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캐나다아재 Sep 27. 2024

용서

용서도 힘이 있는 놈이 하는거야. 


찬주는 대학동창들과 모처럼 골프를 쳤다. 


기분좋게 운동하고 셋이서 찬주의 집 근처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인근 대형 쇼핑몰 같이 한 열 개의 식당들이 모여있는 공동 주차장 가운데 주차를 하고 친구들 2명과 삼겹살에 소주 한잔을 했다. 


주차장을 지나치는 데 어디로 2차를 가려고 하냐고 물어서, 길 건너편의 LP BAR를 가려고 한다 했더니만 주차장에서 차를 빼라고 했다. LP BAR는 옛날 음악을 원판으로 된 구식 레코드를 진공관 앰프 오디오로 틀어주는 곳으로 나름 이 지역에서는 명물이다. 


술을 먹었으니 차를 바로 뺄 수는 없다는 점이 딜레마였다. 겨우 이삽심미터를 움직이려고 차를 운전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나중에 주차비를 내겠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차를 빼라고 해서, 그는 매우 난감했다. 모르기는 해도 아마 그 공동 주차장 관리단쪽과 겨우 2차선 길하나 사이를 두고 있는 LP BAR와는 사이가 좋지 않은 것 같았다. 


찬주는 술이 많이 취했다. 지금 이 상태에서 운전을 하면 음주운전이 된다. 하지만 그 곳을 가겠다고 하니 주차관리 요원들이 무조건 차를 빼라고 한다. 자신들이 있는 쪽의 식당만 이용을 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마냥 그들과 실랑이를 할 수 없어서, 찬주는 알겠다고 하고 그냥 차를 놔두고 건물을 삥 돌아서 LP BAR로 갔다. 그리고 LP BAR에 앉아서 맥주도 시키고 옛날 노래도 듣고 친구들과 담소도 나누고 했다. 한 시간 즈음 지나서 어떻게 알았는지 해당 LP BAR로 주차요원이 들어와서 차를 빼 달라고 했다. 


그 순간에 찬주는 당황하고 놀랐다. 모처럼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기분좋은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데 주차문제로 시비가 붙은 것이다. 그것도 주차를 불법으로 한 것도 아니고 분명히 그 식당에서 1차를 거기서 먹었고, 이제 간단히 맥주한잔을 더 하려고 한 것이었다. 그 식당 전용주차장도 아니고 그 인근 식당들과 공동 주차장으로 눈으로 보기에도 최소 2천평은 넘는 공간이었다. 


휴식하는 시간을 방해받는 것은 정말 화가 나는 일이다. 찬주는 더구나 혼자도 아니고, 친한 친구들 앞이라 체면도 상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미 LP BAR에 들어온 시간도 어느정도 되고 해서 이 참에 대리기사를 불러서 헤어지자고 하고 주차장에 갔더니 주차를 해 놓은 찬주의 자동차가 나가지 못하게 다른 차를 가져다가 살짝 막아 두었다. 그래서 찬주는 화가 폭발하고 말았다. 


“야, 쓰발 차 안 빼?”


주차관리 하는 사람이 궁시렁대면서 막아 놓았던 차를 뺐다. 


멀리서 온 친구들도 말리고, 마침 대리기사가 와서 진정하라고 했다. 찬주도 화를 삼켰다. 

더 화를 내는 것은 친구들에게도 실례일터였다. 


어쨌든, 대리기사의 안전한 운전을 지원받아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다음날 술이 깨서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 쪽도 잘못했지만 찬주도 욕을 한 것은 잘못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자신은 성공한 비지니스맨이 아니던가. 어떤 영화에서 본 인상깊은 장면이 생각났다. 

주인공의 상대 악역 사장의 말이었던가. 자세하지는 않지만 자주 생각나는 말이다. 


영화 짝패에서 영화배우 이범수가 친구를 배신하면서 한 말이 기억났다. 

용서는 아무나 하는게 아냐. 용서도 힘이 있는 놈이 하는거야.” 


‘가자, 찬주야, 가서 그 힘 없는 주차관리 아저씨를 용서해 드리자. 그들도 먹고 살려고 하는 짓이지. 누가 시킨 사람이 있을거야. 그들은 그냥 윗사람 말을 드는 하수인일 뿐이야. 특히 네가 욕을 한 것은 무조건 이유여하를 떠나서 잘못한거야.’ 라고 스스로 되뇌였다. 


가다보니 약국이 하나 보였다. 차를 대고 시원한 박카스를 한 박스 샀다. 

그날 저녁 퇴근길에 집에서 조금 떨어진 그 주차장을 찾아갔다. 


주말이 아니어서 공용주차장에는 차량과 사람이 별로 없었다. 

찬주가 이렇게 살펴보니 어제 시비가 붙었던 사람이 앉아 있었다. 


“어이쿠, 수고가 많으십니다. 어제 여기 와서 실례했던 사람입니다. 제가 술이 만취해서 난동을 피운 듯 하여 죄송합니다.” 찬주가 차 밖으로 나가서 고개를 숙였다. 


밝은 곳에서 보니 주차관리를 하시는 분은 찬주보다 한 열 살은 많아 보였다. 머리는 염색이 빠져서 흰색도 아니고 검은색도 아닌 회색빛이 되어 있었다. 그는 표정이 다소 굳어있었다. 


“죄송합니다. 어제는 제가 좀 오버를 했습니다. 술이 과해서 욕을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어르신.”라고 말하면서 준비해 온 박카스를 전달했다. 


“아, 네, 어제는 좀 과하셨어요. 알겠습니다.이렇게 오셔서 그래도 사과의 말을 해 주시니 맘이 좀 풀리네요. 허허.” 회색빛 머리를 한 주차관리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손을 내밀었다. 


그것은 진정한 화해의 악수였다. 


찬주도 그 손을 굳게 잡았다. 


찬주가 떠나자 남자는 주차관리실에 들어갔다. 


지갑에서 낡은 메모지 종이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차량번호와 주소가 적힌 칸을 보았다. 


지금 나가는 검은색 벤츠 차량의 넘버는 3763이다. 


그리고 전화를 걸었다. 


“아그들아 어제 난동 핀 손님은 와서 사과를 하고 갔다. 내가 용서할란다. 어, 작업하지마래잉. 차량번호? 어어. 3763번이야. 어 삭제하라고. 전산에서도 지우고. 그럼 뭐 어떻하냐고? 마, 올해 말에는 그 다음 순번으로 가야흔께. 걔는 집이 양평이재? 5183번 렉서스였재? 그래. 알았어. 일년에 한 명만 조져. 우리가 무슨 연쇄살인마들도 아니고, 그래, 손님이 왔다고? 알았응께. 그라부러, 수고.”


주차차량 관리부스 안은 더웠다. 선풍기가 돌고 있었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땀이 나니 어릴적 철없을 때 한 문신 때문에 등판 전체가 가려워왔다. 주차료 정산 영수증 기계 옆에 걸어둔 효자손을 꺼냈다. 그게 더워서 가려울때는 최고의 효자다. 누가 이름을 지었는지 정말 잘 지었다고 남자는 생각했다. 


등을 한참 긁고 난 후에 여전히 한가한 주차장 가운데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그의 시선이 바로 옆에 붙은 낮으막한 인근 산 중턱을 향했다. 


어느 평평한 지점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조용히 두 손을 마주해 합장하듯이 맞대고 고개를 살짝 숙이기까지 하면서 누군가의 명복을 빌었다. 


그의 입술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그는 늘 사람 숫자 만큼 명복을 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각 사람은 다 존중 받아야 하니까.  


한꺼번에 ‘퉁’칠수는 없는 부분이었다. 


그렇게 열 세번을 같은 문장을 되뇌였다. 


그 나무 아래 십 여명의 이런 저런 주차시비 난동자들이 잠들어 있었다.  


‘열 네명 아닌가.’ 그는 요즘 헷갈린다. 


나이가 먹어 가는가보다.


헷갈릴때는 한번 더 하고 보는 거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조용히 읊조렸다.  


아, 맞다. 주차장에서 다른 고객을 때린 헬스트레이너 그 놈이 작년 말에 묻혔네. 


그 친구는 여기 주차장 건이 아니어서 자꾸 헷갈리는구나. 


열 네명이네.  


땀 몇 방울이 그의 이마에 흘러내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