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 속의 고독 - 동조와 개성 사이

by 윤숨

2장. 무리 속의 고독 - 동조와 개성 사이

회식 자리의 미소

"자, 우리 막내가 한 마디 해야지!"

또 시작이다.

술잔을 들고 일어서면서 얼굴에 미소를 붙였다. 연습이 많이 된 미소다. 입꼬리는 올라가 있지만 눈은 웃지 않는, 회사 생활 3년 차가 만들어낸 완벽한 가면.

"선배님들 덕분에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박수 소리. 다들 흡족한 표정. 나는 자리에 앉으며 소주잔을 비웠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쓴맛이 오히려 정직하게 느껴졌다.

'많이 배우고 있다'

무엇을? 엑셀 단축키? 보고서 양식? 아니면 이렇게 원하지 않는 자리에서도 미소 짓는 법?

옆자리 김 대리가 어깨를 친다. "야, 너도 이제 완전 우리 팀이야!"

우리 팀. 우리.

그 '우리' 안에 정말 '나'가 있을까?

점심시간의 선택

"오늘 뭐 먹으러 갈까?"

매일 12시 30분이면 시작되는 의식이다. 아무도 먼저 나서지 않는다. 다들 눈치를 본다.

"아무거나 좋아요." "저도요." "다 괜찮아요."

결국 팀장이 결정한다. 또 그 단골집. 김치찌개.

나는 김치찌개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3년 동안 한 번도 싫다고 말한 적 없다.

왜일까?

솔직히 김치찌개가 문제가 아니다. '다르다'는 걸 드러내는 게 무서운 거다. 혼자 다른 걸 먹으러 가면 '쟤는 왜 저래?'가 될까 봐. 개인주의자라는 꼬리표가 붙을까 봐.

심리학자 솔로몬 애쉬의 실험이 떠올랐다.

명백히 다른 길이의 선분을 보여주고 어느 게 더 긴지 물었다. 정답은 뻔했다. 하지만 먼저 대답한 7명이 모두 오답을 말하자, 8번째 피실험자의 37%가 틀린 답을 따라 했다고 한다.

알면서도 따라 한 거다.

나처럼.

카톡방의 압박

새벽 1시. 핸드폰이 울린다.

팀 단톡방. 과장님이 내일 회의 자료를 공유했다. 곧바로 반응들이 올라온다.

"과장님 수고하셨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고생 많으십니다 ㅠㅠ" "내일 회의 잘 준비하겠습니다!!"

나는 이불 속에서 핸드폰을 쳐다본다. 답장을 해야 할까? 자고 있는 척해도 될까? 하지만 다들 1분 안에 답장했는데...

결국 나도 쓴다. "확인했습니다. 수고하셨어요!"

느낌표도 하나 붙인다. 너무 건조해 보일까 봐.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다. 새벽 1시에, 자려고 누워있다가, 남들 눈치 보느라 거짓 답장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안 할 수도 없다.

'읽씹'이라는 낙인. '팀워크 없는 직원'이라는 평가. 그게 더 무섭다.

철학자의 외침

키르케고르는 말했다.

"군중은 거짓이다."

19세기 코펜하겐에서 그는 외로운 싸움을 했다. 모두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지만 아무도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모두가 따르는 것이 진리는 아니라고.

그는 '단독자'가 되라고 했다.

군중 속에 묻히지 말고, 자기 자신으로 서라고.

쉬운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회사에서 단독자가 되면 왕따가 된다. 모두가 야근할 때 혼자 퇴근하면 이기적인 사람이 된다. 회식을 빠지면 조직 생활 못하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키르케고르가 아닌 '그냥 직원 A'가 되기를 선택한다.

화장실 칸막이 속 자유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회사에서 가장 편한 곳은 화장실이다.

정확히는 화장실 칸막이 안.

여기서만은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다. 미소 지을 필요도, 고개 끄덕일 필요도 없다. 그냥 나로 있을 수 있다.

가끔 여기서 밥을 먹는다.

편의점 김밥이나 샌드위치.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가 먹고 싶은 속도로, 내가 원하는 것을 먹는다.

처음엔 서글펐다.

화장실에서 밥 먹는 내가 한심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게 나의 작은 저항이라는 걸. 동조의 압박에서 벗어나는 나만의 방식이라는 걸.

한 선배가 그랬다.

"회사 생활은 연기야. 너무 진심으로 하지 마."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연기가 나를 잡아먹는 것 같을 때가 있다. 진짜 나는 어디 있고, 연기하는 나는 누구인지 헷갈릴 때가.

지하철 역주행 사건

퇴근길 2호선.

모두가 한 방향으로 걸어간다. 출구를 향해, 에스컬레이터를 향해. 발걸음의 리듬까지 비슷하다.

그런데 한 사람이 반대로 걸어온다.

뭔가 놓고 온 모양이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필사적으로 역주행한다.

순간 부러웠다.

그 사람은 지금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 남들이 어떻게 보든, 불편하든 말든. 자기가 가야 할 곳을 분명히 알고 그리로 가고 있다.

나는?

나는 그냥 흐름에 떠밀려 간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아니, 알면서도 모른 척하면서.

스피노자가 떠올랐다.

"자유로운 사람은 자기 본성의 필연성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다."

내 본성은 뭘까? 이 군중 속에서, 매일 같은 양복을 입고 같은 길을 걷는 나에게 본성이라는 게 있기는 할까?

새벽 산책의 발견

불면증이 심해진 후로 새벽 산책을 시작했다.

새벽 4시의 거리는 다른 세상이다. 편의점 알바생, 새벽 운동하는 노인들, 첫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각자의 이유로, 각자의 속도로 걷는다.

여기서는 이상하게 숨이 쉬어진다.

낮의 그 압박감이 없다. '다 같이', '함께', '우리'의 압력이 없다. 그냥 각자가 각자로 존재한다.

어느 날 편의점에서 캔맥주를 샀다. 새벽에 혼자 맥주를 마시며 걷는다. 미친 사람처럼 보일까? 그런데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아, 이게 자유구나.

남들 눈치 보지 않는 것. 나의 선택을 나의 기준으로 하는 것.

회사에서는 왜 이게 안 될까?

아니, 회사뿐일까? 우리는 일상 곳곳에서 보이지 않는 시선들과 싸운다. SNS의 좋아요, 부모님의 기대, 친구들의 평가...

무리와 개인 사이

밀그램의 복종 실험을 다시 읽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권위에 복종해 450볼트의 전기 충격을 가했다. 그들은 악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상황에 순응한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우리도 매일 작은 밀그램 실험을 한다.

양심에 어긋나는 지시를 따르고, 동의하지 않는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고, 틀렸다고 생각하면서도 침묵한다.

왜?

'직장인이니까', '어른이니까', '사회생활이니까'.

하지만 정말 그래야만 할까?

동조가 항상 나쁜 건 아니다. 협력과 조화는 필요하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나'를 완전히 잃어버릴 때다.

건강한 개인은 무리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다. 필요할 때는 함께하지만, 자신의 선을 안다. 협력하되 복종하지 않고, 조화하되 동화되지 않는다.

내일의 실험

내일 점심, 작은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저는 혼자 먹고 올게요."

단순한 한 마디. 하지만 3년 만의 선언이다.

거창한 저항은 아니다. 그저 하루 점심을 내 입맛대로 먹겠다는 것뿐. 하지만 이 작은 균열이 시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키르케고르의 단독자는 거창한 영웅이 아니다. 그저 군중 속에서도 자기 목소리를 잃지 않는 사람. 남들이 가는 길이 아닌, 자기 길을 아는 사람.

무리 속의 고독.

그건 외로움이 아니라 자유일 수도 있다. 모두가 오른쪽으로 갈 때 혼자 왼쪽으로 갈 수 있는 자유. 모두가 웃을 때 혼자 진지할 수 있는 자유. 모두가 같을 때 혼자 다를 수 있는 자유.

오늘도 회사에 간다.

여전히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나를 지킬 것이다.

아주 작은 나만의 공간을. 화장실 칸막이처럼, 새벽 거리처럼.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일단은.

금요일, '욕망의 헝거게임'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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