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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 Oct 20. 2024

욕망의 확장

5.1-5.3



5.1

“감정을 통제 함으로 인간은 위대한 발전을 이뤘습니다. 지금과 같이 이상적인 인구와 이상적인 생활환경을 만들고 유지할 수 있는 핵심 원동력이 감정 조절이었죠. 아시겠지만 1급 시민들은 감정이 반응하는 뇌의 편도 부분이 다른 급수의 시민들보다 작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더 이성적이고 감정 조절을 잘한다는 증거입니다.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갖기 바랍니다.” 김수미박사는 준호에게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 “저는 그걸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인류가 더 나은 이성을 갖기 위해서는 감정의 작용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겁니다. 감정이나 욕망이 통제되면서 생겨난 부작용도 많습니다. 새로운 도전도 발전도 없는 수동적이고 정체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 준호는 자기가 누워있는 침대 주변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주사장이나 제니스는 그의 주장에 별다른 생각이 없는 듯이 그저 서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바로 옆에 앉아있는 김수미 박사는 볼이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요즘은 모든 1급 시민들에게 의무적으로 감정체험을 주기적으로 하고 있으니 그런 부작용은 곧 해결될 겁니다.” “ 저는 방치된 제3계급 시민들을 좀 더 나은 유전자와 섞어서 진화시키려는 것뿐입니다.” 


“저 또한 남들보다 많은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서 이렇게 당신과 여기서 당신의 수술을 준비하고 있으니 돌연변이라고 할 수 있죠. 우리 같은 과잉 호기심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더 많아 질지는 모르지만 제발 세상이 평화롭기를 바라야겠지요. 당신이 만들려는 그 새로운 시민 계급은 감정과 함께 힘을 가진 사람들이니 어쩌면 평화롭지 않을 수가 있어서 걱정돼서 하는 말입니다. ” 김수미박사는 체념한 표정으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준호는 그녀의 표정을 보면서 웃음을 짓고 피곤한 듯이 눈을 감았다. “박사님들, 이제 그런 이야기는 그만하시죠. 수술을 먼저 하고 나서 유전자 프로젝트는 그다음에 토론해도 늦지 않아요.” 주사장이 병실의 입구에 있는 소파에 기대어 앉아 있다가 끼어들었다. “제 생각에는 수술을 빨리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수현경감이 자꾸 뭔가 알아내려고 하는 것도 마음에 걸리고 시간을 끌수록 병도 악화되는 것 아닌가요? 되도록이면 일정을 빨리 잡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주사장 옆에 앉아 있던 제니스가 비교적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언제 해도 괜찮습니다. 박사님께서 준비가 되면 알려주세요.” 준호는 덤덤하게 자신의 수술에 대해서 말했다. “저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수술팀을 꾸리는데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아요. 최고의 팀으로 이삼일 안에 꾸릴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팀이라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시다는 건가요?” 주사장이 다소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최소한 수술을 보조해 줄 의사가 한 명이상은 필요합니다.” “생각보다 일이 복잡하네요.” 주사장이 다소 퉁명스럽게 말했다. “지금 가장 최선의 방법은 김준호 박사가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서 뇌종양 제거 수술을 받는 것입니다.” “저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시겠지만 제1 구역에서는 수술 후에 제가 정상으로 회복되지 않으면 결국 안락사될 것입니다. 그 확률이 50프로라고 하면 지금 여기서 제가 할 일을 할 수 있는 데까지 하고 수술도 여기서 받는 게 나을 수도 있겠죠.”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가진 의사가 최고의 의료장비를 사용하여 수술을 한다고 해도 결국 수술 후에 저는 안락사될 겁니다. 1급 시민이 생명을 연장하는 수술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큰 핸디캡이죠. 우수한 유전자에서 왜 이런 변이가 생겼는지 연구대상이 될 겁니다. 제1 구역은 그런 시민이 오래 머물 수 있도록 해주는 곳이 아닙니다.” 준호의 목소리는 조금 떨리고 화가 난 듯 점점 커지고 있었다. 김수미박사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자코 앉아있었다. “그러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여기서 수술을 빨리 하는 쪽으로 알아보는 게 좋겠네요. 박사님께서 서둘러 주셨으면 합니다.” 제니스가 비교적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방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며 앉아있었다. “네, 그렇게 하죠.” 김수미박사는 조용히 혼자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준호는 피곤한 듯 눈을 감았다. 


5.2

유미는 해저도시의 설계도를 보면서 애초의 설계에는 두 개의 출입구가 존재했다는 것을 알았다. 현재의 출입구의 반대편 남동쪽에 다른 출입구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지금은 현재의 출입구만 사용하고 있었다. 만일 출입구 쪽이 문제가 생기면 도시는 위험에 빠질게 분명한데 왜 다른 출입구를 만들지 않았는지 유미는 내내 궁금했다. 그것은 유미뿐 아니라 해저도시를 좋게 생각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물론 다른 출입구를 만드는 것은 매년 해저도시의 계획에 있었지만 그것은 여러 가지 이유로 진행이 중단되곤 했다. “여기 뒤쪽의 또 다른 출입구는 왜 만들어지지 않았는지 알고 있나요?” 화상 통화를 하고 있는 승화에게 유미가 지도를 보면서 물었다. “저도 이 부분에 대해서 그때 건설에 참여했던 분에게 물어보았는데 만들다가 사고가 나서 중단되었다고 합니다. 아마 공사기간 지연 때문에 출입구 하나로 우선 해저도시를 시작했겠죠.” 유미는 승화가 생각보다 해저도시에 대해서 많은 조사를 하고 있는 점이 놀라웠다. “저는 출입구가 하나 더 있다면 공기정화 시스템의 부화가 지금보다는 훨씬 덜 할 거라는 생각이었거든요. 효율적으로 공기 순환 시스템을 돌리기 위해서라도 출입구는 여러 개 일수록 좋은데.” 유미는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공기정화 시스템 엔지니어의 입장으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시겠지만 새로운 공기 정화 시스템에 대한 설계 공모전이 있어요. 선배님과 함께 참가하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유미는 사실 공모전에 대해서 아무 생각이 없었다. “난 한 번도 참여해 본 적이 없는데요. 사실 내 관심사는 산소를 제공하는 음지 식물과 바다식물의 활용에 관한 것이라서요.” 유미의 대답에 승화는 잠시 생각을 하는 것 같이 조용히 있었다. “음, 선배님과 제가 파트너가 되면 꽤 괜찮은 공기정화 시스템을 디자인할 것 같은데요. 저는 공기 순환의 효과적인 구조적 디자인에 대해 관심이 있거든요. 신선한 공기를 만들어 내는 원천은 선배님이 구상하시는 식물들에서 얻는 것으로 하면 꽤 이상적인 공기정화 시스템이 나올 것 같은데요.” 승화의 말은 반쯤은 맞았다. 유미는 그의 말에 관심이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공모전에 참여하면 그만큼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하는 것이 걱정되었다. 그녀는 지금 제이와의 결혼 생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2세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시기였다. “이번 공모전이 해저도시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들에게는 모두 관심 가는 일이지요. 그러나 시간도 많이 뺏길 거예요. 저는 그래서 공모전을 지원해 볼 생각을 안 했었어요.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어요. 다른 파트너를 찾아보는 게 좋을 거예요.” “선배님은 최소한의 시간만 투자하시면 됩니다. 선배님은 1급 시민이시니 자료접근이 2급 시민인 저보다 유리합니다. 주로 자료조사를 해주시면 나머지는 제가 하겠습니다. 같이 하시다가 시간을 너무 많이 쏟는 것 같으시면 언제든지 그만두셔도 됩니다.” 


승화의 제안은 나쁘지 않았다. 유미는 손해 볼 것이 없는 제안이었다. “그렇게 저와 파트너가 돼서 공모전에 참여하려는 이유가 뭔가요? 남들보다 더 자료 접근이 쉬운 것 말고 별로 좋은 점이 없을 것 같은데요. ” “선배님은 식물에 대해서 잘 아시잖아요. 아마도 앞으로 해저도시는 공기정화 방식의 혁신이 없이는 팽창이 어려울 겁니다. 그 부분을 해결할 연구 대상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는 분이 선배님이 이잖아요.” 유미는 승화가 자신을 인정해 주는 것 같아서 조금은 기분이 좋았다. “그럼 새로운 공기 정화 시스템의 구조적인 다자인 요소는 어떤 식으로 풀어가려고 하나요? 특별히 생각해 둔 게 있나요?” “저는 양방향으로 순환되는 구조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한 방향으로 공기가 들어오고 나가기 때문에 비효율적인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양쪽에 공기의 출구와 입구가 각각 있다면 양쪽을 열고 막음으로 공기 출입을 용이하게 할 수 있죠.” “너무 뻔한 거 아닌가요? 대부분 양 방향 시스템은 다 생각 할거 같은데요. 애초 설계도 그랬던 것처럼.” “네. 맞습니다. 저는 이 공기의 흐름을 위한 제2 출입구를 제4 구역까지 이어지는 통로로도 사용되게 설계하려고요. 청정지역끼리 연결하면 정말 괜찮은 순환 시스템이 될지도 모르잖아요.” 가장 공기가 맑은 제4 구역과 해저도시는 공통점은 많았다. 자연 친화적인 방법으로 공기를 정화시키는 지구의 폐와 같은 역할을 하는 점이 그 두 구역의 가장 큰 공통점이었다. 


“제4 구역까지는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닌데 서로 연결하는 것이 경제성이 있을까요? 물론 이어진다면 해저도시를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유미는 승화의 이야기를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역시 제가 파트너를 선택한 판단이 틀리지 않았군요. 선배님 생각하신 대로 해저도시와 제4 구역이 연결되면 공기순환이 목적 말고도 비상구의 역할을 할 수도 있고 물류이동도 쉽게 할 수도 있고 그밖에 여러 가지 장점들이 있습니다.” “그런 확장성을 고려하면 제4 구역이야말로 해저도시를 제1 구역보다 낫게 만들 수 있는 요소일 수도 있겠죠. 만약의 경우에 비상 출구로 빠르게 제4 구역을 갈 수도 있다면 지금까지 해저도시의 가장 큰 약점이 제거되는 거잖아요.” “참 흥미로운 설계가 되겠군요. 우선 경제성에 대해서 많이 계산을 해봐야 할 거예요.” “저도 그 점에 대해서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해저도시가 애초의 예상보다 지금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점은 분명히 확장성과 안정성의 문제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제4 구역의 활용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선배님께서도 이 흥미로운 설계안에 같이 파트너로 참여해 주시는데 동의한 것으로 알겠습니다.” 승화는 평소보다 좀 더 에너지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유미는 그의 말을 듣고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5.3

“나는 이곳을 지배할 겁니다.” 준호가 긴 수술에서 깨어나서 처음 한 말이었다. 누구를 향해서 한말이 아니었다. 그가 의식을 찾자마자 크게 외친 말이었다. 마침 그때 그의 병상을 지키고 있던 사람은 윤이었다. “이제 정신이 드나요? 제가 보여요?” 윤이가 준호를 보고 묻자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모든 바이탈이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었고 의식도 돌아왔다. 수술을 마치고 나서 김수미박사는 수술이 성공적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했었다. 그녀의 자신감이 허세가 아니었다. 준호는 성공적으로 뇌에 있던 종양을 제거했고 인지능력의 활성화를 더욱 강화시켜 줄 컴퓨터 프로세서도 이식했다. 준호의 잘려나간 뇌의 일부분을 대신해서 칩이 역할을 대신해 줄 것이다. 준호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그 칩을 교육시키냐에 따라서 어쩌면 준호의 과거 뇌보다 더 똑똑한 뇌가 될 수도 있었다. “잠시 기다리세요. 박사님도 모니터링하고 계시니 곧 직접 확인하려 오실 겁니다.” 준호는 큰 수술을 받은 일이 없었던 사람처럼 혈색도 좋았고 눈이 반짝였다. “꿈을 꾼 것 같군요. 혹시 제가 지금 움직일 수 없나요?” 준호는 우선 온몸이 제대로 움직이는지 확인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근데 지금 아시다시피 여러 가지 장치들이 온몸에 연결되어 있어서 움직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박사님이 오시면 그때 움직여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3분 뒤에 박사님이 도착한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조금 기다리시면 됩니다.” 준호는 고개를 움직여서 자신의 몸을 쳐다보았다. 발도 움직여보고 손도 움직여봤다. 몸은 그런대로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아이들은 잘 자라고 있나요?” 준호가 윤이에게 잠시의 침묵을 깨고 생각난 듯이 물었다. “아무 이상이 없이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임신기간이 줄어든 침팬지들 모두 분만에 성공했고 2세들도 아무 문제 없이 건강합니다.” 윤이는 준호가 수술 전보다 뭔가 좀 더 밝아지고 자신감이 넘치는 것처럼 보였다. 의식을 잃고 있는 순간에도 어쩌면 준호는 자신이 이루고 싶은 꿈을 계속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 뇌는 전처럼 잘 돌아갈까요? 박사님이 왜 이렇게 안 오시죠?” 준호는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몹시 궁금해하면서 김수미 박사가 오기를 기다렸다. 누구나 자신의 뇌가 일부 제거되고 이전처럼 자신이 그대로인지 알 수 없다면 조급함이 생기기 마련일 것이다. 윤이는 준호가 한편으로는 조금 안쓰럽게 생각되기도 했다. 그의 과도한 자신감은 어쩌면 불안함을 감추기 위해 나오는 걸지도 몰랐다. 그때 병실의 문이 열리고 김수미 박사가 들어왔다. “어디 봅시다. 혹시 통증이 있는 곳은 없나요?” 김수미 박사는 무덤덤한 목소리로 준호에게 다가가 그를 보며 물었다. “별다른 통증은 없습니다. 제 몸을 좀 움직여 보고 싶은데. 지금 걸어 볼 수 있을까요?” “일어서 보세요.” 김수미 박사는 준호의 옆으로 가서 준호의 손을 잡았다. 준호는 그 손을 의지해서 몸을 일으켰다. 비록 일주일을 누워있었지만 준호는 몇 시간을 자고 일어난 사람처럼 쉽게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 다리를 침대 밑으로 뻗어 바닥을 딛고 일어섰다. 


준호는 혼자 일어서기 위해서 다리에 힘을 주었으나 다리가 살짝 떨리고 있었다. 준호는 곧 다시 침대에 털썩 앉았다. “너무 오랜만에 일어서니 내 다리가 아닌 것 같고 힘을 줄 수가 없네요.” 준호는 푸념처럼 말을 하면서 다시 일어서려고 다리에 힘을 주고 허리를 숙였다. 그의 두 번째 시도는 그래도 처음보다는 좀 더 긴 시간 서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한 발을 앞으로 내밀지 못하고 다시 앉았다. 준호의 이마에서 땀이 흐르고 있었다. 윤이와 김수미박사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것을 보고 있었다. 준호가 다시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섰다. 그리고 한발 움직여서 걷기 시작했다. 이제 그는 다리에 힘을 주고 균형을 잡으면서 침대에서 서너 발자국 걸어 나왔다. 윤이는 그가 걷는 앞에서 그가 혹시 넘어지면 잡으려고 보고 있었다. 준호는 곧 다시 몸을 돌려서 침대에 돌아가 앉았다. 겨우 몇 초간이었지만 긴 시간이 흐른 듯이 준호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있었다. “몸의 중심을 잡거나 일어서서 걷는 데는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매일 조금씩 연습하면 금방 정상으로 돌아올 겁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천천히 하세요.” 침대 반대편에서 준호를 지켜보던 김수미 박사가 조용히 말했다. 


“내일부터는 몸을 움직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조금씩 뇌를 훈련시키도록 하세요. 기억은 다 나시나요? 저나 윤이 씨를 알아보는 것을 보면 인지능력에 상실이 온 것은 아닌 것 같은데.” “특별히 기억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은 모른다고 봐야 할 것 같아요. 그러나 내가 했던 일이나 알던 사람들은 그리고 제 연구에 대한 계획도 다 기억나요.” “자꾸 기억이나 지식을 활성화시켜서 칩에 수술 전 기억이 다 들어있는지 확인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현재까지의 기술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칩 안에 박사님의 기억을 넣어드렸습니다. 그걸 계속 활성화시키고 사용하면서 진화시키는 건 이제 박사님의 몫입니다. 우리도 계속 모니터링하겠지만 본인의 노력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칩이 주변의 뇌와 융합해서 사람이 쓸 수 있는 최대한의 뇌를 활성화해서 쓰는 겁니다. 그럴 때 과연 얼마나 대단한 일이 일어날지 모두 기대하고 있습니다.” 김수미박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준호의 눈은 반짝이며 빛났다. 그가 바로 얼마 전까지 의식을 잃고 수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던 환자였던 것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활기차 보였다. “기분은 아주 좋아요. 뭔가 해방된 느낌이랄까? 그런데 제 종양은 완전히 제거된 건가요?” “3차원 영상으로 본 바로는 완전히 제거되었습니다. 물론 다시 재발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지금은 깨끗합니다. 당분간 여기서 지내시는 게 좋을 겁니다. 박사님의 몸이나 뇌의 모든 상태는 손끝에 임시 삽입된 칩을 통해 제가 어디서든 모니터링이 가능합니다. 아무도 없는 제4 구역의 박사님 연구실보다는 여기가 당분간 재활하는 데는 나을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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