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30년간 지속된 오래된 악연
파이널 테이블에 진출한 선수들답게 누구 하나 호락호락한 사람이 없었다. 자신의 핸드가 아무리 강해도 자신의 포지션과 상대방의 베팅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이 세계 최정상급 선수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초반이기는 하나 9명의 선수 모두 크게 앞서거나 뒤지는 선수 없이 대체적으로 비슷한 규모의 칩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보던 관객들은 선수들의 플레이 하나하나에 많은 호응과 응원을 보내주며 경기장의 열기는 점점 뜨거워져 가고 있었다.
"올인"
민섭은 자신의 핸드를 확인하고 바로 자신 있게 외쳤고, 장내는 갑자기 조용해졌다. 베팅하기 가장 불리한 위치인 언더더건(UTG) 포지션이었지만 A♠︎K♥︎라는 훌륭한 패를 들고 초반 기선 제압을 하기 위해 민섭은 무리하다 싶은 베팅을 시도한 것이다. 많은 선수들이 참여해 이기면 좋고, 우수수 폴드를 한다 해도 블라인드를 먹으면서 분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민섭의 예상대로 초반부터 무리를 하지 않으려는 선수들이 고개를 저으며 대거 폴드를 했고, 공교롭게도 버튼 포지션의 진혁만이 담담하게 콜을 했다.
민섭은 초반 분위기 탐색을 위해 계속 소극적인 플레이를 했기 때문에 칩의 금액이 많지 않아, 칩리더인 진혁이 민섭의 칩을 커버하고도 남았다. 서로 올인을 한 상황이었기에 패를 오픈할 상황이 되었고, 민섭은 진혁의 핸드가 뭔지 너무 궁금했다.
"Show down"
딜러의 주문에 올인을 외쳤던 민섭이 먼저 핸드를 오픈했고, A♠︎K♥︎를 본 관객들은 탄성을 질렀다. 프리플랍에서 AK이면 거의 무적에 가까운 핸드였기 때문이다. 승리 확률 높은 순위 탑 4~5위 정도로 강력한 핸드였기에 진혁의 핸드가 무엇일지 모두의 관심이 쏠렸다.
예상치 못한 2 파켓의 등장에 경기장은 또다시 술렁이기 시작했다. 엄밀히 따지면 AK와 2 파켓은 50대 50이라고 보는 편이다. 그래도 초반 상대의 올인에 2 파켓으로 콜을 받는다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긴 하다. 이 승부의 결과에 따라 민섭이 초반 탈락을 할 수도, 진혁이 숏스탯으로 주저앉을 수도 있었기에 한국 관객들로서는 누가 이겨도 기분이 좋겠지만 한편으로는 한국 선수 한 명이 몰락하는 것이기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민섭은 거의 50:50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불안감이 온몸을 뒤덮고 있었다. 코흘리개 시절 진혁과의 게임에서 번번이 패배를 했던 경험들이 몸속에 아직도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도리짓고 땡'을 하던 중 진혁의 농간으로 자신이 이기는 승부가 완전 뒤집혀 올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영훈에게 듣게 되었다. 영훈의 말에 의하면 진혁은 분명 실수였다고 했으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진혁이 그런 사소한 실수를 할 사람이 아니란 건 누구나 다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민섭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진혁에게 많은 앙금이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플랍에서는 10♥︎3♥︎Q♣︎가 나오면서 민섭은 현재까지는 분명 지고 있는 게 맞지만, A와 K라는 2개의 오버 카드와 스트레이트 것샷, 그리고 ♥︎ 세장이라는 가능성 높은 Outs를 가지고 있었기에 기대감을 높였다. 그렇게 기대에 찬 상기된 얼굴을 한 민섭과는 달리 진혁의 표정은 내내 평온해 보였다.
모두의 관심이 테이블로 쏠리는 가운데 턴에서 2♥︎가 떨어지면서 상황은 급변하게 되었다. 진혁은 2 셋을 맞추게 되었고, 민섭은 여전히 스트레이트 것샷에 플러쉬 드로우까지 가능성이 추가되었다. 그야말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 민섭의 얼굴은 전보다 더 상기되었고, 진혁은 좀 전보다 오히려 더 창백해진 것처럼 보였다.
* 스트레이트 : J♥︎, J♦︎, J♣︎, J♠︎ (4장)
* 플러쉬 : 4♥︎, 5♥︎, 6♥︎, 7♥︎, 8♥︎, 9♥︎ (6장)
- 하트 중 Q♥︎, A♥︎가 나오면 진혁이 풀하우스가 되므로 Outs에서 제외
민섭이 진혁의 카드를 역전하기 위해서는 오직 10장의 카드가 남아있었다. 10/44로 약 22%의 확률이었다. 이것을 다시 말하면 진혁의 승리 확률이 78%라는 것을 의미한다.
'제발.. 제발.. J 아니면 하트..'
민섭은 그 어느 때보다 간절했다. 어린 시절 진혁에게 당했던 그 '도리짓고 땡'의 기억 때문만은 아니었다. '삥바리'부터 시작해서 청년이 되어서까지 진혁의 재능이 부러웠다. 영훈은 언제나 판을 쥐락펴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이기는 날보다 지는 날이 많았다. 반면 자신은 항상 돈이 부족하고,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는 편이 아니었기에 늘 소심하고 안전한 플레이를 위주로 해서 큰 재미를 보지는 못했다. 그런 민섭이 진혁을 볼 때면 빠른 두뇌 회전과 판단력으로 항상 전체 판을 지배하는 그 재능이 부러웠다. 돈을 많이 따는 것도 아니지만 항상 경기가 끝나고 보면 마치 진혁에게 조종을 당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오늘 같은 큰 경기에서 단 한번 만이라도 진혁을 이겨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민섭이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 단 22.2%
'오! 하트♥︎ 앗...!'
민섭은 순간적으로 하트를 보며 눈이 번쩍 뜨였으나 이내 진혁의 카드가 풀하우스가 된 것을 바라보고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운명은 마지막까지 민섭을 잔인하게 난도질했다. 이렇게 큰 결승 무대에서 단 한 번의 승부로 그것도 하필 자신의 벽 같은 존재인 진혁에게 한 끗 차이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너무 괴로웠다.
관객들은 리버 카드가 바닥에 깔리자 1~2초 동안 조용하다가 이내 정신을 차린 듯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보내 주었다. 그것은 승리를 한 진혁에게 쏟아진 박수이면서도 멋진 승부로 패배를 한 민섭에게 향하는 것이기도 했다.
"민섭아, 미안해. 나도 너무 긴장됐어."
"미안하긴. 너의 승부 기질은 진짜 내가 못 당하겠다."
"그래, 오늘 끝나고 소주나 한 잔 하자. 고생했어!"
그렇게 민섭은 진혁과 악수를 나누고 뜨거운 관객들의 박수를 받으며 씁쓸하게 퇴장을 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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