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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캣브로 Jun 26. 2022

사께동 임보 일기 1 - 철조망에 낀 아깽이

고양이 임시 보호

4냥꾼 캣브로, 예순여섯 번째 이야기




퇴근을 마치고 회사 근처에서 아내와 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지이잉~. 급하게 와 줄 수 있냐는 동네 친구의 전화였다. 목소리가 다급했다. 이때는 몰랐다. 츠동이를 닮은 작고 귀여운 치즈태비를 임시 보호하게 될 줄은.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앞에 있는데..."

"고양이?"


친구는 죽어 가는 새끼 고양이를 발견하고는 허겁지겁 전화를 했다고 한다. 급한 대로 길냥이를 돌보는 옆 가게 지인에게 부탁해 실내로 들이긴 했지만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고양이를 지독하게도 무서워하지만 그냥 둘 수만은 없어 연락을 한 것이었다.


자초지종은 이렇다. 친구의 가게 옆에 누군가 상자를 하나 두고 갔는데 거기에는 아깽이 한 마리가 있었다. 상자를 두고 간 사람에게 물어보니 철조망에 걸려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비를 쫄딱 맞고 있었다고 한다. 동네를 오가다 봤는데 이곳이라면 길냥이들을 돌볼 수 있을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두고 간다고 했다.


"그러면 이제 좀 괜찮은 거 아니야?"

"지인은 가게를 잠깐 닫고 멀리 가 있어서 당장 올 수가 없는 상황이래. 일단은 급한 대로 옆 옆 가게의 다른 집사 분이 돌봐 주고 있어."

"알겠어. 동네로 가서 다시 전화할게. 그런데 우리도 임시 보호는 어려울 것 같아."


곤란했다. 노묘인 츠동이는 아깽이가 올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아 토를 하기 일쑤고, 우리 집의 군기 반장 구로는 낯선 고양이만 보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다. 아깽이 적 생각 못한다더니... 형, 누나 냥이들이 살뜰하게 자기 챙겨 주었던 건 하나도 기억 못 하나 보다. 건방진 뚱냥이 녀석.


습식 사료를 허겁지겁 먹고 있는 녀석


아기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온몸은 진흙투성이였고, 계속 비를 맞은 탓인지 바들바들 떨면서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다행히 먼저 와 계신 다른 집사 분이 온열 매트와 사료를 준비한 덕분에 위기는 모면한 것 같았다. "끼융! 끼융!" 녀석은 마치 나 좀 살려달라는 것처럼 그 작은 몸으로 구슬프게 울고 있었다. 실내가 울릴 만큼 쩌렁쩌렁하게. 그리고 쉴 새 없이.


고민스러웠다. 분명 좋은 마음으로 녀석을 두고 갔을 빗속의 남자가 야속하기까지 했다. 다른 고양이들과의 격리를 위해 방 한 편을 비우고, 임시 화장실과 거처를 마련하고, 더러워진 몸을 씻기고, 새로운 뉴비의 등장에 잔뜩 뿔이 난 다른 녀석들을 진정시키고, 혹시라도 잘못되지는 않았는지 계속 컨디션을 체크하는 이 모든 일들은 우리의 몫이 될 게 분명했다.


내 인생에 더 이상의 임시 보호는 없다. 세상 모든 고양이를 내가 챙길 수는 없다. 자연의 섭리에 맡기자. 이렇게 독하게 마음을 먹었었는데 사람이 그렇다. 생명력이 꺼져 가는 꼬물이를 보니 나도 아내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내와 심각하게 상의를 했다.


며칠 전, 변기 물이 넘쳐 안이 똥바다가 되는 꿈을 이틀 연속으로 기억이 났다. 예사롭지 않아 평소 사지도 않는 로또도 원어치나 구입했었다. 인생에 돈복은 없어도 고양이복은 있나 보다. 돈이 아니라 네가 오는 꿈이었나 보다.


임시 보호가 될 것인가, 입양이 될 것인가. 아직은 모른다. 그런데 이건 확실하다. 넌 이미 우리 마음 속에 들어와 버렸어. 녀석을 작상자에 옮기고는 집으로 향했다. 어쩌면 오늘밤을 넘기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아내와 어깨에 나눠 지고서는 말이다.


녀석은 습식 사료 한 캔을 다 먹어 놓고는 집에 도착해 츄르 두 봉을 또 먹어 치웠다. 그리고 물에 불린 건식 사료까지... 녀석은 살려는 의지를 보여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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