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MZ세대는 처음이라
많이 놀라셨죠?

그들은 생각하는 아내와 남편의 의미

by 임지원

우리 집에 Z세대가 있다.


바로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되던 2000년도에 태어난 우리 집 큰 아이다.

확실히 이 아이는 스마트기기 사용에 능하다.

수능 공부도 탭을 들고 다니며 2배속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했다!

어느 날은 갑자기 노르웨이어를 공부한다길래, 그것도 참 특이하다 했는데 공부하는 방식은 더 특이하다.

노르웨이에 사는 아이들과 채팅을 하면서 언어를 배우는 거다.

지난해, 코로나 때문에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방구석에 들어앉아

뭘 하나 했더니 휴대폰과 노트북, 두 개의 스마트 기기를 활용해 토익공부, 스페인어 공부,

심지어 노르웨이 친구까지 사귄다! Z세대의 스마트기기 활용 능력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기사를

보긴 봤어도 그냥 그런 가보다 했는데, 우리 집 Z세대가 사는 모습을 보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뿐이 아니다.


평생 노란 다이얼 비누 신봉자인 아빠가 구매를 위해 온라인 쇼핑몰 가격비교를 하고 있는데,

딸이 나선다. 요즘 힙한 건 그런 게 아니라며 친환경 에코 바를 추천한다!

언젠가는 마트에 간 김에 생각 없이 수세미 하나를 카트에 던져 넣자 역시나 Z세대가 노한다.

이런 수세미가 미세 플라스틱의 주범이란다. 설거지를 하는 동안 조금씩 떨어져 나간 조각들이

음식물 쓰레기에 섞이고 그것이 가축의 몸속으로 들어가 결국 우리가 섭취하게 된단다! 아이고...

Z세대에게 실용적이면서 의미가 있는 소비를 하는 특징이 있다더니, 그게 바로 이건가 보다.

생각보다 과시하는 소비보다는 효용성과 함께 목적이 분명한 소비에 더 관심이 있다. 깜짝 놀랐다.

X세대인 나는 Z세대인 딸에게 종종 가르침을 받으며 살고 있다.


나의 시아버님은...


분류를 하자면... 전후세대, 베이비붐 세대보다 조금 앞선 세대이다.

많은 것을 일구셨지만, 그것을 다 지키지 못하셨다는 회한도 있으시고,

명절이나 가족 모임이 있는 날엔 누구라도 하나 앞에 앉혀두고 끝없이 사랑의 잔소리를

쏟아내시는 여느 집에나 계실 법한 평범한 아버지의 모습이다!

내가 보기엔 남편과 시누이들은 평균 이상의 효자, 효녀다.

하지만 아버님 앞에 앉아 잔소리 듣기는 절대 하지 않는다.

아버님 앞을 지키는 건 대부분 사위와 며느리.

내가 남편에게 너무 한 거 아니냐고 종종 등을 떠민다.

남편은 멍한 표정으로 씁쓸하게 한마디 한다.


"난 많이 했다..."


오랜만에 식구들이 다 모이면 아버님 기분은 점점 좋아지신다. 에너지가 막 충전되시는 거다.

벌써 많은 이야기를 하셨는데... 뭐지? 기승전결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기승승승?

결국 사위가 지쳐 나가떨어지면, 바로 며느리를 호출하신다.


"메누리, 이리 와 봐!"


그렇게 아버님 앞에 불려 가면... 작년에도 들었던, 어쩌면 재작년에도 들었던....

매년 들었던 이야기를 다시 들어야 한다.


시작은 늘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아버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공자님 말씀이다.

그중에서도 제가! 그게 포인트다. 가정이 올바로 서야 한다는 것.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아내가 남편을 어떻게 공경해야 하는지를 일화로 풀어주신다.

난 이 에피소드를 정말... 정말 많이 들었다!


"세무서장의 아내가 마늘 까는 일을 했어요.(아버님은 마늘 상인이셨다. 아마 많은 분들에게 부업을 제공하셨던 모양이다.) 남편 월급 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우니까.. (처음엔 너도 돈을 벌어라 하시는 줄 알고 당황했었다) 그래도 티를 안내. 남편이 없을 때 마늘을 까고, 남편 들어오기 전에 다 치워놓고, 손도 냄새 안 나게 깨끗이 씻고 그랬지. 그렇게 돈을 열심히 벌어서 남편을 위해 금반지를 사서 끼워줬다고..."

"아... 네... "

"그렇게 남편을 공경하니까... 세무서장 자리까지... "


이 일화는 솔직히 듣는 며느리 입장에서는 약간 불편한 느낌이 있다.

너도 남편에게, 아니 내 아들에게 머리카락으로 짚신을 지어 바치라는 느낌 같기도 하고.

어쨌든 남편을 잘 내조하며 살라는 말씀이구나 하며 듣고 있다!


아버님, 드디어 Z세대를 만나다!


이번 설에는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 조항 때문에 본가에는 남편과 우리 집 Z세대가

대표로 가기로 하고 나는 둘째 아이와 집에 머물 수 있었다!

( 브라보! K방역 만세! )


점심이 지나, 남편과 큰 아이가 돌아왔는데,

남편 얼굴에 이상한 웃음이 범벅돼 있는 거다.


"왜? 뭔 일 있었어? 표정이 왜 그래?"

"아버지가... ㅋㅋㅋ (우리 집 Z세대를 가리키며) 쟤 때문에 엄마랑 나랑 빵 터졌어... "

"왜왜?? 뭔 일 있었는데???"

"세무서장 얘기 알지?"

"알지! 마늘 까서 금반지 남편한테 사준..."


사실, 우리 큰 아이는 명절이든 언제든 아버님 앞을 담당한 적이 없었다.

사위에 이어, 며느리가 지쳐 나가떨어지면 그 자리는 우리 아이보다 한 살 위인 외손자가 담당을 했다.

게다가 우리 아버님은 아들보다는 딸을 더 사랑하는, 은근 진보적 사고를 하신다.

그래서 아버님에게는 친손녀보다는 외손자의 의미가 더 컸을 수도 있다. 물론 추측이다!


하지만 이번 명절이 보통 명절인가!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로

사위도 없고, 며느리도 없는 오로지 아들과 손녀만이 함께하는 단출한 명절 아침이 된 것이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아버님과 Z세대인 우리 큰 아이가 마주 앉았다.

시작은 언제나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우리 집 Z세대는 대학교에서 성균 논어라는 강의를 들었다.

공자님 말씀에 1도 관심이 없었는데, 배워보니 깨달음이 있었다며 나에게 공자님 말씀을 설파하던 아이다.

어른의 권위에 눌리는 아이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공자님 말씀에 대한 자기 생각을 아버님께 이야기했단다.

오래간만에 일방적 소통이 아닌 쌍방향 소통을 경험하신 아버님은 기분이 업되시어 껄껄껄!

그때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좋았다고 한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가 이어지다 보니

아버님은 손녀딸의 결혼 이후까지도 걱정이 되셨던 모양이다.

세무서장 부인이 마늘 까서 번 돈으로 남편에게 금반지를 끼워주었다는 바로 그 이야기가

시작된 거다.


"남편이 없을 때 마늘을 까고, 남편 들어오기 전에 다 치워놓고, 손도 냄새 안 나게 깨끗이 씻고 그랬디야.

그렇게 돈을 열심히 벌어서 남편을 위해 금반지를 사서 끼워줬다고..."


그러자 우리 집 Z세대,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금반지를 왜?... 재테크인가요?"

"????"


아내가 돈을 벌어 남편에게 끼워준 그 '공경'의 상징, 금반지의 의미를 이해 못하는 Z세대의 답변에

많이 당황하신 듯 보였단다.


"엄마, 우리 집에 저런 애가 있어..."


특히, 어머님이 많이 웃으셨단다. 생각해보면 그 일화를 들으며 불편함을 느낀 건 며느리뿐만 아니라 바로

아버님의 아내, 어머님이셨던 거다!


"너 이번 명절에 엄마한테 점수 많이 딴 거 같다."

"오~ 정말?"


Z세대에게 남편을 공경하라는 얘기는 그냥 이해할 수 없는 말인 모양이다!

하긴 Z세대에게 부부의 의미는 그런 게 아니겠지!


"아버님, Z세대는 처음이라... 많이 놀라셨죠?

아버님도 신문물 받아들이셔야죠. 이제 그 금반지 받은 세무서장 에피소드에

Z세대 손녀의 답변까지 추가하셔서 업그레이드를 해보심이 어떨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아버님의 이야기는 갑자기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되신 먼 친척분을

아버님 마늘 상회 앞에서 장사할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주시고

그분 아들 공부하게끔 도와주신 이야기입니다~ 아버님, 멋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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