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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상혁 Apr 12. 2017

Modus Viveni,
꿈을 현실로 만드는 길

광장에 대한 응답

하남 감일동, 2013


어린이집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주소를 입력한 내비게이션에는 위치가 표시되고 있었지만 그곳으로 가는 길은 끊겨 있었다. 어렵게 찾아간 어린이집은 외곽 순환 고속도로 바로 옆에, 허름한 단독주택 몇 채와 무허가 텃밭들 사이에 앙증맞게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를 친절하게 맞이해준 사람은 어린이집 교사가 아니라 학부모였다. 그는 자신을 “아마”라고 표현했다. 경우에 따라 “조합원”이라는 표현도 썼다. 바로 공동육아 어린이집이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맞벌이 가정이라면 대부분 그렇듯 어린이집을 보내야만 했다. 공립 어린이집은 이미 경쟁에서 탈락했고 민간 어린이집의 열악한 상황은 뉴스를 통해 수차례 확인한 터였다. 믿을만한 어린이집을 수소문했고 지금은 희미해져버린 다양한 정보들을 검색하고 또 검색한 끝에 집 주변에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이러한 지난했던 과정이 공동육아에 대한 기대를 더 높여놓았던 것은 아닌가 싶다. 그곳도 역시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사람 사는 곳이고 비슷한 걱정과 다양한 욕망들이 모인 곳이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육아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유는 인정하던 인정하지 않던 육아를 한다는 것 자체가 사회적 약자의 자리에 서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좀 과장을 보태서 말하면 육아를 한다는 것은 저 멀리 세렝게티 초원에서 갓 태어난 새끼와 함께 오아시스를 찾아 이동하는 얼룩말 가족의 처지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세상은 믿을 수 없고 안전 구역 밖으로 한걸음만 나가도 생존을 보장할 수 없다. 생활비는 두 배 이상 늘고 오붓하게 인생을 만끽할 시간은 점차 0을 향해 수렴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 시대에 (육아상태에 있는) ‘부모’라는 타이틀이 ‘청년’이나 ‘여성’이라는 타이틀과 다르게 취급되는 것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 부모라는 존재 역시 청년이자 심지어 그 중의 절반은 여성인데 말이다.


실제로 “요즘 것들은~”이라는 프레임에 육아 상태에 있는 부모 역시 자유롭지 않다.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의 일이다. 지금은 퇴임하신 한 원로교사의 한마디 말이 아직도 가슴에 꽂혀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애 하나 키우는 것 가지고 왜 그리 엄살이 심한지 몰라. 우리 때는 애 셋 넷 키워도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살았는데 말야.” ‘아니 선생님. 애는 선생님이 아니라 사모님이 키우셨겠죠.’라는 말이 입 안을 맴돌았으나 뭐 그게 편견일 수도 있으니 꾹 참았다. 그래도 이 정도는 양반이다. ‘맘충’이나 ‘노키즈 존’ 등과 같이 육아 상태에 있는 부모나 아이에 대한 혐오현상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도 육아라는 것을 공적인 일이 아닌 한 가정의 사적인 일로 보는 시각이 여전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그런 점에서 공동육아는 달랐다. 육아가 공적인 일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일임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서울 신월동, 1979


서울 출신인 내가 어릴 적 살았던 동네는 서울 외곽에 위치한, 지금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이다. 단층짜리 단독주택에 월세를 살았는데 연탄아궁이가 있는 부엌이 딸린 단칸방이었다. 화장실은 따로 없어서 거실로 연결되는 문을 열고 주인집 화장실을 함께 쓰는 구조였다. 주인집 아저씨는 경찰관이었고 홈드레스를 즐겨 입던 - 그러니까 홈드레스겠지 – 주인집 아줌마는 키가 무척 컸다. 외동아들이었던 나와는 달리 주인집은 애가 셋이었는데 인지장애가 있던 여자애는 나랑 동갑이었고 그 밑으로 여동생 하나와 남동생 하나가 있었다. 아침을 먹고 쪽문 밖으로 나서면 멀리 공터에서 또래 아이들이 떠들고 노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집 앞으로는 똥내가 진동하는 개천이 있었고 아이들과 놀던 곳은 시멘트 하수관 더미가 쌓여있었지만 – 하수관의 중간쯤에는 꼭 똥이 있었다 - 아이들을 곁에서 지켜보는 엄마나 아빠는 없었다. 그냥 때가 되면 뉘집 엄마의 아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고 부르다 지친 엄마의 크고 앙칼진 목소리가 울려 퍼질 때쯤 하나 둘 자기 집으로 돌아서 갔다. 


지금은 이게 불가능하다. “요즘 것”들이 과거에 비해 아이를 과잉보호 하고 있는 탓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헬조선’은 육아 상태에 있는 부모들 역시 비켜가지 않는다. ‘헬’ 속으로 아이들을 그냥 내보내는 부모는 무책임한 모험주의자이거나 아동학대자일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달라졌는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먼저 공터와 골목이 사라졌다. 공터는 골목들과 연결된 일종의 광장이었다. 그곳은 단톡방과 놀이터의 요소를 동시에 갖춘 곳이었다. 공터가 그리고 공터와 연결된 골목이 사라지자 엄마들을 대신해 아이들의 안위를 지켜주던 골목대장도 사라졌다. 


이웃도 사라졌다. 이웃이란 무엇인가? 저녁밥이 조금 부족할 때 밥 한 그릇 얻어올 수 있으면,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잠시 아이를 맡길 수 있으면, 그러면 이웃이 아닐까? 한 가지 일화가 있다. 일곱 살 무렵의 일이다. 주인집은 조금 더 조용한, 서민 주택단지들이 들어서기 시작한 곳으로 이사를 갔다. 우리 집도 덩달아 이사를 했는데 이사한 주인집의 단칸방으로였다. 그런데 얼핏 봐도 주인집보다 더 번듯해 보이는 바로 옆집에 나보다 한 살 많은 형이 살고 있었다. 그 형 역시 약간의 인지장애가 있어 어리숙하고 힘만 세던 형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야”라고 불렀는데 몇 번 얻어맞고 나서 – 아마도 그 형 엄마가 사주를 했던 것 같다. ‘이 바보야. 네가 형이야.’ - 형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지병이 있던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어머니 간병을 해야만 했고 우여곡절 끝에 나는 그 형네 집에서 일주일을 보내게 되었다. 그 형이나 나나 엄마밖에 모르는 외아들이어서 잘 때도 사이좋게 아줌마의 젖을 만지작거리며 잠을 청했던 기억이 난다. 


만약 지금 그때와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일곱 살 딸내미를 옆집에 맡길 수 있을까? 그러지는 못할 것 같다. 그때와 같은 관계를 맺는 것이 이제는 불가능하다. 이웃이 그리고 마을이 사라진 것이다.



유동하는 삶


함경남도 함흥 출신의 아버지는 1․4후퇴 때 국군에 입대하여 혈혈단신으로 남으로 내려왔다. 충청북도 음성 출신의 양반집 딸로 전쟁의 와중에 남편을 잃은 외할머니는 졸지에 4남 1녀를 건사해야할 가장이 되어 어떻게든 생계를 꾸려야만 했다. 군부대가 모여 있던 춘천에서 음식장사를 시작한 외할머니를 찾아 나선 어머니는 그곳에서 휴가를 나와도 특별히 갈 곳이 없던 아버지를 만났다. 번듯한 결혼식도 없이 직업군인 가족으로 여기저기 떠돌며 살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결혼 십년 만에 아들을 하나 얻고 부랴부랴 결혼식을 올렸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정착한 서울의 한 변두리 서민동네는 완벽한 타지였지만 비슷한 걱정과 다양한 욕망을 가진 동네 사람들은 기꺼이 우리 가족을 이웃으로 받아들였다. 


아버지와 동시대인인 폴란드 출신의 유대계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폴란드 공산당의 유대인 축출운동에 의해 영국으로 망명하게 된다. 그때의 경험이 ‘유동하는 근대’에 대한 그의 깊은 통찰을 불러왔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가 볼 때 오늘날의 세상은 불확실성과 불확정성으로 규정되는 세계이다. 첫째, 공동체적 삶을 규정짓던 사회적 구조나 공동체에서 통용되는 삶의 양식이 사라졌다. (승강기에서 만난 옆집 아저씨와 모른 척해도 상관없는 세상이 되었다.) 둘째, 국민국가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지역과 국가의 정치로부터 통제받지 않는 치외법권 구역이 늘어나고 있다. (아이폰과 스타벅스, 그리고 각종 다국적 기업들을 생각해보라.) 셋째, 과거에는 개인이 실패하거나 불행해지면 공동체가 보호해 주는 안전망이 있었으나 이제는 사회적 유대가 기반하고 있는 토대가 무너지고 있다. (옆집 형네 집에서 일주일을 묵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되었다.) 넷째, 장기적인 안목으로 생각하고 계획하며 행동할 수 있게 하던 사회구조들이 사라지거나 약해지고 있다. (꿈을 꾸는 것은 사치이거나 헛된 망상취급을 받는다.) 다섯째,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불안감은 점점 커지는 반면, 모든 위험은 개인이 감수해야 하는 사회가 되고 있다. (안전사고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사라지고 민간 보험이나 법률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심해지고 있다.) 어느덧 유토피아를 논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아재개그 취급을 받고 있다. 유토피아에 대한 상상이 사라진 지금 남아있는 것은 생존을 위한 치열한 몸부림과 지옥(‘헬’)을 맛본 자의 냉소뿐이다. 


 

하남감일동 2014


딸내미가 어린이집에 들어간 지 한 달 남짓 지났을 무렵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그로부터 3주가 지난 5월 5일, 어린이집 개원 12주년을 기념하는 개원잔치가 열렸다. 모든 어린이집 조합원들이 아이들 손을 잡고 애기산에 올랐다. 아이들이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오르는 야트막한 산 중턱에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는 작은 나무를 심었다. 추모식을 마친 후에는 다시 3km가 넘는 거리를 걸어 인근 공원에 도착했다.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아마들만 힘들어했다. 서로 역할을 분담하여 어떤 집은 밥솥, 어떤 집은 반찬, 또 어떤 집은 과일을 챙겼다. 우리 집은 돗자리와 간식을 챙겨갔다. 이미 졸업한 아마들도 개원잔치를 찾았다. 돗자리를 펴고 준비한 도시락을 함께 나누었다. 처음 보는 얼굴들. 어색하지만 색다른 풍경이었다.


그로부터 두 달 후 가평에서 조합원 전체 모꼬지가 열렸다. 낮에는 체육대회를 하고 저녁 식사를 한 후에는 소위별로 우리가 꿈꾸는 마을공동체에 대하여 토론하고 그 결과를 전지에 기록하여 서로 발표했다. 아이들은 형과 언니를 중심으로 몰려다니며 잘도 놀았다. 불꽃놀이를 하고 캠프파이어를 하며 노래를 불렀다. 이십여 년 전 대학교 MT에 갔을 때가 떠올랐다. 


매달 한번 씩 가구별로 돌아가면서 조모임을 했다. 집으로 조원들을 모두 초대하면 어른만 열 명에 아이까지 합하면 족히 스무 명 가까이 됐다. 게다가 같은 조가 아닌데도 종종 놀러오는 조합원들까지 합치면 집은 쑥대밭이 되고 냉장고는 초토화가 되었다. 어느 날은 우연히 나온 한 마디 말에 (“갈까?” “가자!”) 예정에 없던 번개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내 생애 가장 많은 술을 마셨지만 신기하게도 숙취는 전혀 없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날 무렵 어린이집의 모든 아마들 이름과 아이들 이름을 알게 되었다. 딸내미를 하원시키러 어린이집에 가면 다른 아이들이 먼저 ‘푸른숲~’하며 반겨주었다.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무동을 태워달라는 아이도 있고 책을 읽어달라는 아이도 있었다. 그날 만든 작품을 선물로 주는 아이도 있었다. 우는 아이들은 안아서 달래기도 하고 부모가 늦게 퇴근하는 아이는 대신 집으로 데려가 밥을 먹이고 옷을 갈아입히고 목욕을 시키기도 했다. 어느덧 나도 모르게 공동육아에 젖어들었다. 새로운 꿈과 목표가 생겨났다.



서울송파일원 2016


2016년 2월 파란하늘공동육아사회적협동조합 정기총회에서 신임 이사장으로 선출되었다. 신임 이사회를 꾸려나가면서 설정한 과제는 세 가지였다. 첫째, 공동육아사회적협동조합의 역할을 고민하고 이를 구체화하는 것. 둘째, 첫째 과제의 연장선상에서 조합원의 사회적 참여의 기회를 넓히는 것. 셋째, 첫째와 둘째 과제의 연장선상에서 파란하늘공동육아사회적협동조합의 체계를 정비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 과제를 위해 실행한 것이 졸업조합원 옹달샘의 도움으로 시작하게 된 '마을공동체 지원사업'이었다. 이를 위해 다양한 부모 동아리 – 쿵푸스(인문학모임), 시엄니(시모임), 산책(영화모임), 둥구미(뜨개질모임), 블루스카이(사회인 야구단) - 를 지원하고, 최근의 이슈를 반영한 마을공동체교양강좌 – 방사능(김혜정), 미세먼지(강희영), 공동육아(황윤옥), 대안교육(엄기호) - 를 개설하며, 자발적 마을축제 - 송파 단오잔치, 성내천 벼룩시장 –에 참여하거나 직접 기획했다. 아빠 놀이 워크숍 ‘아빠 어디가’를 1박 2일로 개최하기도 했다. 


두 번째 과제인 사회적 참여는 이사회에서 기획하기보다는 조합원들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화답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당연하다. 사회적 참여를 강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3월에는 졸업조합원 멜빵바지와 교사조합원 삼동의 제안으로 추진하게 된 <나쁜 나라> 공동체 상영회 및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를 개최했다. 4월에는 아글이의 제안으로 거여동에서 세월호 2주기 릴레이 1인 시위를 진행했다. ‘최순실 국정농단’이 밝혀진 11월부터는 광화문과 송파에서 촛불을 들었다. 특히 거여동에 열린 송파 4차 촛불집회에서는 우리 조합이 촛불집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이러한 일련의 경험들은 나뿐만 아니라 조합원 모두에게 생소한 일이었다. 함께 하지 않았다면 결코 벌일 수 없는 일이었다.


세 번째 과제는 사회적협동조합으로의 완전한 전환을 위해 정관에 따른 세부운영규약을 만드는 것이었다. 과거에는 공동육아어린이집이 곧 협동조합이었으나 사회적협동조합으로의 전환 이후 새로운 청사진이 필요했다. 오랜 논의 끝에 공동육아사회적협동조합이 상위에 있고 그 하위에 조합의 사업 중 하나로 어린이집이 있는 구조로 방향을 정했다. 현재는 사업기관이 어린이집 밖에 없지만 앞으로 파란하늘 어린이도서관, 파란하늘 북 카페, 파란하늘 출판사 등을 꿈꾸기로 했다.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즐거운 작당을 새롭게 꾸며보려고 한다.



두 가지 심연


지난 2월 25일 어린이집 졸업 기념으로 광화문에 갔다. 달래, 두루미, 부시시, 아글이, 코코, 삼동, 아리, 탈출, 벚나무, 졸업조합원 색연필, 옹달샘, 나무꾼, 멜빵, 부엉이, 언덕 그리고 부모 손을 잡고 함께 나온 아이들까지 모두 서른 명 가까운 아마와 아이들이 함께 촛불을 들었다. 밤이 되면서 날씨가 쌀쌀해지자 딸내미가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이 먼저 자리를 떴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열일곱 번째 촛불집회였던 이날 새해 들어 가장 많은 인파가 몰렸다는 인터넷 뉴스를 접했다. 하지만 탄핵 반대를 외치는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의 소식을 들으면서 피로가 몰려왔다. 공공연히 내란을 부채질하고 테러 위협도 서슴지 않는 저들은 과연 누구인가? 저들과 우리 사이의 깊은 심연을 과연 메꿀 수는 있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광장이, 촛불이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을까?’라고 묻고 있다. 그런데 그전에 먼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 있다. ‘우리의 삶’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공적인 삶인가? 아니면 사적인 삶인가? 나는 그것이 ‘우리의(공적인) 삶의 변화가 나의(사적인) 삶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는가’를 묻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최순실 국정농단을 통해 공적인 삶이 사적인 삶에 통째로 잡아먹혀 형체도 없이 사라진 모습을 목격하고 있다. 그것은 3년 전 맹골수도에서 뒤집혀 버린 세월호의 밑바닥을 목격한 충격에 버금갔다. 저 깊은 심연 속으로 침몰했던 대한민국의 세월호 트라우마가 급격히 수면 밖으로 인양되었다. 공적인 삶의 후퇴가 세월호 참사의 직접적인 원인이었음이 명명백백해졌다. 다시 묻는다. 최순실을 구속하면, 박근혜를 탄핵하면 우리의 삶은 과연 나아질 수 있을까? 훼손된 민주주의는 다시 회복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민주주의가 과연 내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취업은 할 수 있을까? 정규직으로 전환은 될 수 있을까? 결혼은 할 수 있을까? 내 집 마련은 할 수 있을까? 아이를 가질 수는 있을까? (자녀가) 명문대를 나오지 않아도 먹고 살 수는 있을까? 노후 준비는 할 수 있을까? 이러한 구체적인 질문들에 대해 우리는 어떤 대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 이 질문에 대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이 오기는 하는 걸까?”



인터레그넘의 시대새로운 협약이 필요하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00일이 되던 날 영국 리즈에서 지그문트 바우만이 별세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향년 91세였다. 지난 2016년 쌍용차 해고 노동자 김정욱, 이창근을 위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던 노학자는 생전에 지금의 시대를 인터레그넘interregnum, 즉 궐위闕位의 시대로 규정했다. 그는 옛 방식이 매우 빨리 노화하고 더 이상 작동되지 않는데 새로운 활동은 그 방법조차 개발되지 않은 상태, 또는 우리는 무엇이 안 좋은지 알고 제거하고 싶은데 그에 대한 분명한 인식은 없는 상태를 말하기 위해 이 개념을 사용했다.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물론 이것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최순실 국정농단 앞에서 용기를 냈다. 그들은 최순실을 구속시켰고 박근혜를 탄핵 심판대 앞으로 불러내는 데 성공했다. 광장은 고장난 대의민주주의에 보내는 시민들의 경고이자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배움의 장이 되어주었다. 무엇보다 정치의 범위가 넓어져야 함을 인식하게 해주었다. 정당 정치와 생활 정치를 연결하는 플랫폼을 만들기 위한 노력들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먼저 사적인 영역을 공적인 영역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노력들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최순실의 언행을 어디서 본 적이 없는가? “우리 안의 최순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새끼 최순실들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제 다시 한 번 용기를 낼 순간이 되었다. 그러나 어떻게?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2항을 보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권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이다. 어떻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게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노동조합일 수도 있고 학교운영위원회일수도 있다. 사외이사제나 노동이사제가 대안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협동조합 방식이 가장 포괄적이고 실천 가능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3년 동안 공동육아사회적협동조합을 경험하면서 느낀 것은 그 자체가 민주주의의 작은 실천의 장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시간을 들이고 발품을 팔고 서로 접촉하는 만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교훈을 얻게 해준 곳도 바로 협동조합이었다. 


공간에 대한 인식의 전환도 필요하다. 공적 공간이 점점 축소되는 현실 속에서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 사이의 경계를 확장해야 한다. 다시 말해 지배적 공간을 전복하는 차이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물론 이런 것들을 의식적으로 계획해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단 저질러야 한다. 판을 벌여야 한다. 그러면 어느 순간 지배적 공간이 전복되는 모습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광화문 광장을 우리 곁으로 소환해야 한다. 


이 모두를 위해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기 위한 공동의 협약Modus Vivendi을 만들어야 한다. ‘공동육아사회적협동조합 운영규약’부터 ‘집회에서 지켜야 할 약속’에 이르기까지 협약의 범위와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중요한 것은 협약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다. 협약은 견해가 다를 때 필요한 것이다. 그것은 서로 입장은 다르지만 목표는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필요한 것이다. “나는 생각이 다르다”고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생각을 놓고 서로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을 때 공동체가 만들어진다. 따라서 공동의 협약을 위해서는 혐오와 배제의 논리를 극복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유동하는 삶에 대응하기 위해 리눅스Linux적인 방식의 협약이 필요하다. 궐위의 시간이 종료될 때까지 상황은 계속 바뀔 것이다. 이에 적절히 대처하기 위해서는 협약의 상시적 수정이 필요하다. ‘신자유주의’가 수명을 다한 듯한 모습을 보이자 자본은 ‘4차산업혁명’을 앞세워 이를 연장하려는 듯하다. 공동의 협약 역시 다시 쓰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협약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궐위의 시간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항상 그래왔듯 누군가 나서겠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모든 것이 깊은 심연 속으로 가라앉고 말 것이다.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지금 나서야 한다.




이 모두를 위해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기 위한 공동의 협약Modus Vivendi을 만들어야 한다. ‘공동육아사회적협동조합 운영규약’부터 ‘집회에서 지켜야 할 약속’에 이르기까지 협약의 범위와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중요한 것은 협약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다. 협약은 견해가 다를 때 필요한 것이다. 그것은 서로 입장은 다르지만 목표는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필요한 것이다. “나는 생각이 다르다”고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생각을 놓고 서로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을 때 공동체가 만들어진다. 따라서 공동의 협약을 위해서는 혐오와 배제의 논리를 극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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