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쓸모없는 것들에
먹고 싶은 음식이라든가, 가 보고 싶은 곳이라든가… 격리 중 생각나는 것들이 많이 있다. 격리 10일째가 되니 문득 꽃이 그리워졌다. 싱싱한 꽃잎을 살짝 건드려도 보고, 꽃향기를 듬뿍 맞기 위해 꽃 속에 얼굴을 파묻고 싶다. 어쩌면 며칠째 악취의 공격을 받고 있어서일 수도 있지만, 꽃을 그냥 좋아한다.
베이징에서는 매주 다른 종류의 꽃다발을 배달해 주는 서비스를 이용했고, 집 떠나 한국에 몇 달 머무는 동안에는 매주 꽃집을 들러 꽃을 사 왔다. 내가 머무는 곳에 꽃이 없는 날은 드물었다.
언젠가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게 꽃이랑 음악이다”라고 말하는 이를 본 적 있다. 이는 한편으로는 맞는 말이다. 꽃이나 음악이 없다고 당장 생존에 위협이 되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쓸모없어 보이는 꽃 한 송이가 생명을 더 단단하게 해주기도 한다는 걸 모르고 한 말이기도 하다. 땅에 핀 제비꽃 한 송이를 보고 감동하는 감수성 예민한 사람들이 아우슈비츠 같은 끔찍한 수용소에서 더 잘 살아남았다는 기록*을 본 적 있다. 그들이 체질상 별로 튼튼하지 못했음에도 건장한 체구를 타고난 죄수들보다 수용소 생활에서 더 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끔찍한 환경으로부터 내면적 풍요와 정신적 자유가 있는 삶으로 도망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집 떠나 몇 달 지내는 동안 큰 아이가 심장 발작을 몇 번이나 일으켜 걱정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아이가 음악에서 기쁨을 찾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회복되었다. 격리 중에도 아이는 자신의 음악을 차근차근 만들어 가며 환경이 주는 고통을 잊곤 한다.
행복은 어쩌면 이런 쓸모없는 것들, 곧 무용(無用) 한 것들에 있는 게 아닐까. 효율이나 경제적 가치와는 관계없지만, 순수하게 삶의 기쁨을 위해 누리는 소소한 것들이 결국 우리를 좀 더 사람답게 살게 하는 건 아닐까.
격리 해제되어 집으로 돌아가면 꽃집부터 들러야겠다.
(꽃 선물은 생일 같은 날이 아니라, 특별한 일 없는 날 불쑥 건네는 게 더 효과가 있어요~)
*빅터 E.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에 나오는 내용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