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이라도 행복하기를 바랐는데

by ㄱㄷㅇ

온갖 것들을 베어버린 말이

나를 스쳐 지나갑니다.

하루 중에 가장 깊은 시간을 함께하던 슬픔은

어디에서 와 어디로 사라지는지

여전히 모르겠고요


물 위에 떠있는 배는

목적지를 모릅니다

누군가 이끄는 대로

그것이 물결이든 사람이든

빛이든, 지나쳐 갑니다.


배는 물아래로 잠기길 기도하고


그렇게 되면,

배가 물아래로 잠기게 된다면

슬픔은 다시 내게로 올 것입니다


비어있는 자리는

다른 것으로 채워질 테지요

물과 그 안에 사는 것,

온 바닷속은 울음으로,

사람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사람을 말할 테고요.


또다시

나를 베어버린 체

물아래로 잠기겠지요


바다를 넘어

또 다른 세계로 향하고자 하던 마음은

대해의 중심에서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대해란

하나의 미로

가로막는 벽 없이

마음을 잃게 하는 존재


언젠가 누군가

조금이라도 행복하기를 바랐는데. 하고

대해의 끝으로 사라져 가는 걸 보았을 때


배는 보이지 않는 벽을 바라보았습니다

그곳에 부딪힌다면

부서져버리고 말겠지. 하는 마음과

그렇다면 물아래로 잠길 수 있을 거야. 하는 마음.

그러나 끝내 부서지는 일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는구나, 하고

배는 오래

제자리에서 흔들렸습니다


밀려오는 것과 밀려나는 것 사이에서

가만히,

다만 가라앉는 상상만을 붙든 채로


오래도록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잠기고 싶다는 마음으로

끝내 잠기지 못한 채

검고 넓은 물 위를 떠갑니다


부서지지 못해 남은 마음들이

젖은 나무처럼 번져 있겠지요


지나온 곳들에는

이름 붙이지 못한 슬픔이 남아

또 하나의 바다가 될 것입니다


언젠가

보이지 않는 벽의 끝에 다다른다면

온갖 것들을 베어버린 말 대신

오래 붙들어주는 침묵이

파도처럼 천천히 다가오기를,


그래서 마침내

잠기지 않고도

슬픔을 내려놓을 수 있기를


배는 바랄 테지요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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