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14장. 동수의 일상
동수는 유경의 글이 눈에 띄게 좋아지는 현상이 고무적이었다. 유경이 혼자 끙끙대며 사수했던 지난 8년의 홀로 글쓰기 시간이 유경도 모르는 사이에 든든한 밑거름이 되었기 때문이라 여겼다. 무엇을 하든 그것을 루틴으로 만든 사람은 그만큼 내공이 쌓이고 깊어지는 법이다. 비록 그 열매가 가시적으로 드러나기에는 또 다른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유경에게 글쓰다짓다는 인생의 어떤 전환점이 되는 것 같았다. 동수는 유경이 지금까지 썼던 글을 순서대로 훑어보며 땅에 심긴 하나의 씨앗이 뿌리만 내리다가 마침내 땅 위로 싹을 내민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유경은 충분히 작가로서, 특히 에세이스트로서의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 동수는 미래의 작가를 돕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에 조용한 감동이 되었다.
유경이 일상의 단편을 그려낸 글을 칭찬한 뒤 동수는 그만의 글을 쓰고 싶어 같은 주제로 글을 써 보고 싶어 한참을 생각했다. 미국에서 아들과 단 둘이 살았던 시절이 떠올랐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퇴고를 거친 후 단톡방에 올렸다.
퇴근 후 일상
아이가 전력으로 달려와 내게 안기던 순간을 기억한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길 가에 줄지어 서 있는 팜트리와 사람들 사이로 비스듬히 비추던 날이었다. 나는 인파를 미끄러지듯 빠져나와 아이를 찾은 뒤 자세를 낮추고 양팔을 크게 벌린 채 아이를 기다린다. 그 몇 초의 순간. 세상의 모든 시간은 멈추고, 세상의 모든 소리는 침묵한다. 오로지 움직이는 건 아이와 나, 둘 뿐이다. 나의 눈은 아이만을 바라보고, 아이의 모든 몸은 나를 향한다. 아이와 나만이 점유한 그 시공간. 나는 완벽한 타이밍에 맞추어 아이의 겨드랑이를 들어 올려 품에 꼭 안는다. 퍽 하는 소리, 익숙한 아이의 땀 냄새, 그 온전한 생명력, 또 금방 내려달라는 아이의 몸짓, 모두 다 세세하게 기억이 난다. 조금만 더 안고 싶어 하는 나의 내밀한 아쉬움과 울컥하는 마음을 참는 그 마음까지도.
기억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아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 유난히 크던 책가방을 등에 멘 채 쉬지 않고 종알거리는 아이. 숨이 찬 아이의 이마엔 땀방울이 맺혀 있고 머리는 조금 젖어 있다. 사뭇 진지하게 자기만의 일상을 아빠에게 이야기해 주는 아이. 때론 아빠가 잘 모르는 것을 자기가 알고 있다며 스스로 대견해하고는 아빠에게 친절하게 알려주던 아이. 가슴이 벅찬 나는 또 아이를 버쩍 들어 올려 안아주고 싶은 마음에 기회를 엿보다가 아쉽게도 집에 도착해버리곤 했다.
언젠가 치열한 긴장 속에서 외로이 하루를 마무리하던, 마치 의식과도 같았던 그 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제야 제자리에 돌아온 것 같았던 그 시간. 고된 하루에 찌들었던 마음이 비로소 정화되던 그 시간. 아이의 픽업시간. 나의 일상을 이루던 그 시간이 밀물처럼 밀려와 나를 압도한다. 나는 그 조그만 아이에게서 무한한 안정감을 느꼈고, 여전히 아이의 세상이던 나의 무게를 다시 실감할 수 있었다. 나는 무너지면 안 되었고, 무너질 수 없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살고 싶었다. 잘 살고 싶었다. 그리고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다. 무엇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집에 들어서면 나는 서둘러 요리를 한다. 냉동고엔 며칠 전에 소분해 놓은 잡곡밥이 아직 남아 있고, 한인마트에서 사놓은 신선한 야채도 넉넉하다. 다행히 녀석이 좋아하는 얇게 썬 소고기도 아직 유통기한이 남아 있다. 양배추를 아이가 먹기 좋게 한입 크기로 썰고, 묵은지 김치를 반 공기 정도 준비한 뒤 미리 물에 씻어 둔다. 웍을 달구고 식용유로 표면을 코팅하듯 바른 후 강불에서 고기를 먼저 볶는다. 고기들이 뭉치지 않게 하나씩 떼어놓는 작업을 잊지 않는다. 단 몇 분이면 붉은색이 사라지게 되는데, 이때를 놓치지 않고 불을 중으로 낮춘 뒤 양배추와 묵은지 김치를 투하한다. 살살 볶다가 양배추에서 물기가 스며 나오기 시작하면 다시 강불로 바꾸고 웍을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며 고기와 야채를 잘 섞이게 하면서 골고루 볶는다. 굴소스 한 스푼과 참기름 한 스푼을 재빨리 넣고 다시 잘 섞어준 뒤 불을 끄고 불맛이 사라지지 않도록 서둘러 접시에 담는다. 아들과 자주 해 먹던 '양배추 소고기 볶음'이 준비되는 순간이다.
아이를 부르려고 고개를 든다. 아이의 뒤통수가 보인다. 여느 때처럼 카펫에 앉아 레고를 가지고 놀고 있다. 최근에 다양한 크기의 레고 바퀴를 사줬더니 거기에 맞게 여러 가지 자동차를 만들었다. 입으로 슝, 쉭, 하며 꽤나 진지하게 놀고 있다. 아이를 부르려다가 잠시 멈춘다. 그리고 나는 잠시 무너진다. 저 깊은 곳에서부터 눈물이 왈칵 터져 나올 것 같은 심정이 된다. 숨을 고르고 안경을 다시 쓴 뒤 아이를 부른다. 현웅아, 맘마 먹자.
가끔은 요리를 다하고 아이를 부르려고 거실로 나오면 아이는 피곤했는지 불편한 자세로 고꾸라져 잠들어 있던 적도 있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아이의 쌔근쌔근 숨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그럴 때면 나는 아이를 부드럽게 들어서 침대에 잠시 눕혔다. 아이의 가슴에 귀를 갖다 대고 아이의 심장 박동 소리를 들었다. 내 것보다 두 배는 빠른 것 같은 그 박동 소리를 들으며 나는 다시 인생의 무게를 느끼곤 했다. 심장은 이렇게 뛰는 것이라고, 뛰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허튼 생각을 하면 안 되었다.
아이는 이제 한 달 뒤면 열여섯이 된다. 어엿한 청소년이다. 그러나 그의 여백에서 나는 여전히 내가 아는 그 조그만 아이를 본다. 성장 과정에서 맞닥뜨려야 하는 여러 문제가 이 아이에게서도 발견되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오래전 일을 기억하고는 마음을 다잡는다. 여전히 나는 이 아이에게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 눈이 깊은 사람이 되고 싶다. 꼭 그렇게 되고 말 테다.
유경은 동수의 글을 읽고 동수가 미국에서 겪었던 시절의 한 장면이 그림으로 보이는 듯했다. 유경은 동수가 되어 아이를 데리러 갔고, 달려오는 아이를 들어 올려 꽉 안았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같이 놀다가 잠든 아이를 잠재우고, 방 안에 혼자 앉아 인생의 무게를 느꼈다. 그리고 좋은 아빠가 되려고 애쓰는 동수가 보기 좋았다. 학창 시절에는 냉철한 것만 같았던 동수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또한 '눈이 깊은 사람'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 그게 어떤 사람인지 확 와닿진 않았지만, 유경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갈망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