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5회로 연재됩니다】
바위산 열댓 봉우리가 둘러싼 조종을 가려면 삼청동에서 세 시간 걸린다. 험난한 산세에 막혀 그나마 이웃한 화현으로 국도가 개통됐다. 화현 갈림길에서도 출입구가 좀체 드러나지 않는 스키장과 골프장 이정표가 반딧불처럼 깜박깜박 신호를 주는 것 같은 적막한 골짜기를 지나 50여분이나 더 달려야 진입한다. 접근성이 떨어지다 보니 물가도 화현이나 가산, 심지어 관광지인 청평보다 비싸다. 변변한 병원이나 문화시설은커녕 폐허가 된 농공단지에는 잡풀이 우거져 밤에는 고라니와 멧돼지가 교대로 숙식한다. 이렇다 할 기반 산업이 빈약하다 보니 산비탈 돌밭에 호랑이 콩이나 당귀, 황기, 벌나무 같은 약초를 재배하고 흑염소를 키우는 고만고만한 조롱박 살림들이다.
십수 년 전만 해도 조종에 웰빙 열풍이 불면서 잠시 인구가 는적이 있다. 품질불량 중국산 약재를 몰아낸답시고 정부는 느닷없이 약초 특화사업 육성을 발표했다. 때마침 반중 분위기와 맞물려 돈벌이에 재빠른 약재업자들은 산골짜기 조종에 땅을 사서 주소만 이전했다. 산길로 이어지는 아름드리나무들이 잘린 자리에 맵고 따가운 석유 냄새를 한껏 퍼트리며 검붉은 아스콘이 쭉쭉 깔렸다. 석청, 목청, 양봉에 산양삼과 산나물 붐까지 가세해 현금뭉치가 돌더니 부동산 방송에서 투자 유망처로 지목되자 서울에서 내려온 부동산 중개업 떴다방 간판들이 찻길 따라 일렬로 번들번들거리며 손짓했다. 개발 옵션으로 따라 들어온 술집과 다방 덕분에 한껏 치장을 한 진주처럼 뽀얀 살결의 객지 여자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고, 대규모 관광리조트 단지 개발과 산촌 힐링센터 프로젝트 풍문은 술집과 다방에서 힘을 키워 촌사람들 가슴에 싱숭생숭 불을 지폈다. 공혈래풍은 언제 그랬냐는 듯 얼마 지나지 않아 맨숭맨숭한 얼굴로 떠났다. 불발된 대기업 리조트 신축 대신 흐트러진 바둑알 같은 빌라 촌이 띄엄띄엄 세워질 때만 해도 지금과는 다르게 삼삼오오 무리 지어 다니며 재잘대는 아이들 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조종 인구가 결정적으로 급감하기 시작한 때는 13년 전 육군 화생방 창고 폭발 사고 이후다. 국방부 지정 화공약품 저장 시설이 있던 조종은 한동안 텔레비전에 매일 등장했다. 바위산을 넘지 못한 매캐한 공기는 창문 없는 방에 터진 최루탄같이 조종을 혼돈의 도가니로 뒤덮었다. 집집마다 두통과 피부 발진을 호소하고 가래가 들끓는 호흡기 환자가 속출해 면소재지에서 두 곳 밖에 없는 의원과 한 군데 남은 한약방이 때아닌 문전성시를 이뤘다.
정부는 역학조사 결과 원인 불명이라고 발표했다. 공공기관과 국방부가 쉬쉬하는 가운데 자고 나면 공포의 괴담이 한 가마니씩 쏟아졌다. 캄보디아에서 시집온 아무개 집 며느리가 마스크 안 쓰고 읍내를 노상 쏘다니더니 언청이를 낳았다고 하더라, 개건너 한 씨 영감이 가슴이 아파 서울 큰 병원에 갔더니 폐에 구멍이 뚫렸다고 하더라, 동네 개들이 침을 줄줄 흘리다가 며칠 새에 다 죽어버렸다고 하더라와 같은 확인되지 않은 험악한 말이 혀에 적토마 발굽을 단 것같이 소흘이나 춘천까지 줄곧 내달렸다. 몇 대를 거주해 지역 호랑이가 된 세력들은 생각만 해도 골이 지끈거리는 칡넝쿨과 자리공이 뒤엉킨 선산을 팔아넘길 속셈으로 셜록 홈스나 미스 마플이라도 된 듯 모든 꾀를 내서 소문을 진짜처럼 둔갑시켰다. 젊었을 때 양평에서 잘 나가던 지관이라던 어떤 이는 조종이라는 지명에 요얼한 마가 끼었으니 이참에 이름을 바꿔야 한다고 이를 아드득거리며 이틀이 멀답시고 면장실을 드나들었다.
중고등학교는 차례로 폐교됐고 두 곳 있던 초등학교도 한 곳만 30여 명 남짓한 아이들이 다닌다. 조종이 이 지경이 된 이유를 열 명을 붙들고 물어보면 열한 명이 그놈의 교통 때문이라고 삿대질을 한다. 신발에 흙이 묻은 촌로들은 돼지국밥집이나 이발소에 모여 바위산을 허물어야 한다고 열을 내다가 바지에 떨어진 담뱃재에 구멍이 난 바지를 입고 집에 가서 부인에겐 욕을 먹었다. 주민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선거 때만 되면 후보들은 교통에 사활을 건 공약에 목청을 돋운다. 입만 열면 사통팔달 길을 뚫겠다고 외치던 3선 관록의 지역구 국회의원은 억대 뇌물 비리로 구속되어 의원 배지를 반납했다.
조종 사건은 비리와 성 스캔들이 얽힌 일로 대리들 이하에는 비공개로 해야 한다고 면봉으로 귀를 후비던 부장이 잔소리를 늘어놨다.
-외부에 알려지면 정권에 타격이 크니까 꼭 비밀엄수를 하고. 특히 기자들이 냄새를 맡으면 안 돼. 걔들은 이런 일에는 빠꿈이잖아. 공관 앞으로 몰려가 뻗치기라도 하는 날에는 우린 다 같이 죽는 거야
-성 스캔들을 왜 우리 부서에 할당했어요?
-그거야 공무원 잡는 귀신인 우리 부서를 그만큼 신뢰한다는 거 아니겠어. 선출직이든 임명직이든 뭐든 직업에 공평할 공자가 붙으면 우리 손에 명운이 달렸잖어
-그래서 더 공 들여라?
-그렇지. 기계체조 선수가 가장 열심히 연습하는 게 뭔지 알아? 두 바퀴 세 바퀴 신기술 공중회전 뺑뺑이 도는 것 같지? 아냐. 착지야, 착지. 제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구사해도 착지에서 넘어지면 점수 확 까이지. 거기서 승패가 결정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