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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나다아재 Oct 02. 2024

알라딘의 램프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알라딘의 램프를 샀다. 

찬주는 퇴근길에 우연히 본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범상치 않게 생긴 램프를 하나 샀다. 


마치 아라비안 나이트의 우화집에서 나온 알라딘 램프처럼 생긴 램프였다. 


집에 가지고 와서 혹시나 하고 못쓰는 손수건에 기름칠을 해서 살살 때를 닦으니 ‘펑’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에 터번을 쓴 램프의 요정이 나타났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주인님.”


찬주는 잠깐 놀랐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는 마음에 신이 났다. 


“넌 누구니?”


“저는 램프의 요정입니다. 당신의 평생소원 한 가지를 들어드립니다.”


“뭐야, 한 가지? 원하는 데로 다 들어주는 것 아니었어?”


“아니요. 한 가지입니다. 옛날에는 그랬는데요. 계속해서 한 사람과 있다 보니 지겨워서 저 높은 곳에 계신 분께 항의를 했더니 각 사람의 평생소원 한 가지만 들어주면 다시 랜덤 하게 어딘가로 팔려 나가게 설정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다른 것은 다 들어드릴 수 있지만 소원의 개수를 늘려달라는 꼼수 소원은 절대 안 됩니다.”


찬주는 일단 차분하게 카페에 앉아서 생각을 정리하기로 했다. 


과연 지금 이 순간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종이를 꺼내서 차분하게 써 내려갔다.


돈을 한 백억쯤 달라고 할까. 아니 백억은 너무 작다. 백억을 달라고 하자. 아니 일조? 아냐. 


일조는 솔직히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 백억은 큰돈이지만 이런 평생 한 번의 소원으로 빌기엔 너무 작고 그래도 자신이 감당해 낼 수 있는 수준의 천억이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억이 생기면 어디에 쓸까? 천억이 생기면 강남에 건물을 하나 사고 매달 월세 받으면서 편안한 여생을 즐길 수도 있다. 


일단 돈이 생기면 그 돈으로 멋진 집도 사고 빨간 스포츠카를 사는 거야. 


그리고 예쁜 여자를 만나서 결혼도 하고 아이는 한 두 명 정도나 아니 필요하면 세 명도 좋겠지. 


아파트를 좀 넓은 아파트를 구하면 되니까. 


거기까지 생각하니 자신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천억이라 흠.... 아니 조금 더 달라고 할까. 


2천억이나 3천억 도 좋겠지. 


아니 가만있어봐. 그런데 그렇게 돈이 많아도 건강이 갑자기 안 좋아지면 어떡하지. 


요즘 가뜩이나 각종 전염병이나 독감도 유행인데 아직 젊으니 코로나 같은 건 걸려도 괜찮겠지만 만약 암이라도 생기는 날에는 돈이고 뭐고 다 필요 없잖아. 그래 돈보다는 건강이지. 어른들도 건강이 최고라고들 하잖아. 


건강한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하면 건강이야 좋겠지만 그럼 지금하고 다른 게 아무것도 없잖아. 


평생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살게 해 달라고 하면 나야 좋겠지만 그럼 내가 돈을 다 벌어야 하는 것이잖아. 


그럼 지금처럼 아르바이트도 해야 하고, 역시 돈이 좋을 것 같아. 


돈과 건강을 한 번에 챙길 수는 없을까. 뉴스를 보니까 대통령이 되면 돈도 생기고 주치의도 있고 그렇던데. 그래 권력을 달라고 하자. 


남자는 뭐니 뭐니 해도 권력이 아닐까, 친구들 만나서 가오도 생기고. 


국회의원이 되면 비즈니스도 공짜로 타고 다니고 KTX도 공짜인 것 같던데 알아서 거마비도 기업에서 챙겨주는 것 같기도 하고, 뭐 기왕 권력을 얻을 것이면 대통령이 되게 해 달라고 하면 어떨까. 


대통령이 되면 매달 월급에 평생 연금도 생기고 주치의가 아프면 다 치료해 주잖아. 


그럼 알아서 멋진 여자도 생길 것이고, 가정도 생기게 되겠지. 여자는 누군지 몰라도 좋겠다. 나랑 결혼하는 순간 퍼스트레이디가 되는 것이잖아. 


아 근데 대통령은 임시직이잖아. 임기가 있었네. 그걸 생각 못했어. 아무리 날고 기어도 5년뿐이라고. 


대통령이 되었다고 치자. 5년 후에는 뭐 할 거야. 아직 젊은데 어디 가서 편안하게 술도 한잔 못 마시고,


 친구들도 나를 멀리하게 될 거야. 난 경호원에 둘러싸여서 살게 되겠지. 


맨날 야당에서 확성기 가지고 와서 떠들어서 잠도 편안히 못 잘 것 같던데. 


아니야, 난 대통령을 하기엔 너무 젊어. 


솔직히 대통령을 하려면 지혜로워야 해. 혹시라도 외교적인 문제가 생기거나 국제 교류를 하려면 비행기를 타고 가서 만나기도 해야 하는데 난 술을 잘 마시지도 못하잖아. 


괜히 내가 대통령이 되면 그나마 잘 살고 있는 우리나라의 국력이 약해질지도 몰라. 


찬주의 생각은 꼬리를 물었다. 


도대체 어떤 소원을 선택해야 할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돈도 좋고 건강도 좋고 권력도 좋았다. 


아주 미남으로 만들어 달라고 할까. 모든 여자들이 자신을 쫓아다니는 사람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문제였다. 잘못하다가는 강력한 램프의 요정이 마법이라도 부린다면 길가는 모든 여자들이 자신의 뒤를 쫓아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고민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집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펑’하는 소리와 함께 램프의 요정이 나타났다.


“자, 소원을 말씀해 주십시오.”


“미안해, 오늘은 도저히 결정을 못하겠어. 내일 말해줄게.”


“네, 알겠습니다.”


스르륵하는 소리와 함께 방안 가득히 나타났던 램프의 요정은 사라졌다. 


기상 시계 알람과 함께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회사로 출근했다. 근무를 하면서도 머릿속에는 온통 어떤 소원을 빌어야 좋을까 하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때였다. 기상천외한 생각이 났다.


초능력을 달라고 하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벽을 통과하는 초능력을 달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벽을 통과하는 초능력의 경우 문제가 있다. 


그건 무엇보다도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은 아니다. 


기껏해야 남의 집 물건을 도둑질하는 데는 좋겠지만 그건 찬주의 성향과 맞지 않았다. 


아버지는 돈은 없어도 평생 정직하게 살라고 했는데 그걸 어기는 행동이었다. 


하늘을 나는 초능력은 어떤가. 하늘을 날 수 있으면 어디든지 이동이 가능하다. 


새처럼 훨훨 날아다닐 수도 있다. 하지만 찬주는 고소공포증이 있었다. 


하늘을 날아다닌다고 해서 높은 곳에서 날아다니는 상상만 해도 속이 울렁거렸다. 아, 이건 아니다. 


물건을 이동시키는 염력은 어떤가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가만히 앉아서 현관문도 열 수 있고 리모컨을 집거나 창문을 열고 닫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를 괴롭히는 저 과장이 길을 갈 때 구두를 휙 하고 공중으로 들어버리면 가다가 미끄러지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나쁜 짓이었다. 


염력을 쓴다는 소문이 나면 국가 기관에 잡혀가서 평생 실험 대상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머리에 괴상한 선들이 연결된 모자처럼 생긴 헬멧을 쓰고 그들이 원하는 실험이나 하루 종일 하면서 살게 될지도 모른다. 


퇴근을 하면서 전철 안에서도 이런저런 생각을 해 봤지만 뾰족이 맘에 확 들어오는 소원은 생각이 나질 않았다. 


집 문을 열고 들어가자 다시 ‘펑’하고 램프의 요정이 나타났다. 


“어떻게 생각을 좀 해 보셨나요?”


“아니, 아직 생각을 못했어. 좀 기다려 줄래? 너무 보채지 말고.”


“네, 그럼 부르실 때까지 나타나지 않겠습니다.”


램프의 요정은 다음날부터 정말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났다. 


일 년째가 되던 날 퇴근을 하는데 다시 램프의 요정이 나타났다. 


“주인님, 제가 여기 온 지도 1년이나 지났습니다. 이제 소원을 말씀해 주실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아니 아직 못했어. 제발 보채지 좀 말고 좀 기다려 줘. 하나밖에 없잖아. 소원이 그렇지 않아? 


이건 내 평생의 소원인데 좀 차분하게 이런저런 변수까지 생각해서 신중하게 선택하려고 하는 것이니 이해 좀 해 줘.”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몰랐다. 


회사에서도 전철 안에서도 항상 소원에 대한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시간이 가는 줄을 모르니 직장생활은 순조롭게 견뎌냈다. 이제 그는 회사에서 존경받는 부장이다. 


늘 진중하게 생각에 잠겨 있다. 


회의시간에도 필요한 부분만 언급하고 나머지는 부하직원들에게 공을 돌린다. 


말하기보다는 주로 듣는 편이다. 


가끔은 눈동자에 초점이 없어서 혼자 무슨 공상을 하고 있는 듯이 보이기도 했지만 그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아 상대의 말을 잘 듣는 것 같이 보였다. 


어차피 부장쯤 되면 일은 부하직원들이 다 한다. 


자신은 잘 들어주고 칭찬해 주고 좋은 의견을 내면 거절하지 않고 임원진에게 넘기면 끝난다. 


찬주의 취미는 커피 한잔 놓고 카페에 앉아서 사색에 잠겨 있는 것이다. 물론 그의 머릿속에는 어떤 소원을 빌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돈이냐, 권력이냐, 건강이냐. 세 개를 한 번에 다 가지지 못하는 이상 그 어떤 것도 완벽한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가끔은 그냥 멍하기 있기가 뭐해서 연말에 회사차원에서 다른 선물과 부록처럼 받은 시집이나 책을 펼쳐 놓고 있기도 했는데 그런 찬주의 평온한 모습이 맘에 든 카페 여사장의 데이트 신청을 받아서 둘은 결혼까지 했다. 


둘 사이에는 아이까지 생겼다. 


이쁜 여자아이 둘이었다. 찬주는 가족들에게도 친절하고 과묵한 아버지 역할을 잘 해냈다.


 아이를 보라고 해도 하루종일 생각에 잠겨서 아이를 손으로 밀면서 반복적인 일에도 짜증 한번 내질 않았다. 


그런 아이들이 어느덧 열 살이 되고 스무 살이 되었다.


찬주는 친구들과 흥청망청 지내지도 않았다. 


열심히 직장 생활하고 엄한 곳에 돈을 쓰지 않으니 적은 월급에도 찬주의 통장은 조금씩 잔고가 늘어갔다. 


아내도 카페를 운영하면서 부업으로 돈을 벌었다. 서울 외곽 변두리에 방 세 개짜리 아파트도 분양받았다. 


늘 집에 오면 씻고 나서 아이들을 보거나 책을 보면서 뭔가를 계속해서 적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아버지가 늘 그런 모습을 보이니 아이들도 책상에 앉아서 책을 보고 함께 공부를 했다. 아이들은 모두 명문대학에 진학했다. 


그 흔한 부부싸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취업했다. 아이들이 결혼을 하겠다고 했을 때도 찬주 부부는 흔쾌히 승낙했다. 그들의 인생은 그들 것이었다. 


찬주는 돈을 왕창 달라고 해서 아이들에게 많은 재산을 남길 까도 생각을 했지만 갑자기 많은 돈은 그들에게 해가 될 것 같았다. 재벌가 치고 사이좋은 형제나 자매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이제 와서 영생을 살게 해 달라고 하는 것도 의미가 없을 것이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같이 이렇게 늙어가고 이마에 주름져 가는 것이 좋은 것이지, 자신만 영원히 살고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까지 자기보다 늙는 것을 보는 것이 과연 뱀파이어와 뭐가 다를 것인가. 


그는 램프의 요정을 불렀다. 


“자네, 아직 거기 있는가?” 그는 램프를 손수건으로 문질렀다.


‘펑’하는 소리와 함께 램프의 요정이 나타났다. 


“이제 소원을 말씀하실 겁니까?”


“아냐, 난 평생소원을 생각해 봤는데, 이제 남은 여생을 잘 살 수 있는 적당한 정도의 돈도 있고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도 있는데 뭐가 더 필요하겠는가. 


더구나 소원을 생각하는 습관 덕분에 사색하는 버릇이 생겨서 나의 삶은 아주 차분하고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사람으로 성격도 바뀌었다네. 그건 자네에게 감사하는 바이야.”


“제 덕분이라니 기쁘군요.”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 가장 즐거운 것 같아. 이 행복함도 다 자네를 만났기 때문일세. 자네를 만나기 전에는 내가 하루하루를 불만스럽게 살았고,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하면서 살았네. 돈도 가지고 싶었고 권력도 탐했으며 건강하게 평생 사는 것도 원했었지. 


하지만 인생의 도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가족의 삶에서 깨닫고 있다네.”


“그럼 돈이라도 한 백억정도 가지게 해 드리면 어떨까요?”


“지금 나이에 돈이 있으면 어디에 쓰겠나. 


젊은 처자나 거느리려고 하거나 쓸데없이 차나 바꾸고 멋진 시계를 사겠지만 어디에 들고나가겠나? 


노인정에? 거기 노인들은 눈이 침침해서 내가 뭘 차고 나갔는지도 모른다네.”


“그럼 젊을 때로 돌아가게 해 드리면 어떨까요?”


“젊을 때로 돌아간다면 지금의 아이들과 아내도 없는 때가 아닌가? 어휴, 그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네.


 만약 돌아간다면 지금의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 못 견딜 것이야. 아내도 너무 보고 싶을 것이고. 


나 혼자 젊을 때로 돌아가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는가.”


“아니 아무런 소원을 말씀하지 않으실 것이면,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해 놓고 왜 저를 부르신 건가요?”


“난 아무 소원이 없다고 말해주려고 불렀다네. 이렇게 말하기까지 수십 년이 흘러서 미안하네. 


그 말하려고 부른 것이야.”


“그럼 소원은 없는 것인가요? 없다면 공식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그 뒤는 저도 책임지지 못합니다.” 


램프의 요정은 수십 년을 기다려도 제대로 된 소원을 빌지 않은 찬주에게 짜증이 난 듯싶었다. 


“좋아. 그렇게 말하지. 내 소원은 공식적으로 없어. 아무 소원이 없다고.”


그 말이 끝나자마자 ‘펑’하는 소리와 함께 램프가 사라졌다. 대신 램프가 있던 자리에는 양복을 빼 입은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의 눈은 붉었고, 머리카락 사이로는 날카로운 원뿔 두 개가 손가락 한 마디만큼 나와 있었다. 남자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쳐다보았다.  


찬주의 시선도 남자의 시선을 따라 천장을 향했다. 분명 조금 전까지 막혀있던 찬주의 방 천장은 마치 강력한 허리케인에 지붕이 날아간 서양주택처럼 천장이 야외로 뻥 뚫려있었다. 


자세히 보니 천장으로 막혀 있어야 할 자리는 마치 야외인 듯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한 둥그렇고 낮은 뭉게구름이 펼쳐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뭉게구름 위로는 거기엔 수많은 천사들에게 둘러싸인 한 사람이 보였다. 하도 멀어서 손톱만 하게 보였지만 그건 분명히 하얀색 옷을 입고 금빛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의 형상이었다. 


양복을 빼 입은 남자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전혀 기죽지 않고 입을 삐쭉거리면서 한마디를 했다.


“내가 졌소.”


“약속대로 천만명을 보내게나.” 하늘에서 음성이 에코마이크처럼 울렸다.


“흥, 다 데리고 가려면 앞으로 수천번은 이겨야 할 거요.” 이 말을 남기고 양복 입은 남자는 사라졌다.


그 순간 땅속에서 아지랑이 같은 것들이 아스팔트를 뚫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건 마치 허리케인 같이 보이는 강렬한 바람들이었다. 


남자는 번개가 번쩍이자 바로 올라타서 사라졌다. 남자가 사라진 자리로 계속해서 허리케인 같은 바람이 불었다. 


서서히 천장은 무대의 장막이 양쪽 끝에서 다가오듯이 닫혔다.


찬주는 멍하니 천장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천사가 찬주를 향해서 미소 짓고 있었다. 


마치 잘했다고 칭찬이라도 하는 듯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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