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log Nov 11. 2024

가을, 맥문동, 대학로

그리고... 병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가을'이다.

하늘이 높고 푸르러 어디든 다니기 좋고, 서늘하게 불어오는 바람은 책 읽기 알맞은 날들을 선물한다. 오색찬란한 빛으로 산천은 물들고, 곡식과 과실을 수확하며 모든 것이 풍성한 가을. 가을이 주는 풍요로움에 말은 살찌고 나의 품도 넉넉해진다. 추석 덕분에 식구들이 모여 복닥복닥 정을 나누는 풍경도 가을이 주는 푸근한 느낌 중 하나다. 


두 번째로 좋아하는 계절은 '봄'.

3월에는 나의 생일이 있고, 새 학기를 맞는 설렘이 있고, 새해에 세운 계획들을 다시 한번 다짐하게 하는 '시작의 계절'이었다. 만물이 움트는 신비로운 시간이자 아름다운 봄꽃으로 눈부시게 화사한 계절. 


계절 중 두 가지를 택하는 일은 대단한 일이 아니지만, 가장 좋아하는 계절의 순서를 나열하는 것은 꽤 의미가 있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과 열매를 수확하는 가을을 좋아했기 때문에 나 역시도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결실을 맺고 싶었다.



  

봄과 가을을 애정하는 나의 마음과는 달리 현실은 요란했다.

통상적인 암 치료가 끝나면 6개월에 한 번씩 정기 검진을 하는데, 날짜를 잡고 보면 늘 3월과 9월이었다. 선생님의 학회 일정이나 나의 스케줄로 조금 미뤄져도 4월과 10월 혹은 5월과 11월에는 병원에 가야 했다. 애석하게도 가을의 나는 자주 슬펐다.

첫 재발을 겪었을 때도 단풍이 절정이었다. 회사 앞 벤치에 앉아 서럽게 울며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가을이 이렇게 예쁜데, 나만 혼자 슬픈 것 같아."

차라리 삭막한 빌딩 숲이었다면 조금 나았을까. 관악산 골짜기마다 가을은 불타오르고 있었다.


 

눈물의 벤치. 아름다운 교정.


다시 수술을 하게 되면서 수술 전 검사, 입원, 외래 진료 등으로 병원에 올 일이 더 많았다. 가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그 오랜 세월 대학로를 오가면서도 한 번도 마로니에 공원의 플라타너스 나무들에게 눈길을 주지 못했다. '대학로는 곧 병원'이라는 생각 때문에 치료가 끝나도 혜화역에서 약속을 하거나 데이트 장소로 정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마로니에 공원이 아름답고, 낙산의 야경이 아무리 유명해도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 아주 가끔 꼭 보고 싶은 연극 공연을 보기 위해서만 그곳을 찾곤 했다.

다른 일로 병원 앞을 지나쳐 갈 때도 그랬다. 검진일이 아직 한참 남아있어도 가슴속에 고슴도치 가시가 펼쳐지는 듯 날이 섰다. 머리로는

'그래도 나를 살게 해 준 곳인데. 무서워할 거 없지. 미리 걱정하지 말자.'

싶었지만 두렵고 어려웠다. 그리고 불편했다. 

 

비슷한 몇 번의 시간들이었다. 꽃과 단풍 둘 중 하나가 한창이었을 때 나는 아팠고, 다시 머리를 깎아야만 다.

가장 좋아하는 계절을, 울긋불긋 낙엽이 지고 모든 것이 풍성하다는 가을을 텅 빈 마음으로 맞았다.


어느 날 엄마가 그랬다.

"나는 맥문동이 싫어. 그때 너 가을에 병원에 입원했을 때. 서울대 올라가는 길에 맥문동 꽃이 보라색으로 엄청 많이 피어있었는데, 마음이 너무 슬프니까 꽃을 보면서도 막 슬픈 거야. 그래서 나는 요새도 맥문동 꽃만 보면... 그때가 생각나서 마음이 아파."


병원 본관을 올라가는 길에 맥문동이 있었던가. 언뜻 보라색 무언가를 본 것 같기도 하고. 제정신으로 병원을 오가던 내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 자리가 꽃밭이었는지, 건물이 있었는지 알리가 없었다. (지금 그 자리는 다른 건물을 짓고 중이다.)

나는 가을이라서 슬펐는데, 꽃을 좋아하는 엄마는 맥문동을 보면서도 속상했다고 한다.

왜 우리의 가을은 온전히 평온할 수 없었던 걸까.


힘든 검사와 결과를 받아 들고 좌절하고, 입원과 수술이 끝나면 조직 검사를 결과를 들으며 무너졌다. 그러다 보면 가을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운동복을 문신처럼 새기고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나는 타조 같이 짧아진 머리로 '언제쯤 가발을 쓰지 않고 집 밖을 나갈 수 있는지' 그것만 손꼽으며 기다렸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나는 정기검진 일정을 1월과 7월로 변경했다. 혹한(酷寒)에 혹서(酷暑)라면 딱히 아쉬울 것 없지 싶었다. 무엇보다 나의 봄과 가을을 사수하고 싶었다. 명색이 놀러 가기 가장 좋은 때인데,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계절을 고스란히 암에게 헌납하고 싶지 않았다.

가끔 드는 생각이지만 아무 일도 없던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샹젤리제 아름다운 가로수길 못지않은 대학로의 그 거리에서 나는 자주 웃고 충분히 행복했을까...


나는 대학로가 싫고 엄마는 맥문동이 싫었다. 시간이 지나 우리가 그것들을 사랑할 수 있는 날이 오기.


이전 01화 레몬인 줄 알았는데 두리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