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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마디 Sep 11. 2022

신당동, 남산 성곽길, 5000/10/2, 투룸

중구(中區)

2020년, 처음 청년 전세대출을 받았을 때는 이자가 1%대였다. 1.7% 일 때는 4000만 원의 이자가 월 7만 원 정도였는데 2년 뒤 지금은 2.9%로 올라서 10만 원이 넘는다. 대략 1.5배 늘어난 셈이다. 월세보다 전세 이자가 항상 나은 줄만 알았는데 이런 추세라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요즘은 반전세라는 것도 있다. 전세 월세 보증금은 대략 1000만 원에 5만 원으로 계산해서 예를 들어 1억 2천 전세를 보증금 8000만 원에 20만 원 월세로 조율해주기도 한다. 10년 전 처음 서울살이 시작할 때는 1000만 원에 월세 10만 원으로 계산했는데 반으로 뚝 떨어지다니. 집 값이 두 배가 됐나? 그렇지, 서울인데 그러고도 남지. 휴 세월 참 많이 흘렀다.

전세 이자가 비싸면 서울시의 월세지원금을 받는 건 어떨까. 보증금 5000만 원 이하 월세 60만 원 이하인 경우 월세 50%를 1년간 지원해 주는 제도가 있어서 그 언저리 금액의 집도 한 번 찾아봤다.

남산 성곽길 근처에 투룸 집이 하나 올라왔다. 가파른 계단이 이어지는 언덕길 중턱에 자리 잡은 3층짜리 작은 빌라. 층마다 단 두 집이 나란히 있다. 왼쪽 집, 오른쪽 집, 계단. 왼쪽 집은 앞뒤와 왼쪽면에도 창문이 나있다. 이 건물 왼쪽에 있는 집 역시 3층 건물이지만 경사가 가팔라서 이 집의 2층까지만 올라오기 때문에 301호의 왼쪽 방에서는 가릴 것 없는 남산 중턱의 뷰를 매일 볼 수 있을 것이다. 연락해 보니 사진 올린 그 집은 나갔지만 옆집도 비어있으니 괜찮으면 보러 오란다. 흠. 그래도 집 앞이 산책길 덕분에 뻥 뚫린 데다 계단 밑으로 작은 공원까지 있어서 앞을 바라보는 뷰만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약수역에서 내 또래의 젊은 부동산 실장님을 만나 집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나 3층에 올라가 보니 웬걸, 앞으로 난 창문은 화장실 창문이고 방은 다 뒤쪽에 있었다. 건물 뒤쪽에는 다른 빌라가 딱 붙어 있어서 뒷집 사람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옆방처럼 가깝게 볼 수 있다. 집 구조는 평범. 현관문을 열고 화장실과 짧은 복도를 지나면 작고 네모난 주방이 있고 양 옆에 방 둘. 방은 싱글 침대 하나를 놓으면 꽉 찰만한 작은 방. 그 작은 방에서 침대 머리맡의 창문을 열면 옆집 현관이 코앞에 보인다는 것이 께름칙했다. 낮인데도 햇빛이 들지 않고. 아쉬워하니까 더 아쉬우라고 그랬는지 이미 나간 옆집도 보여주셨는데 역시 왼쪽 방에 들어가니 창문으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 창문을 열면 하늘이 훤히 보이고. 아쉬워.


뷰가 먼저 생겼을까, 집이 먼저 생겼을까? 아무래도 집이 먼저 생겼나 보다. 오래전에, 이 동네에 집이 많지 않을 때 먼저 생겨서 그때는 오른쪽 방에서도 남산에서 보는 하늘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요즘 같으면 절대 포기 못할, 프리미엄을 주고서라도 들어갈 일조권 조망권을 그 당시엔 생각 못했을 것이다. 햇살은 당연하니까. 아니다, 그때 역시 남산자락 언덕배기에 살면서 서울에서 지내는 것만으로 감지덕지했으려나?


내가 선뜻 ‘아니요’ 하지 않고 아쉬워해서 실장님도 더 꼬셔 말아 싶었는지 온 김에 동네 한 바퀴 돌고 가자며 더 높은 곳으로 올랐다. 최근에 개관한 아담하고 힙한 도서관이 근처에 있는데, 옆집 사람도 계약을 망설이다가 도서관에 가보고서는 그날 바로 집을 계약했다고 한다. 내 친구도 부동산을 하지만 보통은 부모님 나이대 중개사를 만나는데 가끔 이렇게 젊은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이상하다. 서울에서 1억으로 투룸을 구한다는 게 얼마나 가당치나 않은 일인지, 그동안 모아놓은 돈은 왜 없었는지 같은 어리광을 부릴 수가 없다. “좀 낡았어도 서울에 이 가격인 게 어디야~” “이런 건 좀 낡았지만 전세니까 집주인이 안 해주려고 하지. 살면서 고쳐서 써야 해~” “지금 좀 낡으면 어때? 여기서 열심히 돈 모아서 이 다음번엔 자가로 이사하면 되지~호호” 낡은 집에 살아야 한다는 현실을  “아무래도 그렇겠죠?” 하며 아줌마 아저씨 앞에서는 꿋꿋한 젊은이인 척 나를 포장할 수 있었는데 또래 앞에서는 이렇게 낡은 집에 아무 리액션도 못 하겠다. 요즘은 소개팅할 때 주소를 물어봐서 네이버 지도 로드뷰로 동네와 집을 파악한다고 하니까. 젊은이들은 월세를 비싸게 주고라도 신축에 가려고 하지 아마 이렇게 낡은 집에는 안 올 거야. 이 친구도 멀끔한 집에 살겠지? 부동산이란 트렌드와 자산 두 바퀴를 같이 굴려야 하는 분야다. 또래인데 나보다 더 체계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서 나란히 길을 걸어도 개인적인 이야기는 더욱 꾹꾹 눌러놓고 동네 얘기만 했다. 근데 몇십 년째 변하지 않는 동네라 얘깃거리도 금방 바닥나서 곧 말없이 남산 오르막길을 올랐다. 난 요가로 단련된 허벅지라 걸을만한데 젊은 실장님은 재킷을 벗어 들고 헉헉댔다.


  언덕에서 건물사이사이 배배  시멘트 계단을 끝까지 올라 꼭대기, 진짜 남산 담벼락까지 다다랐을  작은 도서관이 까꿍- 하고 나왔다.  마을 도서관은 작은 부지에도 야외에 주차장, 공연장, 쉼터를 지었고,  (아래 보고  집과 달리) 요즘에 지은 건축물답게 도서관에서도 창문으로 밖을 내려다볼  있는 포인트를 살리느라 내부 동선을 이리저리 배배 꼬았다. 네모난 공간을 높은 책장으로 여러  나누어 곡선의 동선을 만들고, 의자 방향에 따라 하늘을 올려다볼 수도 있고 마을을 내려다볼 수도 있고 책장과 식물을  수도 있다. 조선시대  담벼락과 빌라 뒤켠 사이 구석탱이 땅에서 밖으로 창을 내기 위해 건축가가 머리 쥐어뜯는 모습이 이는 걸.


한마디로 악착같이. 서울 한가운데 살려면 예나 지금이나 언덕 위에 자리 잡고도 앞집 옆집에 가로막힌 햇살을 갈구해야 하는 삶이 너무 악착같이 느껴졌다. 동네가 물론 서울에서 가운데라 교통도 좋고, 한양도성이 버티고 있어 개발 못하는 동네에 토박이 주민이 많아서 조용하고, 외국인도 별로 없고,  앞에 매일 오고 싶은 예쁜 도서관이 있지만 아무리 따져봐도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호흡의 작업은 마음이 쪼들리는 곳에선 힘들 거야. 넓은 바닥에 세상에서 모아온 조각을 널부러뜨린 다음 마음껏 퍼즐을 맞추고  흐름을 읽어내어  메시지가 다시   마음에서 밤이고 낮이고 멋대로 흘러가게 해야 한다. 주객을 혼동하지 말자. 그래서  집에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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