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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윤재 Jul 19. 2024

만남의 팔레트 속으로

첫 번째 이야기

  나는 책상에 올려져 있는 지갑을 들고 주민등록증 뒤로 몸의 대부분을 숨긴 몇 개의 명함을 만지작거렸다. 종이 치고는 꽤 두껍게 만들어져 잘 구겨지는 종이의 숙명을 피해 보려 했지만 몇 주 사이 지갑의 접힘 선을 따라 모서리가 뭉툭해져 있었다. 두꺼워져 버린 명함들의 끝부분을 서너 번 만지작거리다가 전부 꺼내서 책상에 올려놓았다. 그 중 내가 찾던 한 명함을 집어 들었다.

  명함의 주인은 나와 한 시간 정도 대화를 한 사이였다. 일 대 일 대화는 아니었고, 이 대 오였다. 내가 이 중 하나였고, 그가 오 중 하나였다. 나는 그의 조심스러움이 묻어 나오는 말투에 즉각적인 호감을 느꼈다. 그는 자신의 말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다른 사람이 무엇을 묻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답하는 사람이었다. 나처럼 흥분해서 뱉은 말을 주워 담고 싶은 수십 번의 밤을 겪었던 사람이라면, 분명 그를 보고 동경심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명함에 적힌 그의 번호로 전화를 걸고 싶었던 이유는 단지 그의 성격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시각장애인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만나서 대화를 나누어본 시각장애인이었다. 나는 어릴 때 교회를 다녔는데, 목사님들은 설교 시간에 주님을 ‘아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주님을 ‘만나야 한다’라고 이야기했다. 종교에만 특화된 것처럼 보여 도무지 불가해하던 이 명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그 저력을 드러내 보였다.

  그를 만나기 전에도 나는 이 세상에 맹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팡이, 안내견, 검은 선글라스... 스티비 원더, 헬렌 켈러, 김예지... ‘시각장애인’이라는 단어는 내 머릿속에서 천수관음보살처럼 여러 개의 팔을 뻗은 채 그런 이미지들과 손을 붙잡고 있었다. 그런데 그와의 만남 이후 ‘시각장애인’은 더 이상 이미지의 복잡한 그물 속에서만 존재하는 단어가 아니게 되었다. 뚜렷하고 선명한, 손에 잡을 수 있는 무언가가 되었다. 어쩌면 ‘만남’이란 원래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가끔 나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도 제대로 모르고 쓰는 것 같다. 내가 새롭게 정의 내린 ‘만남’은 앎과 모름의 이진법 세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와 만난 이후 내가 시각장애인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고, '더 잘 알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연거푸 명함을 만지작거리는 동안 그에게 전화를 거는 행위 속에 조금이라도 불순한 의도는 없는지 검열을 해보기 시작했다. 장애에 대한 가벼운 동정심이나, 처음 보는 부류의 사람에 대한 호기심 따위가 섞여 들어간 것은 아닌지 정확히 짚어내야만 한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그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마음속에 그런 종류의 빛깔이 일렁인다면, 그리고 그것을 그에게 들킨다면. 돌이켜 보자면 과도한 걱정이 사기를 떨어뜨렸다. 지금 생각하면 그 빛깔은 팔레트에서 초록색 물감에 실수로 한 방울 들어간 빨간색 물감처럼, 붓으로 마구 섞어버리면 잘 보이지 않는 미미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전화로 이상한 말을 뱉지 않기 위해 대본을 써야 했다. “안녕하세요, A 씨 핸드폰 맞나요? 안녕하세요, 저번에 인터뷰했던 권윤재라고 합니다. 명함에 있는 번호 보고 연락드렸어요. 잘 지내셨죠?” 또래에게 거는 전화 치고는 상투적으로까지 보이는 문장들을 아래 한글 파일에 적으며 나는 마음속으로 한 차례 시뮬레이션까지 해보았다. 며칠 전부터 생각만 하고 미루던 일에 곧 착수한다는 생각에 약간의 긴장감이 돌았다. 나는 눈을 감고 가슴팍의 뒤편이 초록색으로 물드는 상상을 하고 명함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통화연결음 후에 A 씨가 전화를 받았다. 그가 먼저 “여보세요?”를 해주기를 기대했지만 전화를 받았을 때는 주변의 시끌시끌한 소리만 들려왔다.

  몇 초의 망설임 후에 내가 먼저 입을 뗐다.

  “안녕하세요, A 씨 핸드폰 맞나요?” 

  그 뒤로 정확히 어떤 식으로 대화가 진행되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내가 대본이 있는 사람치고는 너무나 횡설수설했다는 것이다. 핑계를 대자면 장황하게 써놓은 문장을 낭독하는 사이사이 A 씨가 호의적인 추임새를 끼워 넣었다. 나는 감기에 걸려 잠겼다는 그의 목소리 사이로 나를 반가워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정말 다행이었다.

  “저 내일 오후에 아무것도 안 해요. 내일 5시에 협회 앞으로 오실래요?” 

  A 씨는 예상보다 빠른 날짜를 제시했다. 나는 살짝 당황했지만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서둘러 오는 기회라면 서둘러 잡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수락했다. 

  “혹시 내일 감기 때문에 몸이 안 좋으시면 말해주세요. 약속은 미뤄도 괜찮아요. 저 시간 많아요.”

  갑작스러운 부탁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던 나의 당연한 반응이었다.

  “카톡 하시죠?”

  나는 망설임 끝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에 카카오톡을 안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말을 내뱉으면서 이런 나의 우려가 무례로 들릴 것만 같아 실시간으로 주워 담고 싶어졌다.

  “네, 카톡 해요.”

  나의 외줄타기에 비해 A 씨의 답변에는 여유가 있었다.

  “아, 그런데 제가 성함을 까먹었어요. 혹시 카톡으로 이름하고 전화번호 좀 남겨주실래요?

  이름도 모르는 사람의 부탁을 이렇게 쉽게 받아주다니.

  전화를 끊은 후 그의 카카오톡 프로필을 추가했다. 상태 메시지에는 고양이 이모티콘 세 마리가 웃고 있었다. 나는 자기소개와 함께 인터뷰에 응해주어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보내려고 했다. 마지막에 웃는 이모티콘을 붙이면 A 씨가 볼 수 있을까 잠시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곧 상태 메시지의 고양이 삼총사가 그냥 보내도 된다는 눈빛을 보내와 전송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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