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간판 없는 아담한 ‘스피크이지 바(Speakeasy Bar)’ 를 열고 싶었다. 금주령이 한창인 1920년대 미국처럼 경찰 눈을 피해 비밀 술집에 모인 사연들은 얼마나 깨알 같을까. 테이블 네댓 개에 고급 음식도 없는 이런 발상은 물려받은 건물조차 없으면 망하기 딱 좋다. 그래서 묘안을 짰다. 정해진 메뉴 없이 신선한 재료로 매일 다른 음식을 차리고 손님이 부엌에서 원하는 안주를 만들 수 있는 데다가, 단골을 붙잡아 둘 수 있는 비장의 무기로 그날의 이야기꾼 호스트를 정하는 거였다.
보슬비 내리는 저녁에는 존 메이어가 부르는 ‘Last Train Home’ 부탁해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물밀듯 밀려오는 복잡한 감정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이유의 ‘strawberry moon’을 들으면 비 오는 날 퇴근길이 덜 꿉꿉해요. 자 그럼 진과 베르무트를 섞어 얼음을 잠시 넣었다가 걸러낸 차가운 헤밍웨이 마티니를 마십시다. 저는 shaken, not stirred. 이렇게 마시면 007이 되는 건가요? 강황카레를 보니 돌아가신 엄마 생각나네요, 브로컬리와 암홍합이 들어간 우리 엄마 카레는 최고였는데. 밥맛없는 뺀질이 팀장이 내가 고생해서 만든 기획을 가로챘어요, 으슥한 곳에서 한대 후려치세요. 아이가 요새 나랑 말을 안 해요, 다 큰 자식은 그런 거 아니에요? 향유고래 똥으로 만든 향수 이름이 뭐였더라? 어제 손흥민 해트트릭 봤어요?
손님 중에 밀수업자가 있다고 해도 몸이 마취되고 정신이 도취되는 술 앞에서 못할 이야기가 없다.
레이먼드 카버 단편소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알아요? 슬프고 따뜻한 빵 이야기죠. 이런 작품은 키키 키린이 제격인데요. 맞아요, 저는 유작인 ‘모리의 정원’이 가장 좋아요. 연못에서 나온 죽음의 정령이 더 넓은 우주로 함께 가자고 했을 때 늙은 화가 모리가 “이 정원은 저에게는 지나치게 넓습니다. 이곳이면 충분합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뭉클했어요. 저는 ‘일일시호일’요.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 행복하다던 다케다 선생 말이 인상 깊어요. ‘앙, 단팥 이야기’도 재밌어요. 저도 봤는데 재밌다기보다는 여운이 오래 남죠. 팥앙금 만드는 게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세상에 하찮은 일은 없지요. ‘나사의 회전’에서 헨리 제임스는 정말 유령을 등장시킨 걸까요? 나 참, 유령이 어딨다고요. 그건 신경과민증입니다. 타협할 줄 모르는 필립 말로는 어때요? 캘리포니아의 그 지저분하고 음침한 거리를 헤집는 말로의 짙은 담배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레이먼드 챈들러는 천재예요, 천재. 사람들은 잔혹한 사건에 왜 혹할까요? 수전 손택이 ‘타인의 고통’에서 말한 것처럼 자신은 멀리 떨어진 안전한 지대에서 타인의 고통에 호기심을 갖는 거죠. 여성 저술가로는 수전 손택이 최고 지성봉에요. 한나 아렌트는 왜 빼세요? 전 그보다 아가사 크리스티가 해리성 둔주를 앓았다는 게 사실인지 더 궁금해요.
이런 말을 하는 손님은 공들여 만든 안주로 꽉 붙잡아야 한다. 뭐니 뭐니 해도 작은 스피크이지 바에서 가장 솔깃한 이야기는 미스터리 죽음이다. 호기심과 관음증을 충족하면서 매상이 올라갈 수 있다면야.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세상일이고 보니 원대하면서 무모한 작은 야망은 봄눈 녹듯 사라졌다. 그러다가 기타모리 고가 쓴 단편집 ‘꽃 아래 봄에 죽기를’을 읽었다. 세상에나! 맥주 바 가나리야 주인 구도가 이루지 못한 내 꿈을 버젓이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아아, 하늘은 어찌하여 나와 구도를 같은 시대에 낳았단 말인가. 구도를 질투하며 단숨에 구도 시리즈를 읽어 내렸다. 때마침 창밖에는 활짝 핀 벚꽃이 사뿐히-가뿐히_ 흩날리고 있었다. 가슴에 꽃불을 지핀 화사한 꽃잎이 저무는 모습을 무심이 바라보다가 고바야시 잇사(小林一茶)가 지은 하이쿠가 생각났다. “세상은/지옥 위에서/꽃구경하는 것일까” 문득 소설 제목으로 ‘벚꽃나무 아래에서’가 머리를 스쳤다. 못 이룬 스피크이지 바를 향한 소심한 결정이다. 지나고 보니 10년 동안 함께한 구닥다리 노트북이 나의 스피크이지 바였던 듯싶다. 노트북 앞에 앉아 온갖 일을 보고 듣는 동안 벌어지고 틀어지고 솟아있던 마음이 고자누룩해졌다.
이 단편집 순서는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 봄에서 맺는다. 각 단편마다 개별 작품이면서 전체를 연결하면 사계절에 걸친 한 작품이 된다. 연작을 염두에 둔 사소한 사심이다. 영화 기법인 플래시백에 1인칭과 3인칭 시점을 혼합해 과거와 현재를 연결했다. 아무렴 어떤가. 새봄이 돌아오면 다시 꽃이 피고 달디 단 봄기운 속에 ‘데카메론’처럼 숱한 사람 이야기가 섞여 뭉게뭉게 지나가리라.
2022년 다친 몸과 부스스한 마음을 지켜본 대문 옆 고마운 벚꽃나무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