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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잔향 22화

너는 득 되는 일만 하고 살아?

by 이제이

공용 킥보드가 쓰러져 있다
검은 모자를 쓴 학생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옳게 세워 놓는다

앞 집 빵가게 아저씨는 빙판에 미끄러져
팔에 깁스를 했다
오늘은 눈이 많이 왔다

옆집 과일가게 아저씨가
앞 집 빵가게 눈을 쓸고 있다

길모퉁이 노점에
직접 재배하신 콩과 대파를 파시는 할머니에게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슈트 입은 신사
뒤돌아선 그의 양손에는
검은 봉다리 네 개가 들려 있다

버스 정류장 벤치에는
젖은 우산 하나
길 건너던 아주머니가
슬며시

한밤중, 어두워진 골목
50은 돼 보이는 아저씨 한 분이
집에서 들고 온 사다리
양쪽을 잡고 쭉쭉 늘리니
가로등 전구까지 손이 닿는다

사람들은 바쁘게 지나가지만
누군가는
멈춰 서서
보이는 것을 봤으니
그저 한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니까

나는 꿈이 있다
위탁가정
잠시 꽃처럼 대접받고
머물다 갈 집
고개가 숙여지고 어깨가 늘어진 누군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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