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캐나다아재 Oct 01. 2024

[추리 초단편소설] 레시피

완전범죄 레시피를 팝니다. 

1년 전부터 아내가 좀 이상해졌다. 갑자기 회식이 잦아지고 술에 취해서 새벽녘에 귀가하는 일이 잦아졌다. 심지어는 블라우스의 단추가 떨어지거나, 한 칸씩 밀려서 옷을 입고 들어오는 일이 있기도 했다. 치마의 앞 뒤가 바뀌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래도 난 ‘에이’ 설마 하는 마음이었다. 


아내가 다니는 고등학교가 우리 아파트에서 겨우 두 블록 정도 떨어진 곳이기도 했고, 아내와 나는 소위 엘리트들이었다. 아내는 고등학교에서 국어과목을 가르친다. 나는 대기업에서 전략기획담당 상무로 근무 중이었다.  


탐정사무소에 백만 원 정도를 주고서야 나는 아내의 정부를 겨우 찾아냈다. 그는 아내와 같은 고등학교 체육 선생이었다. 여름휴가라 여행을 가려했지만 아내가 고3 담임을 맡게 되는 바람에 일정이 맞지 않아서 결국 그해 여름엔 결국 휴가를 가지 못했다. 


아내와 나는 둘 다 대한민국 최고 학부를 졸업했고, 나의 유년시절은 평범하고 행복했다. 은행의 임원으로 일하신 아버님 덕분에 편하게 자랐다.. 


아버님에게 늘 나는 자랑거리였다. 늘 입에 자신을 닮아서 머리가 좋다는 말을 달고 사셨다. 시원한 선풍기 앞에 앉아서 어려운 수학문제도 조금 생각하면 풀렸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에 대해서 동네방네 자랑을 늘어놓고는 하셨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H 대기업에 취업을 하자, 여기저기서 선 보라고 아우성이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제대로 된 여자를 만나본 적이 없었다. 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했고, 바둑 두는 것을 좋아했다. 가끔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등산을 다니곤 했다. 

나는 키도 일 미터 팔십 정도에 호리호리한 체격이었다. 


특별히 고생을 하거나 유별나게 모나지도 않았다. 결혼이나 여자를 만나는 일에 천하태평인 나를 보고 누나들이 여기저기서 소개팅을 주선했지만 그리 오래 만나지는 못했다. 내가 적극적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등산모임에 나갔다가 한 여자를 만났다. 여자는 단아하고 활기찼다. 무엇보다도 매사에 적극적이었다. 

쉬는 주말에 전화가 왔다.


“주말에 뭐 하세요?”

“그냥....”

“나와요. 영화 보고 밥 먹어요. 우리.”


마지막에 우리라는 말이 맘에 들었다. 강남 압구정동 CGV 앞에서 만났다. 영화 제목은 생각나지 않지만 로맨스 영화 같았다. 

영화를 보고 나오니 밖은 어스름한 어둠이 보이기 시작했다. 도산공원까지 걸어서 인근에 인테리어가 그럴싸 해 보이는 어떤 이자까야 주점에 들어갔다. 


백열등 불빛 아래서 제대로 여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여성은 큰 눈과 붉은 입술에 가름한 얼굴에 턱선은 날렵했다. 하얀색 실크블라우스에 검정 미니스커트를 입고 나온 모습은 너무 단아하고 예뻤다. 티슈를 꺼내 연신 입술을 열어 혹시라도 묻어 나올까 해서 립스틱을 확인하는 모습도 예뻐 보였다.  


토리카와나 생피망을 곁들인 닭고기 완자, 그리고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꼬치구이들과 곁들인 소주는 달았다.   


 그렇게 여자를 사귀게 되었다. 

난 여자가 맘에 들었다. 

곧 우린 결혼했다. 


내가 소심한 편에 비해서 아내는 활달했다. 

나는 회사원이었지만 아내는 고등학교 선생님이었다. 

그 모든 것이 맘에 들었다 


평소에도 잘 웃고 슬픈 영화를 보면 눈물을 뚝뚝 흘렸다.

영화를 보다가도 식사 때가 되면 무슨 마법사인양 뚝딱 하고 이삼십 분 만에 요리를 뚝딱 해냈다.  

그러다 보니 부부싸움도 거의 한 적이 없었다. 


아내가 쓰레기를 버리라면 버리고, 주말에는 아내를 도와 청소를 했다.

 1년 전 어느 날 아내가 회식에 나갔다가 진탕 술에 취해서 들어온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아내의 삶의 궤도가 틀어지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이따금씩 회식이라면서 술에 잔뜩 취해서 들어올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 보면 옷매무새도 흩트러져 있었다. 


직감이라는 건 무섭다.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부인을 해도, 진실은 시계 초침처럼 정확히 돌아가는 법이었다. 그건 마치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뜰 거야라고 말해도 어제와 같이 동쪽에서 뜨는 것과 같은 법이다. 조금 더 세상의 이치를 일찍 알았으면 바뀌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아내에 대한 내 작은 의심은 좁쌀만 했다가 점점 커져서 우리가 사는 이 공간 전체를 메웠다. 불신은 확신이 되고, 나는 이 공기가 너무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오늘도 회식을 핑계로 밤 9시 귀가는 10시가 되었고 결국 새벽을 넘겼다. 

아무리 늦어도 전화는 하지 않았다. 

전화를 하지 않는다고 용인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한 번은 따져 묻고 싶었지만 난 그런 것은 남자답지 못하다는 생각을 했다. 


난 사실 아내 말고 특별히 연애를 해 본 경험도 없었다. 

대처법을 생각해 보았지만 이걸 어디에 대고 툭하니 꺼내놓고 물어볼 곳도 마땅히 없었다. 

친구에게 물어봐야 하나. 누나들에게 말해야 하나. 

나는 결국 현실과 타협하고 했다. 


‘뭐 저러다가 돌아오겠지.’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건 내가 마무리 짓지 못한 천 피스짜리 퍼즐 중간에 포기한 것과 같은 것이었다. 내가 해결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시간이 간다고 저절로 잘린 다리가 생겨나지는 않는 법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회사에서 맡은 일이 너무 많아서 나는 도무지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어쩌면 나는 두려웠는지도 몰랐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두려웠다. 

내가 더 파헤치면 가정이 깨질 수도 있었다. 

다행히 두 아이는 아내를 잘 따랐다. 그래, 아이들만 잘 키워라. 


그것이면 한 눈 정도야 감아줄 수도 있다. 

내가 못 본 척을 하자 아내는 더욱더 나를 자극했다. 


어느 날은 밤늦게 귀가한 아내의 목덜미에 짙게 키스마크까지 나 있었다. 

그게 참고 눌렀던 나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아니 생각해 보면 옷 단추가 떨어졌을 때도 치마가 돌아갔을 때도 이미 다 참았는데 이걸 못 참지란 생각이 들었다. 그건 1%의 법칙이었다. 이미 내 안의 화가 99% 꽉 차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여기에 1%나 2%의 충격만 와도 감정적 폭발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때 나는 그걸 몰랐다. 


 “오늘 무슨 모임이라고 했었지?” 내가 물었다.

 “어? 선생들 모임.”

 “어느 선생들?” 


 아내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변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꼬치꼬치 물어볼까요. 우리 고3 담임 선생님들 모임이지 뭐. 이제 곧 여름방학이잖아요. 그래서 회식한 거야. 1학기 마무리 기념으로, 자기야, 나 더워서 샤워 좀 할게, 당신 먼저 자요.” 


아내는 옷방 쪽으로 가서 옷을 벗고는 샤워를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그날 밤 오랫동안 결심을 하고 있던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다음 날 회사에 반차를 내고 탐정사무소를 찾아갔다. 

실장은 밖에서 봐도 된다고 했지만 사무실에서 얘기를 하고 싶었다. 


 “여기 아내분의 사진이 맞지요?”

탐정이 내민 사진에는 분명 아내가 맞았다. 

아내 옆의 남자는 최소 자신보다 서너 살은 더 어려 보였다. 몸이 나보다 우람해 보이고 어깨도 넓어 보여서 짜증이 올라왔다. 


 “실장님, 제안 주신 내용으로 생각을 많이 해 봤는데요. 네 가지 말씀 주셨잖아요 제일 마지막에 말씀하신 조용히 완벽한 처리를 하고 싶습니다.”

“요즘엔 잘 사용하지 않는 방법입니다. 그냥 헤어지는 방법을 많이들 선택하세요.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죠.”

“아뇨, 저로써는 깊이 생각한 문제입니다.” 실장을 똑바로 응시했다. 


“알겠습니다. 말씀하신 방법은 비용이 비쌉니다. 매우.”

“얼마나 듭니까?”

“사람을 처리해 달라는 것은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요. 첫째는 누군가의 평생의 인생을 단절시키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가 저지른 잘못은 있지만 그래도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그 또한 누군가 가정의 가장이라는 것이죠. 셋째는 인간이 인간을 죽인다는 것은 엄청난 죄책감을 가지고 옵니다. 그런 것을 감당하는 것에 대한 비용입니다. 다행인 것은 이런 죄책감을 견디면서도 돈이라면 하겠다는 자원자들이 있다는 사실이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비밀을 유지하는 것도 돈이 듭니다. 킬러를 잘못 만나면 그것으로 협박을 당하기도 하지요. 저희는 그런 모든 리스크를 없애 드리는 조건으로 돈을 받으니 비싸게 느끼실 겁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흔적도 증거도 남기지 않는 전문팀이 있습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얼마인가요?”


 “5억 정도 듭니다.” 실장이 덤덤하게 답했다. 

 “그럴만한 돈이 없습니다.” 

내 수중에는 5억은커녕 5천만 원도 없었다. 그냥 주식 자금으로 운영하는 천만 원 정도가 전부였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대신 레시피를 알려드리는 것은 쌉니다.”


 “레시피요?” 나는 순간 웬 레시피라는 말이 떠올랐다. 

 “일종의 노하우 죠. 왜 프랜차이즈 식당도 보면 다 레시피 파는 것이잖아요. 떡볶이 프랜차이즈 한번 보세요. 따지고 보면 결국은 고추장 소스 하나의 노하우이거든요. 레시피만 드린다고 아주 저렴하지는 않습니다. 완전범죄에 대한 노하우이니까요. 이것도 얼마 남지 않았어요.”


“흠...... 가격이 얼마입니까?” 나는 당연히 관심이 생겼다.

 “5백만 원이에요. 비싸면 비싸고 싸면 싼 금액이죠. 참고로 이건 방법만 알려드리는 겁니다. 레시피 죠. 일종의.” 실장이 선글라스를 벗어서 면수건으로 닦았다. 


인터넷만 뒤져도 웬만한 검색을 해도 나올 내용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미 아내의 정부를 빠른 시간에 찾아낸 실력을 믿어보기로 했다. 설사 사기를 당한다고 해도 5백만 원이면 내 주식자금의 절반이니 나 혼자 견디면 될 일이었다. 나는 승낙했다. 

“구두 계약이면 됩니다. “실장이 문자로 계좌번호를 보내주었다. 


가을 초입까지 기다리라는 문자가 왔다. 실장에게서 이제 시작한다는 문자가 왔다. 이번 주 토요일부터 일단 상대남자에 대한 정보 조사부터 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실장은 아내에게는 친구와 낚시를 간다고 말해 놓으라고 했다. 누구랑 가냐고 해서 어 캐나다에서 친구가 잠깐 들어왔다고 하니 별 말을 하지 않았다. 


실장은 상대 남자의 주소를 보내왔다. 용인 상현동의 고급 아파트였다.  

일단 탐정사무소에서 받은 주소로 토요일 새벽부터 나는 아파트에 차를 몰고 들어갔다. 입구에서 경비가 물었지만 대충 몇 동 몇 호 간다고 얘기하니 특별히 제지를 가하지는 않았다. 해당 아파트는 모든 차들이 지하주차장에 댄다. 차를 몰고 돌아보니 남자가 몬다는 SUV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사진을 대조해 보니 실장이 보내준 사진과 정확히 일치했다. 


차로 내려와서 몰고 갈지, 전철로 이동할지는 알 수가 없었다. 토요일이니 차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주변의 눈치를 살피면서 차 사이로 들어가서 트렁크 밑에 강력자석으로 된 차량용 GPS를 붙였다. 

그리고 난 남자의 아파트 동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이웃 동 입구에 주차를 하고 기다렸다. 남자의 아파트가 산기슭에 위치해 있다 보니 아파트 입구로 나가려면 옆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했다. 차를 타고 이동하면 핸드폰으로 어차피 GPS 알람이 울릴 터이니 도보로 나가는 케이스만 확인하면 될 터였다. 


창문을 조금 내리고 조용히 음악을 틀었다. 담배를 반 갑 정도 피웠다. 삼사십 분 정도 지나자 사진으로 몇 번이나 본 남자가 등산복 차림으로 나왔다. 키는 비슷했지만 몸은 나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 남자는 아파트 앞 광장을 가로질러 끝 쪽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눌렀다. 저건 지상으로 연결된 엘리베이터였다.  


도보로 이동한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먼저 지하철역 인근으로 위치를 옮겼다. 차를 성복역 공용주차장에 댔다. 차에서 등산복을 꺼냈다. 마스크에 선글라스까지 꼈다. 멀리서 오는 남자를 기다렸다. 남자가 갈 곳이 뻔했다. 남자가 탄 칸 다음에 내가 섰다. 내가 탄 칸의 지하철 객차 호수가 보였다. 내가 탄 칸은 7-1이었다. 남자가 탄 칸은 7-2일 것이었다. 


야탑역에 도착하니 남자가 탄 칸으로 여자 한 명이 들어왔다. 누군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이미 결심을 굳혔기에 더는 미행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조용히 내려서 개찰구를 돌아서 나와 다시 성복역으로 향했다. 

차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월요일 오전이었다. 나는 남자가 근무하는 고등학교 앞 주유소 맞은편 건널목에 서 있었다. 

시계를 보니 8시 반이었다. 남자가 등교하는 학생들 사이에 있었다. 오고 가는 학생들 중에서 남자를 보고 인사를 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학생들이 많아서 이곳은 적당해 보이질 않았다. 새로운 장소를 물색해야 했다. 아니면 같은 장소라도 다른 시간대를 물색하면 맞지 않을까.

화요일 퇴근시간 남자는 보이질 않았다. 어디서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을까. 어차피 정해진 운명이니 급할 건 없었다. 

그렇게 또 한 이주가 지났다. 나는 매일 미꾸라지 같은 남자의 동선 어딘가에서 집요하게 시선을 떼지 않았다. 틈은 언젠가는 나온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목요일이었다. 

나는 사거리 중간에 마치 우회전을 할 것처럼 천천히 차를 몰았다. 이 시간을 맞추려고 몇 번을 돌았는지 모른다. 남자가 급히 건너주기만 하면 된다. 아니면 오늘도 여기서는 실패다. 걱정은 없다. 왜냐하면 난 어차피 계속해서 잡힐 때까지 시도할 것이니까. 횟수에 제한이 있는 게임도 아니지 않은가. 성복역 지하철 사거리 건널목에 막 진입한 남자가 보였다. 막 사람들이 우르르 건너가면서 파란 불이 깜빡일 때 남자가 5초밖에 남지 않았는데 무리해서 건넜다. 


5초면 충분했다. 

드디어 남자의 앞 뒤로 아무도 없는 혼자였다. 

미꾸라지 같던 상대남자가 건널목을 혼자 건너다니. 

심장이 쿵쿵 뛰었다. 


엑셀을 최대한 밟았다. 

나는 실장이 말해준 레시피 세 번째가 생각났다.

“아 차가 왜 이래. 아아아.” 크게 소리쳤다. 


 마침 차에서 굉음이 '콰앙'하고 났고 남자는 내 차에 부딪쳤다. 처음에는 내 차 앞쪽의 프런트 범퍼가 남자의 무릎을 작살냈고 튀어 오르는 그의 몸을 조수석 유리창이 두 번째로 남자의 머리를 받아냈다. 앞 유리창이 퍽 소리와 함께 원형으로 깨졌다. 피가 팍 튀었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졌다. 이제 브레이크를 밟을 차례였다. 하지만 난 핸들을 구십 도로 꺾으면서 그냥 액셀을 밟아버렸다. 정통으로 가로수를 받았다. 에어백이 터졌다. 


그때 알았다. 그 찰나의 순간도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면 이렇게 상세하게 그 순간이 느껴진다는 사실을 남자는 즉사했을 것이지만 살아 있어도 이 정도면 온전하진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 조차도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다행히 에어백이 터져서 경상에 그쳤다. 

 “급발진에요. 급발진...”

 기억을 잃었다. 군데군데 내가 119에 실려가는 장면과 병원 침대에 눕는 장면 등이 나왔다.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가질 않았다. 

그 정신에 물었다. "피해자는, 피해자는요."

누군가 했던 답했다. "즉사했어요. 즉사요."



눈을 떴다. 

병실에는 아내 대신 간병인이 있었다. 

온몸이 몽둥이로 맞은 듯이 아팠다. 

손가락 발가락 다 이상이 없었다. 

날짜를 바로 확인했다. 

이틀째였다. 


경찰이 남기고 간 명함에 전화를 걸었다. 

“급발진 사고 같던데, 블랙박스 확인했고 일단 조서를 꾸며야 하니 한번 서에 나오세요.”


전화를 끊었다. 

가장 시급한 일이 해결되었으니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신 어디야?”

“친구가 갑자기 죽어서 장례식장이야, 당신 낚시는 잘하고 있어?”


난 대답대신 어디 장례식장이라고 물었다.

통화목록을 확인해 보니 아내가 나에게 건 전화는 한통도 없었다. 


간병인에게 링거를 좀 빼 달라고 말했다. 

안되는데 하면서도 내가 내민 5만 원을 지갑에 넣고 있었다. 

“친구가 죽어서요. 금방 돌아올게요.” 아내의 변명을 나도 사용했다. 

택시를 타고 가면서 탐정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다.

“처리했습니다.” 


실장이 칭찬했다. 

“잘하셨습니다. 일단 몸부터 챙기세요.”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아내가 내 복장을 보고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이마와 얼굴에는 반창고에 대일밴드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다... 당신... 사고 났었어?”

내 시선이 장례식장 빈소에 놓인 남자의 사진을 향했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제야 아내는 뭔가 이해가 된다는 듯이 입을 반 즈음 벌리면서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두려운 눈으로 아내가 내 얼굴과 빈소의 남자 사진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빈소 옆에 앉아 있던 남자의 아내와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남자의 아내는 검정 개량 한복에 단아한 차림이었다. 


청순 가련형의 날씬하고 아담한 스타일의 미인이었다. 

화장을 하지 않았음에도 그냥 봐도 미인이다. 

왜 저렇게 이쁜 아내를 두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자는 힘없이 벽에 등을 기대고 환자복으로 들어온 나를 향해서 고개도 들지 않았다. 여자의 머리카락이 채 묶이지 못하고 옆얼굴 위로 내려와 있었다.  

한참 젊은 나이에 갑작스러운 사고가 청천벼락이었을 것이다. 


 내가 들고 있던 핸드폰으로 탐정사무소에서 문자가 왔다.

“아내분 건은 같은 방식으로 어렵습니다. 다른 완벽한 레시피 알려드릴 테니 5백 입금 바랍니다.”


나오면서 빈소의 사진을 돌아보았다. 

사진 속의 남자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이제 더는 안된다는 듯이.



끝.








이전 07화 [SF초단편] 꿈 비지니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