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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마디 Sep 13. 2022

강동, 2층, 9000, 9평, 투룸

외양간도 고쳐서 방을 만들던 시절

이번엔 서울 동쪽 끝의 J동으로 갔다. 마을 반 쪽을 밀어버리고 아파트를 지어 올리는 방식이 서울 변두리 여기저기서 일어난다. 그리고 이미 몇 년 전에 그런 식으로 자리를 잡은 근처 위성도시와 합쳐진다. 그렇게 서울이 커진다. 아메바 서울.


J 역은 새로운 출구를 뚫는 공사 중이다. 길 건너편에 세워진 아파트 공화국에는 요즘 아파트에 유행하는 컬러인 볼드한 남색 회색 섹션이 포인트가 되어서 길 이쪽저쪽을 확실하게 구분한다. 그런 길을 저쪽에서 10분쯤 걸어서 동네에 도착했다. 동네는 빨간 벽돌 주택 동네인데 깨끗하고 조용했다. 보통 이렇게 재개발되는 지역은 남은 반쪽에 빈집이 많아지면서 슬럼지역이 되곤 한다. 그런데 여기는 저쪽에 아파트가 들어선 지 꽤 됐음에도 여전히 화초로 잘 가꾸며 사는 집이 많았고 동네길은 깨끗했다. 여기저기 3-4층 원룸 건물 공사가 있긴 했지만 2,3층 반듯한 주택이 대부분이라서 딱히 ‘좁은 골목길’이라는 것도 없다. 워낙 이 지역이 단조로운 곳이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 정말 ‘별 일 없이 산다’. 새로 생긴 상권과 공원을 이쪽저쪽에서 공유하면서. 동네 분위기는 안정되었구나 싶었다.

1. 별일 없이 사는 동네에 그저 그런 평범한 집 앞에 왔다.

부동산에서 올려놓은 로드뷰 사진 그대로 빨간 벽돌에 반지하부터 2층까지. 3층 집이었다. 한 층에 큰 통창이 2개씩 있고 양쪽으로 계단이 있는 걸로 보아 집마다 통로를 각각 쓰는 듯했다. 가로 면적이 크지 않으니 주인집은 한 층을 통째로 쓸 수도 있고, 나머지는 한 층에 집이 2개씩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내가 보러 가는 집은 1.5층이라고 했지. 저기 중간층에서 창문을 열면 널찍한 동네가 환히 보이겠다.


2. 평범한 2층 집 같았는데

왼쪽 계단을 오르나 했는데 계단을 지나 더 구석으로 들어간다. 왼쪽 키만 한 콘크리트 담벼락에 딱 붙어 들어갔다. 가보니까 집 뒷면에도 앞면과 똑같이 출구가 양쪽으로 있었다. 앞면에 3개 층을 좌우로 나누어 현관이 6개였다면 뒷면에도 똑같이 6개 집이 있는 것이다!  1층 * 4집 * 2룸 * 3층 = 도합 24개 방으로 쪼갠 집! 세상에 이 작은 집을!


주택 뒷면에서는 앞과 양 옆이 담벼락으로 꽉 막혀있어서 현관이나 창문을 열어도 밖을 볼 수 있는 방향이 아니었다. 방이 거실을 두고 양쪽으로 있는데 작은방 쪽은 다른 집이랑 붙어있어서 창문이 없고 큰 방에 난 창문을 열면 방금 지나온 담벼락이 보였다. 간격이 1.5미터쯤 되려나. 이런 집이 9000만 원이라니. 이 동네에 오면서 보았던 동네와 집의 정면까지 마음에 들어서 그랬는지 어두운 집이 더욱 대조되어 속이 조금 상했다.


3. 엄마 집에 와서 이 얘길 하며 “엄마, 옛날엔 땅 값도 쌌을 텐데 왜 이렇게 집들을 다닥다닥 붙여지은 거야? 숨이 막혀” 투덜대니까 엄마는

 “무슨 소리, 그 시절이 심하면 더 심했지. 너 충주 엄정 기억나지? 너 태어나기 전에 충주에 건국대학교 캠퍼스 들어온다고 했을 때, 그 시골 동네가 갑자기 호황을 누리게 된 거야. 도시 인프라가 하낫또 없던 동네에 젊은이들이 쏟아져 들어오는데 살 집은 없고. 안 쓰던 작은 방 치워서 하숙 내주면 다 월세 내고 들어오니까 시골 사람들 돈 벌 궁리가 생긴 거지. 그때 무슨 법이 있었겠어. 소 키우는 외양간도 고쳐서 방을 만들어서 사람을 들였다니까. 서울도 그렇지. 시골에서 사람들 몰려오니까 손바닥만 한 땅에도 집을 올려서 팔아먹던 시절이야. 요즘 뭐라 뭐라 따지는 일조권, 건물 사이 간격 이런 거 신경도 안 쓸 때였어 그때는.”


그 집에는 외로워 보이는 아저씨 한 분이 살고 계셨는데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부동산에서 찾아와 집을 들여다보고 가는 게 조금 버거운 듯했다. 옷가지나 살림살이 별로 없는 집에 굴러다니던 약봉지와 물컵이 생각나서 너무 잘게 쪼갠 집으로는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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