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대마도로 향하는 날
왜 대마도였는가? 이번 여행은 정말 순간적으로 정해진 것이다. 커피숍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들 끝에 "우리 여행 가자!" 누군가 이렇게 외쳤고 또 세 명이 함께 의기투합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단, 가까워야 한다. 비용이 적어야 한다. 그리고 외국이어야 한다. 대마도는 그런 점에서 딱 맞아떨어졌다.
나는 부산 영도에 오래 살았기에 태종대 끝, 망망대해를 바라보면 제주도는 보이지 않았어도 대마도는 그 흐릿한 윤곽선을 자주 내보이곤 했다. 그때 안개 같은 실루엣의 대마도는 배만 타면 곧장 닿을 듯 가깝게 느껴졌다.
한편 저렇게 가까운데 우리나라와는 달리 일본색을 띠고 있기는 할까 하는 의문도 가졌었다.
암튼 50대의 갱년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네 명의 언니들은 1박 2일의 대마도 패키지를 단숨에 예약했던 것이다. 고고 밀어붙이는 거야. 남편걱정. 아이들 걱정은 잠시 접어두자고.
10월 17일. 여행 첫날. 날은 흐렸다.
정은의 차를 타고 부산항으로 출발~. 밖은 아직도 어두운 미명이다. 가을의 으스스함이 느껴지는 새벽길을 달려 어느덧 저 멀리 부산항이 보이기 시작할 무렵 동쪽 하늘이 붉게 타오른다. 비가 올 것이라는 기상예보와는 달리 화창한 날씨이길.
해 뜨는 광경은 늘 새롭고 환해서 움츠러들었던 기분을 날려버린다.
대마도가 사랑받는 관광지는 아닐지라도, 잠시 일상을 떠나는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이 우리를 달라지게 하기를. 뾰족뾰족했던 마음들이 있었다면 다 풀어지기를.
그리고 가장 사소한 일상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를.
부산역 부근은 실로 오랜만이다. 예전에 없던 높은 빌딩들이 눈을 압도한다. 부산항 터미널에 도착했다.
지하에 차를 대고 3층에 올라가니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바글바글 하다. 모두 대마도로 떠나는 사람들인가? 우린 미리 연락받은 가이드 앞에 가서 여권을 주고 출발을 기다렸다.
가이드는
" 배를 타기 30분 전에는 멀미약을 반드시 드셔야 됩니다"
라고 주의를 준다. 파도가 예상된단다.
워낙 멀미를 잘하는 나는 아침에 이른 밥을 조금 먹고 약을 한 알 먹었지만 한알을 더 삼켰다.
"난 멀미를 너무 잘해서 걱정이야"
옆에 앉아 있던 수진이 말했다. 그녀는 버스만 타도 멀미를 한단다.
우린 입국절차를 마치고 배들이 정박된 항구로 나섰다. 날은 이미 훤히 밝았고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았지만 햇살이 구름에 가려져 있다.
대마도행 배편을 이용하는 다른 관광객들을 따라 줄을 지어 가다가 아주 큰 배를 마주했다.
나와 은옥은
"배가 크네~~ 멀미 안 하겠네" 서로 마주 보며 단번에 밝아지는 얼굴.
"그러게 멀미는 무슨~" 기분이 확 살아난다.
그런데 우리를 인도한 곳은 그 배가 아닌 그 옆의 턱없이 작은 배였다. 아! 우리가 봤던 배는 대형 크루즈였던 것이다. "하하하" "크크크" 우리는 멋쩍어서 소리 내 웃었다.
그래도 대형크루즈 옆에 정박해서 작아 보일 뿐. 우리가 탈 배는 2층의 제법 큰 배다. 대마도 왕복선으로는 가장 좋다고 한다. 쓰시마 링크선.
승선을 마친 후 창밖을 보니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차례대로 승선 중이다. 어린아이도 보이고 나이 드신 분들도 있다. 가족단위 여행객인듯. 드디어 승선을 마치고 직원들이 일렬로 서서 떠나는 우리 배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내 옆에 앉은 수진도 손을 신나게 흔들어 준다. 나도 덩달아 손을 흔든다. 떠나는 배에 손을 흔들며 배웅하는 이 광경은 누가 만들었는지. 가슴이 웅장해진다.
이제 배는 서서히 바닷물을 가르며 부산항에서 멀어진다. 항구를 벗어난 배는 영도섬을 지나쳐 간다.
빽빽이 들어찬 육지의 건물들이 시야를 벗어나자 배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제 눈에 들어오는 건 바닷물뿐. 한 십여분을 달렸을까? 바닷물이 점점 거칠게 일어나는가 싶더니 배가 아래로 갑자기 쑤욱~내려간다. 내 심장도 같이 쑤욱~ 내려가는가 싶더니 심장이 실에 매달려 달랑대는 느낌이다.
아아~난 배를 탈 때 이런 느낌 너무 싫어하는데... 배를 탔던 옛 기억들이 소환된다. 그래 이 느낌이야. 이제껏 잊고 있었던 기억. 창밖에 넘실대던 파도는 바로 눈앞으로 가까워졌다. 선체가 물속으로 좀 가라앉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참을만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것은 착각. 파도는 갈수록 더 심해지고 배는 속력을 더 낸다. 바닷물이 선창에 쉴 새 없이 부서져서 빗물처럼 흐른다. 순간 파도의 색은 시커먼 빛을 띤 공포의 바다로 돌변했다. 배가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창밖을 보지 마세요"
옆에 앉은 수진이 말한다.
이젠 배의 엔진소리만 실내에 가득해졌다. 시끄럽게 잡담을 나누던 사람들이 입을 다물어 버렸던 것이다. 위아래로 널뛰기를 하던 배가 어느 순간 갑자기 "탕~!"하는 소리와 함께 선체가 뭔가에 부딪힌 듯 좌우로 크게 흔들렸다.
겁에 질린 사람들이 동시에 "우~" "아~" "악" 하는 탄식을 쏟아냈다.
급히 방송이 흘러나온다.
"지금 파도로 인해 선체가 흔들리오니 움직이지 마시고 아이들과 노인들을 보호해 주십시오"
직원들이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며 승객들에게 나눠준다.
옆에 앉은 수진은 눈을 이미 꼭 감고 있고 나도 창밖에서 눈을 뗐다. 무섭다. 속도 울렁울렁거리는 데다 머리가 아파왔다. 우리 뒷좌석에 앉은 정은과 은옥의 상태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 조용한 것을 보니 다행히 그들도 멀미는 안 하는 것 같다.
옛날 통신사들이 일본으로 갈 때 이 바다에서 폭풍우를 만나 똥물까지 다 토하고 끙끙 앓았다더니 정녕 그러하다. 지금은 폭풍우도 아닌데 이 정도라니.. 참을 수 없는 것은 뱃속 내장들이 배의 움직임 따라 꿀렁대는 그 느낌이다. 억지로 눈을 감은체 잠을 청하려 했지만 머릿속은 오히려 더 맑아졌다.
바닷물은 거대한 물갈퀴가 되어 뱃전을 끊임없이 때리고 부서지고 배는 청룡열차처럼 위로 솟구쳤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는 데 정말 죽을 맛이다.
멀미약을 먹길 잘했다. 안 그랬다면 십중팔구 속에 것을 다 게워냈을 것이었다.
여기저기서 "우엑우엑~~! " "케엑 켁~!" 하는 소리가 계속 들려오고 비닐봉지를 든 직원들이 바삐 오갔다.
"으으으" "아이고"고통의 신음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시계를 보니 40분이 지났다. 시간아 빨리 가라.
그렇게 험한 파도의 길을 얼마나 달렸을까.
어느 순간. 갑자기. 흔들리던 배가. 조용히. 똑바로. 섰다.
눈을 떠보니 육지가 보인다. 안내 방송이 나왔다. 도착했다고.
히타카츠항이다. 배는 언제 흔들리기나 했어? 하는 듯이 미끄러지듯이 항구 안으로 나아간다.
이렇게 편안한 것을... 날씨만 좋았다면 괜찮았을 배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이 온몸으로 밀려들었다. 일본식 집들이 타원형으로 아기자기하게 붙은 항구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낯선 이국의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