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에 대한 두려움
어두움이 아직 조금 남아있는 새벽, 적막을 깨우는 요란한 경계경보에 놀라 선잠을 깼다. 뭔 일이 났구나.
“서울지역에 경계경보 발령.
국민들은 대피할 준비를 하시고, 어린이와 노약자가 우선 대피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모호하고 불명확한 메시지에 수만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막연하게 내재되어 있던 어둠 같은 두려움이, 시공간을 잠식하듯 찰나의 순간을 압도한다. 오발령 문자가 다시 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10분 남짓. 하지만 한번 퍼져나가기 시작한 불안의 공기는 마치 세상에 어둑시니가 깔린 것처럼 캄캄하기만 하다.
북한의 도발이 하루이틀이냐만은 오늘은 다르다. 아득히 눈앞이 어지러워지던 기억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소란한 세상 속 누구보다 고요함을 사랑하지만 그 공간에 빛이 사라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는 아직 빛이 없는 공간에선 홀로 잠들지 못한다. 완벽한 암전 후 흐릿하게 사물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 어느 때보다 정신이 맑아지는데 그때부터 수많은 생각들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뭐랄까... 불안정한 표면 위에 떠 있는 듯한 기분인데 결국 약한 간접등이라도 다시 켜야 안정감을 되찾는다.
찾아보니 어둠 공포증은 세계적으로 흔한(?) 공포증 중 하나였다. 어린이나 어른에게도 다양한 수준으로 나타나는데 영국 2,000명 성인 가운데 17%는 여전히 불을 끄고 자지 않고, 미국인의 11%도 어둠을 무서워한다는 통계도 있다. 과거엔 가장 많은 인지적 정보를 얻는 시각이 제한된 상태에서 무의식으로 들어갈 때 나타나는 자기 방어기제로 보았지만, 현대엔 개인적인 부정의 경험, 그중 외상과 관련이 깊다고 분석하고 있다.
(*출처: 리서치페이퍼 (http://www.research-paper.co.kr)
대처할 수 없는 환경에 대한 두려움은 꼭 어둠이 아니라도 존재하기에, 우선 개인적인 경험들을 고찰해 본다. 나에게도 트라우마는 있었다. 어둠에 대한 두려움이 처음 시작됐던 건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었다. 당시 살던 아파트엔 항상 곱게 한복을 입고 다니시던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면 키가 작아 까치발을 드는 날 위해 항상 먼저 버튼을 누르고 빙그레 웃어주셨었다. 학교에서 집에 돌아와 동생과 간식을 먹고 있던 어느 오후, 부엌 창문 밖으로 묵직하고 둔탁한 소리가 났다. 세상사에 호기심이 많았던 난 언제나처럼 무슨 일인가 싶어 서둘러 계단을 세 칸 네 칸 뛰어 내려갔다. 그리고 머릿속에 잊히지 않는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눈앞이 캄캄해지며 순식간 씌여지던 칠흑 같은 필터. 할머니와 갑작스럽게 사별을 하게 된 할아버지가 오랜 우울증 끝에 투신하셨다는 건 나중에야 어른들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그 이후 한참 동안 새벽에 소리를 지르며 자주 깼고 그럴 때마다 방에 환하게 불을 켜야만 다시 잠들 수 있었다. 모든 어둠을 싫어하게 된 것은 아니지만 그 이후 어둠이 유난히 짙게 드리우거나 핏빛 폭력이 가득한 영화, 책, 전시를 보면 눈을 질끈 감게 된다. (좋아하는 작가나 감독의 작품은 꼭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보는 편이다)
취향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어둠의 탈을 쓴 두려움은 나의 세계관에서 직시하기 힘든 본질을 마주할때 따라오는 일종의 저항이 아닐까 싶다.
수해년 전 친한 동료에게 선물 받은 책의 첫 장을 넘기는데 일 년이 넘게 걸렸던 적이 있었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모두에게 상처이지만 결코 외면할 수 없는, 피로 얼룩진 참혹사를 고통 속에서 단단하게 써내려간 작품이다. 파괴된 영혼들의 못다 한 말들 그리고 인간 존엄의 본질을 바로 보기 위해 적나라한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내기에... 읽는 내내 버거웠고 이를 힘들어하는 스스로가 불편했다. 만약 내면의 저항에 못 이겨 끝까지 읽지 못했다면 오늘도 어둠을 매개로 다가오는 두려움에 직면하기 보다 도피했을 것이다.
"시멘트 벽과 수납창구 앞 장의자가 만나는 구석 자리에서 배낭을 끌어안고 웅크려 앉아 당신은 깜빡 잠이 들었다. 흠칫 잠이 얇아질 때마다 윤의 메일에서 반복적인 단어들이 커서처럼 눈부시게 깜빡인다. 증언. 의미. 기억. 미래를 위해....... 썰물처럼 잠이 밀려나가며 고통의 윤곽이 뚜렷해지는 순간, 어떤 악몽보다도 차가운 순간이 다시 왔다. 당신이 겪은 모든 게 꿈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기억해 달라고 윤은 말했다. 직면하고 증언해 달라고 말했다."
-p.166 소년이 온다, 한강
어둠이 걷히고 두려움도 잦아들었다. 하지만 세상은 아직도 어지럽고 서로의 탓을 하기에 바쁘다. 인간이 저지른 역사는 또다시 되풀이되고 우리가 무관심한 사이 깜깜한 터널 속을 헤매는 사람들의 암흑은 짙어져만 간다. 잠시 잠깐 경계경보에 놀란 마음의 무게만큼 오늘도 매분 매초를 그 순간 속에 살아갈 사람들이 떠오른다. 아직 폐허가 된 건물잔해에 잠겨있는 튀르키에 그리고 반복되는 공습으로 생사의 경계선에 놓인 우크라이나 사람들. 비극의 참상은 오늘도 진행 중이고 오늘 어쩌면 그 순간이 우리의 미래가 될 수도 있음을 직시했다. 어둠에 매몰되기 보다 이젠 기억해야 겠다. 증언. 의미. 기억 그리고 미래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