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소희 Sep 22. 2020

중국 격리 중 가장 그리운 게 하필?

행복은 쓸모없는 것들에

먹고 싶은 음식이라든가, 가 보고 싶은 곳이라든가… 격리 중 생각나는 것들이 많이 있다. 격리 10일째가 되니 문득 꽃이 그리워졌다. 싱싱한 꽃잎을 살짝 건드려도 보고, 꽃향기를 듬뿍 맞기 위해 꽃 속에 얼굴을 파묻고 싶다. 어쩌면 며칠째 악취의 공격을 받고 있어서일 수도 있지만, 꽃을 그냥 좋아한다. 


베이징에서는 매주 다른 종류의 꽃다발을 배달해 주는 서비스를 이용했고, 집 떠나 한국에 몇 달 머무는 동안에는 매주 꽃집을 들러 꽃을 사 왔다. 내가 머무는 곳에 꽃이 없는 날은 드물었다.  


집 떠나 지나는 동안에도 꽃 한두 송이씩은 항상 곁에 두었다


언젠가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게 꽃이랑 음악이다”라고 말하는 이를 본 적 있다. 이는 한편으로는 맞는 말이다. 꽃이나 음악이 없다고 당장 생존에 위협이 되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쓸모없어 보이는 꽃 한 송이가 생명을 더 단단하게 해주기도 한다는 걸 모르고 한 말이기도 하다. 땅에 핀 제비꽃 한 송이를 보고 감동하는 감수성 예민한 사람들이 아우슈비츠 같은 끔찍한 수용소에서 더 잘 살아남았다는 기록*을 본 적 있다. 그들이 체질상 별로 튼튼하지 못했음에도 건장한 체구를 타고난 죄수들보다 수용소 생활에서 더 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끔찍한 환경으로부터 내면적 풍요와 정신적 자유가 있는 삶으로 도망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집 떠나 몇 달 지내는 동안 큰 아이가 심장 발작을 몇 번이나 일으켜 걱정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아이가 음악에서 기쁨을 찾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회복되었다. 격리 중에도 아이는 자신의 음악을 차근차근 만들어 가며 환경이 주는 고통을 잊곤 한다. 


작은 선인장 '캑티'를 키우며 집 떠나 있는 슬픔을 잊었다


행복은 어쩌면 이런 쓸모없는 것들, 곧 무용(無用) 한 것들에 있는 게 아닐까. 효율이나 경제적 가치와는 관계없지만, 순수하게 삶의 기쁨을 위해 누리는 소소한 것들이 결국 우리를 좀 더 사람답게 살게 하는 건 아닐까. 


격리 해제되어 집으로 돌아가면 꽃집부터 들러야겠다. 


(꽃 선물은 생일 같은 날이 아니라, 특별한 일 없는 날 불쑥 건네는 게 더 효과가 있어요~) 


*빅터 E.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에 나오는 내용 중  

이전 15화 칭다오 격리, 좁은 방을  수천 바퀴 돌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