 역사는 누구는 모르지만, 누구는 안다.



6. 몸 쓰는 여자

히어로, 액션 영화에서 "여자가 주인공이 되었을 뿐인데 이렇게 재밌다니"라는 반응이 더 가치 있게 여겨졌으면 좋겠다.
고작 벡델 테스트 하나 통과하지 못하는 상업 영화가 아직도 쏟아지는 현실이다. ( 2019년 영진위 결산 보고서 기준, 흥행 상위 30개 영화 중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작품은 13편이다)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 - 조지 밀러, 2015

구원받을 곳이 사라져 버렸을 때, 서로가 구원되어 돌아온 여성들. 샤를리즈 테론의 퓨리오사는 쉽게 잊을 수 없다.

(4월 4DX 재개봉 예정이라니 꼭 극장에서 확인하자)


<캡틴 마블> - 애너 보든 , 2019

기억을 잃은 댄버스는 부여받은 힘을 최대한 잘 '쓰지 않기'를 요구받는다. 증명하기를, 인정받기를, 납득시키기를 거부하며 히어로가 된 여성이 물리쳐 해방한 것은 무엇인가.


<스파이> 폴 페이그, 2015

폴 페이그의 코미디는 기존의 성역할을 뒤집어 그 속의 여성혐오를 비웃고 꼬집는다. 멜리사 맥카시의 액션과 미란다의 코미디는 뒤집어진다.



7. 시스터후드

자매애는 강하다.


<델마와 루이스> - 리들리 스콧, 1991

남자와 춤췄다는 사실만으로 강간을 당해도 아무도 우릴 지켜줄 수 없다면. 초록색 자동차가 비정상적인 사회를 질주한다.

영화에 빠진 이유를 얘기한다면 꼭 들어가야 할 순간에 담긴 영화.


<우먼 인 할리우드> - 톰 도나휴, 2019

영화계 내부 성차별을 통계로 조진다. 여성들의 목소리는 셀룰로이드를 뚫고 나온다. 이제는 응답해야 할 때.

영화의 원제는 This Changes Everything이다.


<개 같은 날의 오후> - 이민용, 1995

한국 영화에도 이런 페미니즘 코미디가 존재했다니. 가정에서의 여성들이 겪는 차별을 영화적으로 처단하는 여성연대에, 여전히 개 같은 오후 아래의 우리는 짜릿하다.

 


8. 여자, 한국

한국의 여성 감독이 다큐멘터리를 찍는다. 늘 중요하지 않은 문제로 치부된 목소리를 끈질기게 좇는다. 영화제를 통해 본 작품들을 전부 소개할 수 없어 아쉽다. 영화제에 간다면 한국 여성 감독의 다큐멘터리에 주목해주길 바라며, 플랫폼을 통해 감상 가능한 다큐멘터리를 소개한다. 각기 다른 낱개의 영화이면서도 뭉텅이로 다가올 때 묵직함이 있다.


<기억의 전쟁> - 이길보라, 2018

베트남 참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진술한다. 전쟁을 기억하는 기억들은 전쟁한다. 현재 상영 중이다.


<시국페미> - 강유가람, 2017

2016년 페미니즘 리부트 속에서의 기록. 내부와 외부의 차별을 견디며 거리에 나온 페미니스트들의 이야기. 여성영화 스트리밍 플랫폼 퍼플레이에서 감상할 수 있다.


<왕자가 된 소녀들> 김혜정, 2013

1950년대 한국 대중문화였던 여성국극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남성 주류 집단에 차별받았던 여성국극이라는 예술에 대한 영화이자, 오랜 시간 몸으로 새긴 예술을 행하는 여성에 대한 기록이다.




세계 여성의 날이다.

여성영화라는 단어가 늘 고민 된다. 특히 이번처럼 주관이 듬뿍 담긴 글에는. 주제에 맞춰 최대한 포괄적으로 담았다.

글을 준비하며 2019년에 감상한 여성영화를 리스트업했는데, 영화제 영화를 포함해 약 100편을 모을 수 있었다. 아쉽게 못 들어간 영화들은 언젠가 소개할 수 있길!

매번 말하지만 여성영화는 부족한 만큼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특히 2019년에는 한국의 여성영화 풍년에 행복했다.

올해는 다양한 얘기를 하는 여성 영화와 함께 더 큰 규모의, 상업 여성영화가 휘몰아쳐 전세계에 넘치기를 바란다. 두 팔 벌려 환영할 준비는 이미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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