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의 효과
돌이켜보면 내가 운동을 시작한 건 몸에 대한 자괴감 때문이었다. 솔직히 그랬다.
뚱뚱함에 편견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가 뚱뚱해서 입고 싶은 옷도 못 입고, 입은 옷도 태가 안나는 게 싫었다. 그렇게 불현듯 운동복을 챙겨 입고 헬스장에 내려가 지겹게 걷고 또 걷고... 그러다 조금씩 뛰기
시작하고, 많이 뛰는 날도 가끔 생겨났다. 체중은 아주 조금씩, 전혀 줄어들 거 같지 않은 느낌으로 줄어들었는데, 드디어 요즘 날 보고 살 빠졌죠? 묻는 분들이 생겨나고 있다.
나이가 쉰이 넘어 예쁘게 옷을 입고 싶어 운동을 시작했다면, 좀 웃긴데, 어쨌든 시작은 미약했지만,
요즘 내가 느끼는 건 성취, 그 이상의 행복감이다.
지난 주말, 섬기는 교회 주일학교에 여름성경학교가 열렸다. 어린이와 청년, 교사들까지 약 40명의 인원을 위한 1박 2일 총 네 끼의 식사를 준비하는 무거운 책임이 어쩌다 나에게 주어졌다. 그 바람에 정말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한 주였다. 지난겨울 30명 정도를 위한 저녁 한 끼를 준비해 본 것이 내 경험의 전부인데,
무려 네 끼를 책임져야 하니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장을 몇 번을 봤는지 모르겠다. 동네 마트도 여러 번, 생각나는 데로, 보이는 데로 사서 모으고, 최종적으로 코스트코에서 삼겹살과 각종 음식재료를 구매했다.
드디어 금요일 저녁부터 다음 날 아침, 점심, 저녁 바비큐까지!
토요일 아침에 제공된 바나나 우유와 점심에 김치볶음밥과 함께 낸 칼집을 넣어 데친 소시지가 모자라
잠시 위기를 맞은 거 말곤, 다른 큰 문제없이 모든 끼니가 잘 마무리 됐다. 칭찬과 격려도 많이 들었다.
내 아이, 그리고 손주를 위해 모인 우리들은 오랜 친구도, 늘 함께 일하는 동료도 아니었지만,
손 발과 생각, 마음까지 딱 맞아떨어졌다. 매 순간 서로를 지지했다. 자주 웃으며 즐거웠다.
아이를 키우는 이야기, 시댁 이야기, 각자의 관심사, 그리고 직업에 대한 것까지 1박 2일 동안 수다파티는
끝없이 이어졌다. 정말 꿈같은 1박 2일이었다. 뜻이 맞는다는 게 무엇인지 알 거 같았다.
그런데, 난 그렇게 즐거운데도 간간히 두려웠다. 너무 힘들면 안 되는데,
이렇게 말을 많이 하면 내일 아침 목이 부울텐데, 다 끝난 후 아프면 어쩌지? 오래 아프면 안 될 텐데...
몇 주간 이어진 고민과 준비과정의 강행군은 내가 감당하기에 솔직히 벅찼다. 러닝을 하기 전 내 체력이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 분명했다. 많이 움직인 탓에 잠들기 전 허벅지 근육이
뻐근하긴 했지만, 아침이 되면 괜찮았다. 놀랍게도 결과적으로 모든 게 잘 마무리됐다.
체력이 있어야 밥도 즐겁게 짓고, 수다도 오래오래 떨 수 있다. 인생이 즐거우려면 체력이 필수였다!
예쁜 옷을 입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즐겁게 살 수 있는 힘. 러닝은 나에게 그걸 준 것이다.
파티는 끝났고, 나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결과적으로 아프지 않았다 해도 무리를 한 건 분명한데, 다시 예전만큼 뛸 수 있을지 궁금하고, 걱정이 됐다.
마지막으로 뛴 게 그러니까... 막내 방학식날 육아동지와 차 한잔 약속에 나가기 전 뛴 4km,
그게 지난주 화요일이니 무려 8일 만에 러닝 머신 위에 올라선 것이다.
물론 바쁜 와중에 집에 있는 실내자전거를 돌리기도 했고, 요가 강습도 빠지지 않았으니
운동 자체를 아예 놓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러닝은 더 특별하다.
몸과 땅만 있으면 가능한 운동이라는 거, 그 원시적인 느낌이 주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
(운동일지를 계속 쓰다 보면 좀 더 구체화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발목을 충분히 돌리고, 무릎도 돌리고, 호흡에 집중하며 러닝머신 위에 서니 마음이 설렌다.
왠지 나만을 위한 무대에 오른 거 같은 기분도 든다. 내 러닝 기량이 어느 정도 남아 있는지 궁금해 미치겠다.
그 기량을 맘껏 뽐내고 싶다. 달리고, 체력을 만들고, 무엇보다 왠지 모르게 불편하고 불안한 마음이 한순간에 확실해지는 그 느낌이 너무 그리웠다. 깊게 호흡했다. 호흡하는 날 느끼며 또 호흡했다.
처음 500m는 빠르게 걸었다. 그러다가 우리 두 딸이 즐겨본 어드벤처타임 속에 나오는
'Woke Up'이라는 노래가 시작되자 왠지 용기가 생겨 속도를 높였다. 이제 러닝 시작!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최대한 가볍게 달린다. 발바닥 전체가 충분히 바닥에 닿는다고 생각하며 달린다.
점점 땀이 나면서 몸이 가벼워지고, 조금 힘들다고 느꼈지만, 멈추지 않고 달리니
호흡이 안정이 되는 게 느껴졌다.
"와! 나 예전처럼 달릴 수 있다!"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눈가에 흐르는 땀을 수건으로 닦으며 계속 달렸다.
잠시 후, 어떤 분이 내 옆 러닝머신에 올라와 자리를 잡았는데, 이 분은 무려 '책'을 읽으며 실내자전거를
돌리는 우리 헬스장의 고수다. 사실 난 달리면서 그분을 자주 훔쳐봤다. 러닝머신 옆에 바로 실내 자전거가
있기 때문이다. 과연 어떤 책을 읽는 걸까? 어떻게 헬스장에서 책을 읽으며 자전거를 돌릴 수 있나?
나이는 어느 정도일까? 전혀 가늠이 안 된다. 이것도 직업병인지 나, 인터뷰에 대한 욕망이 있다.
(소록도의 한센병 환우분도 인터뷰해 봤고, 성공한 회장님도 여러분 인터뷰해 봤어요!)
하지만 이제 난 그냥 동네 아줌마다. 갑자기 그런 걸 질문하면 " 저한테 왜 그러세요?" 할지 모른다!
참아야지... 꾹. 어쨌든 내 호기심을 자극한 헬스장의 고수와 함께 한참을 달렸다. 뛰다 보니 속도도 비슷해져
왠지 같은 팀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이제 누가 더 오래 뛸 것인가? 그런 경쟁심은 생기지 않는다.
나의 달리기는 오롯이 나만의 기쁨이니까.
이 소중한 걸 알기까지 나에겐 1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1년을 투자한 것이 조금도 아깝지 않다.
오히려 좀 더 일찍 시작했다면 어땠을까? 아쉬운 마음도 든다. 부질없는 글을 많이 쓰면서 오랜 시간 앉아 있었다. 차라리 뛸걸! 어쨌든 과거보다는 지금, 그리고 앞으로의 내가 더 중요하다. 오늘도 나는 달린다. 달릴 수 있다. 러닝을 하며 여러모로 인생이 즐거워졌다.
더 즐거운 내일도 어쩌면 가능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