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걱정에 잠 못드는 당신을 위해!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아침 침대에서 눈을 뜨니 내 몸이 마른나무토막처럼 뻣뻣하다.
알람 소리에 먼저 몸을 일으킨 남편이 아침 인사를 건넨다.
"잘 잤어?"
열대야 때문인지 노화 때문인지, 잘 자는 게 어렵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워낙 기름칠 같은 말은 못 하는 성향의 남자라 가끔 나 혼자 섭섭해지는 순간이 있어
아침엔 꼭 잘 잤냐는 말을 해달라고 오래전 부탁을 했었는데,
아직까지 잘 실천하고 있는 남편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응. 잘 잤어!"
남편이 신문을 가지러 간 사이, 난 천정을 보며 누웠는데, 갑자기 후... 짧은 한숨이 튀어나왔다.
머릿속에 복잡한 생각들이 숙제처럼 쌓여 있다. 토요일에 큰 애와 긴 통화를 하면서
엄마라는 입장에서 그냥 공감만 해주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했고,
일요일 오후에 만나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면서도 이미 성인이 된 아이를 바라보는 내 눈에
걱정과 불안이 지나치게 많다는 게 너무 싫었다.
큰 애는 읽고 쓰는 일에 능숙한 아이였고, 인문계열로 입학을 하고, 이후 전공으로 국어국문과를 선택할 때도
난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어떤 직업을 선택해, 어느 정도의 연봉을 받고... 그런 건 솔직히 많이 생각 안 했다. 잘하고 좋아하는 걸 공부하며 거기 사람들과 교류하다 보면, 내가 모르는 어떤 직업도 찾아낼 거라
믿었다. 그러다가 휴학을 하고 고민에 빠진 아이를 보면서 그 또한 젊은 날의 방황 정도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돌고 돌아... 외무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대학 내에서 외무고시를 준비하는 곳에 들어가기 위해
스페인어 점수를 준비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대학 기숙사에서 지내며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관련 수업을 듣는 강행군을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경제학 관련 공부가 부족해 아이는 속이 타는 모양이다.
우리 집은 대대로 외교관을 배출한 명문가(?)도 아니고, 나는 단 한 번도 외교관을 해봐라 권유한 적도 없으며,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전혀 모른다. 그냥 스페인어 점수를 따고 싶다는 아이를 바라보며
응원하고, 외무고시 준비반에 들어간 걸 기뻐하기만 했는데, 몇 주 맑음이다가도 또 며칠 흐림이 찾아오면
난 또 마음이 조급해지며 괜히 이 어려운 걸 시작하게 놔뒀나? 그런 생각이 슬그머니 찾아온다.
난 대학교 3학년 때 방송국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솔직히 학교보다 방송국이 훨씬 재밌다고 느꼈다.
치열한 것도 마음에 들고,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새로운 걸 경험하며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데, 돈까지 준다! 힘든 순간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좋은 기억이 더 많이 남아 아쉬움이 더 크다. 하지만 결혼 이후 출산과
육아로 점점 고립되며 여성이 직장에서 일할 수 있는 시간에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딸에게도 나 같은 고민의 시간이 분명 찾아올 텐데... 일 할 수 있는 시간, 아니 꿈을 펼칠 수 있는 시간이 짧아지면 어떡하지?
육아 전문가는 성인이 된 딸의 인생을 걱정하는 중년의 엄마에게 좋은 말을 해줄 리 없다.
나도 안다! 내가 이런 걱정을 하는 게 그렇게 멋져 보이지 않는다는 걸.
가장 이상적인 그림은 몇 년 후 외교관이 된 딸이 어떤 사연으로 유퀴즈에 출연해 이런 멘트를 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항상 제 꿈을 지지해 주시고, 조용히 응원하시며, 기도해 주셨어요.
한 번도 절 의심하지 않으셨어요!"
뭘 이룬 사람들이 TV에 나와 이런 말하는 걸 몇 번은 본 거 같다. 그땐 그런 가보다 했는데,
이제 생각하니 정말 대단한 분들이다.
한숨이 또 나온다.
이번엔 막내 걱정이다. 곧 중학생이 된다. 짧은 여름방학 동안 1학기 수학 문제집을
완료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이제 겨우 2학기 문제집 맛봤는데, 곧 개학이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가 막내 육아의 슬로건이었다. 슬로건이다! 가 아니라 슬로건이었다?!
지난번 소아신장 관련 진료를 받던 중, 새로운 주치의를 만난 자리라 아이가 천 그램을 겨우 넘긴 미숙아였음을 밝혔다. 난 아이 신장에 문제가 있는 것도 미숙아로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의사는 쓰윽 아이를 한번 쳐다보더니,
"그거 뭐... 이제 다 컸는데요. 상관없어요."
다 크고 나면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닌 건가? 신장 관련 문제도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는 아니라고 했다.
그동안 미숙아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자유와 행복을 지나치게 많이 제공했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어도 다 참은 건 아니지만 꽤 많이 참아줬다. 행복하게 그림 그리고, 놀고, 책 읽고 하다가도 수학문제집 앞에만 앉으면 책상에 코를 박고 풀기 싫어 죽겠다고 시위를 하니, 어떡해! 아직 초등학생이니까 시간도 있고, 폐기능도 아직 정상은 아니니 더 욕심내지 말자, 다짐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또 못 참으면 꽥! 소리도 몇 번은 질렀다. 그렇게 눈가가 촉촉해 잠든 아이를 보면,
야! 임지원, 너 얘 처음 만난 순간 잊은 거야? 이렇게 살아서 내 곁에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한데, 공부까지 잘하길 바라니! 하지만, 며칠 전 아직도 풀게 남은 1학기 수학문제집 때문에 아이를 좀 혼냈는데, 아이가 눈물을 흘리며 이런 고백을 하는 것이다.
"나도 잘하고 싶어. 학교에 이런 문제집을 가져가면 친구들이 아직도 초등 문제집 푸냐고 뭐라 해.
애들은 중등, 고등문제집 풀어. 엄청 자랑한다고"
그날 이후, 아이는 풀고, 난 옆에서 답을 맞히며, 며칠 만에 1학기 문제집을 다 끝내버렸다.
이렇게 하지 않으려고 그렇게 노력을 했는데, 결국 이 길 밖에 없는 것인가?
아침 식탁을 치우고, 엉망이 된 집안을 정리하고 청소기를 돌리는데, 청소기가 말을 안 듣는다.
청소기가 청소가 안 된 상태다.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청소기를 분해해 청소하며, 마음이 착잡했다.
진짜 청소는 이런 거다. 늘씬한 모델이 런웨이를 걷듯 청소기를 밀며 걷는 건 진짜 청소가 아니다.
홈쇼핑에서 시연을 해보며 좋다고 사라는 그 상품들, 우리 집에 오면 그렇게 안 된다는 거. 알고 있다.
인생이 그렇다. 대충 그럴듯한 모습으로 살 거라 예상하지만 실제로 현관문 열고 그 집에 들어가면 청소기를 청소하듯 집요하고 복잡하고 힘든 일 천지다. 홈쇼핑 제품 시연처럼 깔끔한 상황이 몇 번이나 있겠나?
시계를 보니, 10시다. 아이는 수학 문제집을 풀고 있다. 행복해 보이진 않지만, 그래도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는 모양이다. 내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하고, 몸은 아직 나무토막처럼 뻣뻣하다. 어제 큰 애와 나눈 대화 중 실수 한 건 없었나? 되짚어 보며, 엄마 노릇이라는 게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딸에게도 고충은 있을 것이다. 최근 아들, 딸 모두를 출가시킨 우리 교회 장로님이 몇 주 교회에 출석은 안 하셔서 무슨 일인가 했었는데, 알고 보니 그간 축적된 피로로 구안와사가 왔다는 것이다. 젊은이보다 더 활기찬 분이시다. 다행히 이번 주에 오셨고, 잠깐 마스크를 벗어주셨는데, 아직도 증세가 조금은 남아 있어, 안타까웠다. 곧 괜찮아지실 것이다.
진로나 수학 선행 같은 문제로 이렇게 징징 댈 일이 아니라는 거 알고 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일단 운동복을 챙겨 입고, 헬스장으로 내려갔다.
헬스장이 평소보다 한가하다. 아마 지난 금요일, 태풍 때문에 재활용품 수거를 못한 터라 오늘 월요일 아침에 그간에 쌓인 재활용을 처리하느라 다들 바빴던 모양이다. 다섯 대의 러닝머신이 모두 비어있어 난 가장 익숙한 러닝머신에 휴대폰과 수건을 올려두고 잠깐 헬스 기구로 가서 하체 근육 운동을 했다. 근육에 무지막지한 통증이 찾아왔다. 요가 강사님은 그걸 즐겨야 한다고 했다. 그래, 즐기자! 땀이 나도록 근육을 단련하고, 러닝 머신 위에 올라가 섰다. 후후 시동을 걸듯 숨을 쉬고, 발목도 돌리고, 발바닥을 꽉 쥐었다가 폈다가 하며 나만의 준비운동을 했다. 그리고 속도를 올리려는데, 갑자기 어제 본 유튜브 영상이 생각났다. 이삼십 대 직장인의 필수템 중 달리기 앱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달리기라니 관심이 생겨 들었는데, 쓱 지나가는 말로 그 달리기 앱의 목표가 30분 동안 멈추지 않고 달리는 것이란다. 물론 30분 달리기는 이미 해본 사안이다. 하지만 요즘 여름이라 2km 달리고 나서 잠깐 속도를 낮추고 물도 마시고 했었는데, 속도 8.7로 30분을 계속 달리면 얼마나 달릴 수 있나? 궁금해졌다. 조금 걷다가 최근에 추가한 맘에 쏙 드는 러닝 음악이 시작되며 속도를 바로 올렸다. 그래도 처음 5분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나무토막이 달리니 오죽 힘들까? 그래도 온몸 구석구석 불편함이 없나 생각하며 정돈하는 기분으로 천천히 달렸다. 꽤 오래 달린 기분인데 시간을 보니 고작 십 분이 지났다. 십분 뛰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멈추고 싶을 만큼 숨이 차지 않아, 좀 더 유연하게 몸을 움직이며 달려보았다. 나무토막이 점점 부드러워진다. 시선도 한 곳을 보기보다 무한대 그림을 그리듯 편안하게 움직인다. 계속 달리는데 러닝 머신 옆에 중년의 한 여성분이 올라왔다. 천천히 걸으며 전화 통화도 하고, 통화가 생각보다 길었고, 내용도 음악과 함께 들리긴 했는데, 전혀 거슬리지 않았다. 헬스장엔 그녀와 나 밖에 없다. 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익숙한 가사는 읊조리기도 하면서 달리는데, 기분이 점점 좋아지는 게 느껴졌다. 자유롭다고 느꼈다. 복잡한 마음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러닝 한 지 30분이 지났는데, 음악이 딱 끝나지 않아 좀 더 달리기로 했다. 이렇게 달리면 6km도 가능할 거 같다. 아침에 그 나무토막처럼 뻣뻣하던 몸이 어떻게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나? 지난 토요일 오전에 3km 달린 게 마지막 러닝이니 일요일 하루 쉬고, 월요일인데, 오늘 좀 다른 목표를 세우고, 달리며 특별한 성취감을 맛봤다. 행복했다.
여전히 흥이 꺼지지 않아, 움찔움찔 몸을 움직이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우리 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내리려는데, 앞집 아기엄마가 앞에 서 있어 난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문제집을 풀던 막내가 나를 반긴다.
"엄마 지금 6km 달리고 왔다!!! 한 번도 안 쉬고!!"
"으... 근데 엄마... 얼굴이 좀... 무서워!"
"무서워? 왜??"
거울을 보니, 무슨 일이야?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 목욕탕에서 2시간 목욕하시고 집에 오셨을 때 딱 그 얼굴이다. 벌겋게 상기된 얼굴에 땀이 비 오듯 줄줄 흐른다. 성격 더러운 소랑 한판 붙고 온 거 같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나를 만난 앞집 아줌마가 왠지 모르게 깜짝 놀란 듯 몸을 움츠린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그래도 기분은 좋다. 일어나지 않은 걱정들로 복잡했던 머릿속이 깔끔하게 정리된 기분이다. 하다가 정 못하겠으면 그만둔다고 하겠지. AI가 소설 쓰는 세상에 사는 아이다. 내가 경험한 걸 자꾸 아이에게 대입하려고 하면 안 될 것이다. 그래도 막내 육아의 슬로건은 조금은 수정할 생각이다. 건강하게 자라면서 문제집도 열심히 풀거라! 슬로건이 바뀐다고 아이가 바뀌는 건 아니니, 분명 속 터질 일이 줄줄이 비엔나소시지다. 그래도 종종 달릴 수 있으니 해볼 만하다. 살을 좀 빼고 싶어 시작한 운동이고, 러닝인데, 이젠 내 인생을 조절하고, 불안을 다스리게 도와준다. 고된 주말을 보내서 그런 가? 월요일 아침 러닝이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