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챌린지_Day 65
남편과 함께 마당을 손질했다. 허리춤까지 자란 잡초들이 작은 숲처럼 빽빽했다. 여름이 길었다 해도 몇 달 남짓인데, 무심히 놓아둔 사이 생명의 기세는 놀라웠다. 남편은 예초가위를 들고 굵은 줄기들을 잘라냈고, 나는 그 옆에서 떨어진 잔가지를 한 움큼씩 주워 담았다. 단순한 집안일이었지만,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다 마치고 나니 마치 생과 사를 건 전투라도 치른 기분이었다.
잡초들을 쓰레기봉투에 쓸어 담는 순간, 묘한 죄책감이 밀려왔다. 이 아이들은 내가 뿌린 것도 아니고, 물 한 번 주지 않았는데도 무심한 틈바구니에서 스스로 버텨낸 존재들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름조차 모른 채 ‘잡초’라 부르며, 그저 잘 자랐다는 이유만으로 가차 없이 잘라냈다. 이름 없는 생명은 너무 쉽게 사라진다.
글을 쓰다 보면, 유독 힘차게 자라나는 문장들이 있다. 입을 열자마자 거침없이 흘러나오는 문장, 화려하게 번지는 수식, 한 문단을 단숨에 가득 메우는 힘찬 흐름. 시간이 지나 다시 읽으면, 정작 가장 먼저 도려내게 되는 문장들이다. 생명력이 왕성해 전체의 호흡을 해치고, 스스로를 드러내려는 욕심이 커서 결국 ‘삭제’라는 운명을 맞는다. 잡초라 불린 생명력이, 문장 속에서도 되풀이된다.
그럴 때마다 묘한 억울함도 느낀다. 지워야 할지 말아야 할지 오래 망설인다. 글을 쓸 때 가장 가슴 뛰게 했던 대목, 가장 먼저 내 손끝을 뜨겁게 달구었던 문장인데, 정작 원고의 완성도를 위해 사라져야 한다니. 잘려나간 문장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억울할까.
자식도 아픈 손가락이 있듯, 글 속에도 편애는 있다. 쉽게 길들여지지 않는 표현, 고집스러운 어투, 나를 시험하듯 버티는 한 구절. 그런 문장들은 오히려 더 오래 씨름하며 애정을 준다. 입이 짧은 아이의 반찬을 한번 더 고민하듯, 까다로운 문장일수록 마음이 간다. 반면 처음부터 매끄럽게 흘러가는 문장은 무난하다는 이유로 소외되기도 한다.
마당을 다 비우고 나니 햇살이 훨씬 넓게 내려앉았다. 바람이 스며들 자리가 생겼다. 글도 그렇다. 무성하게 뻗은 문장을 잘라내야 독자가 걸어갈 길이 열린다. 호흡할 공간이 생기고, 빛이 머문다. 눈앞에서 지워졌다고 해서 의미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잘려나간 문장들은 보이지 않는 뿌리처럼, 한때의 푸름처럼, 여전히 글의 바탕을 떠받친다.
글쓰기란 결국 잘 쓰는 일보다 잘 버리는 일에 가깝다. 남길 것과 버릴 것 사이에서, 작가는 매 순간 냉정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잘 자란 문장일수록 더 냉정하게 바라보고, 사랑했던 문장일수록 더 과감히 놓아야 한다.
곧 가장 잘 자란 문장을 지워야 할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 나는 마당에서 잡초를 베던 순간을 떠올릴 것이다. 잘라낸다는 건 미워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생명력이 너무 강했기 때문. 너무 잘 자라서 잘려나가는 것들의 억울함과, 그 앞에서 느낀 나의 미안함을 껴안으며 글을 세운다. 잘려나간 문장은 그렇게 내 글의 숨결 속에 머문다.
책 읽어 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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