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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원 Nov 27. 2023

모든 슬픈 눈에는 이유가 있다.

14. 4월 23일: 하나의 비밀을 알게 되다!

* 이 글은 열두 살 소녀 나나의 일상을 담은 일기형식의 동화입니다. 

   01화 그럭저럭 일기장이란? (brunch.co.kr)부터 순차적으로 읽으시면 좋아요.  



4월 23일 


일단, 오늘은 진짜 엄청난 날이다. 

하나가 우리한테 어마어마한 비밀을 말해주었다.    

눈이 슬픈 하나




 지난번에 했던 그 인성검사의 결과가 나왔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나쁜 생각을 한다. 안 한다. 

조금 한다. 자주 한다, 그 검사 말이다. 

우리는 한 명씩 앞으로 나가 결과지를 받았다. 

나는 외향성이 높고, 성실성은 낮다. 그럴 줄 알았다! 

난 좀 게으르지만 긍정적이고 밝은 아이인 것이다. 

다들 검사용지를 들고 다니며 친구에게 보여주기도 했는데, 하나는 검사용지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백록담선생님이 하나를 따로 부르셨다. 

잠시 후 자리로 돌아온 하나는 책상 위에 엎드려 또 가만히 있었다. 



 오늘 체육시간엔 우리가 그동안 모은 자율 체육 시간 쿠폰 8개로 피구를 했다. 

주동한 같은 까불이들만 얌전하게 굴면 생기는 쿠폰이다. 모두 신이 나 있었는데, 

하나는 제일 먼저 공을 맞고 나가버렸다. 

내 생각에 하나는 일부러 공을 맞고 나간 게 분명하다. 

하나가 전학 오고 한동안은 체육시간에 스탠드에 앉아 구경만 했다. 하지만 곧 그럴 수 없어졌다. 

체육 선생님이 앞으로 마음이 아픈 친구는 스탠드에서 쉴 수 없고 위 클래스에 가서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공을 맞고 운동장을 나가 스탠드에 앉은 하나를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급식 먹고 토크쇼’를 하기 위해 예은이랑 스탠드로 갔는데, 하나가 또 거기 있었다.  

(다정이는 어제부터 학교에 오지 않는다. 체험학습 신청을 하고 캠핑을 갔다. 

다정이의 카톡 프로필 사진이 계속 바뀌고 있는 중이다.)      

하나의 표정은 완전 우울모드다. 그럴 수밖에. 하나는 아까 백록담 선생님과 심각한 대화를 나눴다. 

체육시간에도 힘들었을 것이다. 하나는 항상 슬픈 눈인데, 왠지 더 슬퍼 보였다.

 

예은이도 영어학원 레벨 시험을 망쳐 엄마한테 혼났다고 했다. 

나도 우울해졌다. 문득 오래전 장난감 방에 있던 텐트에 혼자 들어갔던 순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거실에서는 엄마가 언니를 혼내고 있었다. 난 무서웠다. 언니의 울음소리가 슬프게 들렸다. 

스탠드에 앉은 우리는 다 같이 우울했다. 나와 예은이의 눈도 슬퍼졌다. 


벌써 여름인지 햇살이 뜨거웠다. 그런데 하나가 우리를 보며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사실 나는 친한 친구한테 상처를 받은 적이 있어. 

 그래서 전학도 왔고, 이번 인성 검사에서 우울감이 엄청 높게 나와서 

 아까 백록담 선생님이랑 이야기한 거야... ”     


하나가 우리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놀라웠다. 아니 충격적이었다. 

하나는 유튜브 크리에이터였다!  

‘카스텔라’라는 고양이 키우며 영상을 찍어 올렸는데, 구독자가 무려 1390명이었다고 한다. 

(하나, 진짜 대단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무시무시한 악플이 달리기 시작했단다.      


레알 노잼임!!

니 고양이가 뭐가 귀엽냐?

어쩔 티비! 

영상편집 디박 촌스럼. 꺼져!     


이런 악플 말이다. 속상한 마음을 친한 친구에게 이야기도 했는데,  

한참 후 알게 된 사실은 바로 그 악플을 단 여러 명의 구독자가 바로 그 친한 친구였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예은이와 난 너무너무 궁금해서 하나에게 물었다. 

하나는 그 친구가 여러 개의 계정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그 사실을 그 친구의 휴대폰을 빌려 쓰다가 알게 됐다고 했다.  

심지어 네가 나한테 악플 단 게 사실이냐고 물었더니 별 일 아니라는 듯 장난이라고 말했단다.      


"진짜 나쁘다!"

“근데, 그 친구는 인기가 엄청 많아, 

 반 아이들이 모두 그 친구랑 친하니까, 나만 빼고 다 같은 편인 거 같았어.”      


하나는 더 이상 학교를 갈 수 없었다고 한다.   

반 친구들과의 카톡도 전부 차단하고 연락처도 지웠다고 했다.

그리고 이사를 하고 우리 학교로 전학을 온 것이다.      


“나 전에 화장실에서... 들었어. 다정이 입양아라고 어떤 아이가 말하는 거.”

“아! 그날 너 화장실에 있었구나. 별 거 아니야 우리 그거 원래 다 알고 있거든.”

“그래서... 너희가 좋았어.”     


그 순간, 왠지 이런 말이 필요할 거 같았다.         


“이제부터 내가 너한테 좋은 친구가 돼줄 게.”      


다시 생각해도 멋진 말이다! 

드라마 주인공이 된 듯 우쭐한 마음까지 들었다. 하나는 내 말에 감동을 받은 거 같았다. 

눈물이 글썽한 듯 보였다. 

그런데 옆에 있던 예은이는 왜 운 거지? 암튼 예은이도 울었다.  

하나가 나와 예은이를 친구로 만나 다행이다. 


다정이가 입양된 걸 가지고 왕따나 하려는 서희 같은 애를 만났다면 하나는 또 불행해졌을지도 모른다. 

오늘 우리 ‘급식 먹고 토크쇼’는 눈물과 감동의 도가니탕이 되고 말았다. 

(나는 열두 살이지만 도가니탕이 얼마나 맛있는지 안다!)     


친구를 미워하는 마음은 도대체 왜 생기는 걸까? 

그 친구는 왜 하나에게 악플을 남겼을까? 겉으로는 친한 친구면서 왜 친구에게 상처를 주고 싶어 할까? 

문득 수아가 생각났다. 


나도 어쩌면 잘난 척 쟁이 수아에게 상처를 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수아 코를 납작하게 해주고 싶었던 내 마음도 그 친구 마음이랑 비슷한 걸까? 

그런 거라면 어떡하지? 그래도 난 수아의 유튜브 채널에 악플까지 달진 않을 거 같다.

물론 수아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건 아니다. 

내가 그 정도로 나쁜 애는 아니란 거다. 그 정도로 나쁜 마음은 어떤 걸까?

휴... 그렇게 나빠지는 것도 쉽지는 않겠다.

 

어쨌든 모든 슬픈 눈에는 이유가 있다.

하나도 예은이도, 그리고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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