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삶의 불완전성을 받아들이고 기뻐하기
첫 선물은 한 달 전 도착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우리 집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나를 위한 택배가 배달되고 있다. 나를 위한 선물 꾸러미 하나, 둘, 세엣, 네엣...벌써 열 개를 훌쩍 넘는다.
내가 받아 든 첫 선물은 내 트라우마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미성숙을 직면하는 과정은 처음엔 뜨겁고 쓰라렸다. 그러나 그 불편함을 소화하며 내 일상을 다시 협상해 나가고, 그것으로는 부족해 우울 속에서 깨달음을 발견하고, 머릿속의 인식이 재구조화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내가 지금껏 도달하지 못했던 자유를 조금씩 손에 넣었다. 그 모든 여정은 있는 그대로 내 부족한 모습 그대로의 '인정' 이라는 단순하고도 깊은 첫 단추로 부터 시작되었다. 나의 못난면을 견디며 그 감정에 아무렇지 않아지는 시간이 지나면 나는 그 단점을 데리고 사는 것도 아무렇지 않아질 만큼 강해진다. 근육이 유연해지며, 표정과 생각이 아주 자유로워진다. (마치 성인이 되어 실수와 부족함을 견뎌내며 애써 외국인앞에 나를 세우고 외래어를 배워가는 과정, 그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
나는 아직도 내 스스로에게 보내는 선물꾸러미를 하나씩 열어보고 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선물이 계속 도착한다. 이 깨달음의 선물 들은 어디에서 오고,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지만, 나는 그것이 내평생의 여정이라는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가장 최근에 풀어 본 선물들 중 세 가지는 내 삶의 방향을 확실히 바꾸어 놓았다.
첫 번째 선물 : 불안을 약분하는 힘
새로운 변화 앞에서, 나는 불안과 별개로 적극적인 생각과 말을 감행해야 할 때조차 불안 자체를 왜곡하여 그 위협을 증폭시키는 습관이 있었다. 이는 어릴 적 내 신변의 안전기지였던 아빠가 실성할 듯 울던 모습을 목격했던 어린시절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아빠를 지켜보던 내가 위태로워진 아빠를 본능적으로 직감하며, 맥이 풀리고, 내 감정은 어디로 향해야할 지 눈앞이 깜깜했던 그 때 그 감정, 마치 에버랜드 또는 디즈니랜드 쯤 되는 크기의 놀이공원에서 부모님을 믿고 잘 놀다 아무리 찾아봐도 부모가 없어진 것같은, 세상에 졸지에 혼자가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랄까...
나는 트리거에 의해 자동으로 튀어나왔던 반응들을 자각하며, 불안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통제하는 자율성을 점점 회복하고 있다. 1-10까지의 레벨 중 어느정도의 불안을 느껴야하며, 나는 지금 어느정도 불안을 느끼는지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단계를 스스로 하나 추가했다. 비효율적으로 높은 불안이 사치인 상황에서 나는 '캔디야, 거기까지는 쪼...금 아니지 않냐? 사치야 사치, 너 가진게 아주 많은가 보구나...' 하며 스스로에게 농담을 하며, 빵빵하게 부푼 풍선같은 내 마음을 톡톡 건들여 바람 빼듯 긴장을 풀줄 알게되었다. 더 이상 나는 불안이라는 감정에 속수무책으로 끌려가지 않는다.
두 번째 선물 : 보통이라는 삶에 대한 새로운 이해
'모범적', '정상적', '무난한' ,'보통'이라는 기준들은 전부 다 허상이었다. 엄마, 아빠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세상에서 주입된 기대들은 환상에 불과했다. 잘하진 못해도 무난하게만 살자, 평탄하게만 가다오 인생아.. 이런것들..도 '탁월함, 월등함, 흠없음' 이라는 단어와 마찬가지로 그저 완벽주의의 또 다른 색깔, 또 다른 이름이었다.
삶은 그 자체로 문제와 도전의 연속이며, 그 연속성이야말로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이라는 걸 '가슴으로 깊이' 깨달았다. 삶의 불완전성과 그것을 구성하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나는 내 삶의 난곡조차 평범한 여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삶은 마치 끝없이 이어지는 언덕을 넘는 것과 같으며, 휴식은 사이의 숨 돌림과 같다. 그저 언덕 위에서 느끼는 작은 고요의 순간들만이 잠시 평온해 보일 뿐, 그 역시 기쁠것도 뿌듯할 것도 없는 일상의 한 순간일 뿐이라는 것을 배웠다.
세 번째 선물: 부모를 받아들임으로서 얻은 자유
가장 풀기 어려웠던 매듭은 내 부모를 수용하는 일이었다. 억지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사실 이것만은 의식적으로 최대한 뒤로 밀어두었던 과제이다. 억지로 내 부모를 수용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잘 살아보겠다고 이민 후에는 연락도 끊고, 현재 십 여년이 지난 후이다. 하지만 가장 최근에, 그 무엇보다도 단단하게 묶인 매듭이 풀리며, 그것은 부모에 대한 자연스러운 수용으로 이어졌다. 트라우마를 소화하고 나니 부모님이 내게 해 준 수많은 노력들을, 그 노력의 부산물로 인해 생긴 작은 아픔들까지도 이제는 자연스럽게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핵심열쇠는 '문제 없는 부모'가 아닌 '트라우마 소화'에 있었다.
내가 내 자식에게 맛있는 밥을 차려주고 혹시나 마음이나 육체가 외국에서 아플지도 모르는 내 아이를 위해 과학을 공부하고 의사가 되려는 마음, 그 동기가 어린시절, 인지적 왜곡 즉 트라우마가 있었음을 미성숙의 결과였음을 인정하는 과정을 거쳤기에, 내 부모 또한 혹시나 그 분들이 가진 자원 안에서 최선을 다해 나를 사랑하고 키워 주신것은 아닐까?...를 의심하는 순간, 나는 내 부모와의 관계에서 처음으로 자유를 얻었다. 여기서의 자유는 상대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뜻한다. 긍정적인 점 보다는 사람은 스스로를 지켜야하기에 내게 위협이 될 수 있는 '부정적인 경험과 느낌'을 위주로 기억이라는 것이 작동된다는 뜻인 '부정편향'이라는 말을 온 몸으로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아빠, 엄마에 대한 아픈 기억들을 쓰며, 아이러니 한 것이 엄마 아빠가 내게 해 주셨던 좋은 일들이 뭉개구름처럼 다시금 샘솟아 내 머리를 채우는 시간도 있었다는 것이다. 매일 피곤한 중에도 아침밥을 오색 반찬으로 채워주신 엄마의 정성, 시험을 망해 억울해 펑펑우는 내게, 과정을 소중히 한다고 나의 독창적인 생각과 접근방식을 존중해주셨던 아빠의 스다듬음, 내가 무언가를 잘하든 못하든 늘 나를 볼 때에는 사랑을 가득담은 눈빛으로 이성의 끈을 잃은 채 미소를 머금은 내 부모님의 표정을 본 순간들은 내가 내 아이를 볼 때의 표정이라 깜짝 놀랄때가 있다. (누구나 이런 부모님을 만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이제 나이가 들며 여러 부모, 자녀들을 보며 알게 되었다. 좋은것과 나쁜것은 섞여있다. 누구나....)
내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느낀 사랑과 노력의 진실이, 부모님의 나를 향한 사랑과 닮아 있음을 깨달으며, 나는 그분들의 불완전함조차 온전히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진심을 다해 열심히 노력해 내 아이들을 키울 수록, 나를 향한 내 부모의 순수한 노력에 대한 확신을 확보할 수 있으니, 아이를 향한 나의 노력이 내 부모의 나에 대한 사랑으로 피드백되어 다가오는 것을 보며, 세상에 허튼것이 없고, 공명의 확신을 체험한다.
스스로의 마음을 돌보며 이제 나는 스스로를 위한 최강의 변호인이 되었고, 그 후 가족, 친구, 이웃을 구원할지는 나의 선택으로 남겨 두었다. 정작 나 자신을 돌보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문제에 몰입해 내 문제를 잊으려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비롯된 수치심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에서 자유로워졌다. 마음의 불편한 감정을 피하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소화시키고 나니, 내가 내 스스로를 지키는 든든하고 뜨근한 라이프가드가 된 것 같다.
이제 열심히 노력하고, 맘껏 능력을 발휘함에 거침이 없어졌다.
정정당당히 있는 그대로 누리고 기뻐하고 감사하겠다.
이 모든 과정은 내가 내게 준 선물이었다. 그리고 이 선물들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완벽한 내가 되기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 대신,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누리고, 기뻐하며, 감사할 것이다. 삶이라는 여정이 주는 모든 순간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끊임없이 성장해 나갈 것이다.
이 매거진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당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이 스스로에게 보낸 첫 선물은 무엇인가요?
삶은 때때로 쓰리고 혼란스럽지만, 그 모든 여정은 우리가 진짜 나를 발견해 가는 선물의 연속임을 믿습니다.
나는 내게 주어진 선물들을 열어보며, 나를 위한 최강의 변호인이 되었고, 이제 남은 여정은 나를 위한 축복이자 선택입니다. 당신 역시 당신의 선물을 하나씩 열어가며, 삶의 진정한 기쁨과 평화를 발견하길 바랍니다.
삶은 단순히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손으로 직접 포장지를 풀어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오늘도 내일도 당신이 열어볼 선물로 가득 차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