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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배 Zoe Sep 22. 2023

호주에서 만난 1세대 이민자들

23-01-29

시드니에서 신기한 일이 있었었다. 소피가 출근하는 가게의 마감을 정리하는 걸 보러 갔다가 소피의 집에 데려다주는 길에 저녁식사에 초대받았다. 그때 소피는 두 명에게 동시에 저녁식사 초대 전화를 받았다. 소피는 정말 인기가 폭발적이다.


사람을 가리지 않는 소피는 살갑게 구는 동생들이 맛있는 고기를 구워준다는 걸 미안하다 말하고 첫 번째로 연락이 온 친구 집에 갔다. 만나본 적은 없는 분이지만 소피가 바빴던 날들의 이유 중 하나를 차지했던 분이었다.


소피는 그분의 이사를 도왔다. 글쎄? 아주 친한 친구는 아닌 걸로 안다. 우연히 어떤 모임에서 알게 됐다고 들었지만 그분이 소피를 별로 좋아하진 않았다고 했다. 소피는 그걸 알고도 그분의 이사를 함께했다. 아무런 돈도 받지 않고 이삼일을 그 집에 가서 모든 짐을 버리고 정리하고 청소하고 도왔다. 그리고 소피는 마지막에 그분에게 밥까지 사줬다고 했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소피는 정말 그렇게 하는 사람이다.



그곳에 도착해 보니 원래 있던 약속이 파투 나서 혼자 먹기 싫어진 그분이 소피를 부른 거였다. 글쎄 이삼일을 이사를 도운 사람을 거하게 대접하는 것도 아니고, 있던 약속이 취소돼서 그 마음을 달래려 부른 거였다니. 밥 얻어먹으러 가는 입장인 내 주제에 이런 생각은 건방질 수도 있겠지만, '이게 말이 되나.'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소피의 옆에 앉아서 저녁식사 내내 그분이 하는 불평불만을 끊임없이 받아내야 했다. 얼마나 힘들었고 나쁜 사람을 만났는지 괴로웠던 상황을 계속 토로했다.


소피와 나는 잠자코 듣고 있었지만, 사실 우리는 그런 말을 즐겨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도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상황에 대해 누구에게 털어놓는 사람들도 아니다.


나는 그 저녁식사에서 그런 성격이 만들어낸 차이를 극명하게 느꼈다. 요즘 심리학의 트렌드는 긍정심리학이다. 그걸 바로 두 눈으로 확인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달까. 동갑내기인 할머니들 중 한 명은 앞으로 새로 만날 젊은 친구들이 기대돼 하루하루가 너무 즐겁다고 말했다. 한 명은 모든 이들이 무섭고, 새로운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해칠지 공포라고 했다.


나는 그 식사 자리 내내 생각했다. 사실 그때 나는 바빴다. 그런 교훈을 얻으려 그 자리에 앉게 된 걸까? 그런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헤어지는 길에 어떤 물건을 하나 받았다. 마침 태즈메이니아 한인회 회장님께 전할 물품이 있는데 그걸 혹시 전해줄 수 있겠냐고. 한인회의 거점지가 다행히 내가 도착한 호바트였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나는 물품을 건네주면서 저녁식사를 얻어먹게 됐다. 마침 한인회 회장님이 어딘가 들려서 청소할 곳이 있다기에 냉큼 따라나섰다. 내가 뭘 가져오긴 했지만 별로 품이 들지 않는 일이었다. 오늘 저녁식사에는 설날 행사를 도와준 자원봉사자분들이 오신 댔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뭘 얻어먹는 게 너무 죄송해서 가만있을 수 없었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건 줄 알았지만 나와 회장님만 도착해 있었다. 하지만 그 덕에 나는 태즈메이니아에 얽힌 한인분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호주가 너무 좋지만 한국의 뜰을 보자마자 갑자기 눈물이 왈칵 났다. 왜였는지는 모르겠다. 비석 말고 뭔가 없는 곳에서 갑자기 고향이 느껴졌다. 원래는 Grove였던 명칭을 한국어로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하다가 뜰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내셨다는데 나는 이 표현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서 한국의 뜰, 언니 나무와 동생 나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이동해서 우정의 벽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나는 한국의 뜰에 서서 적힌 한글을 보며 자꾸 울컥울컥 하는 걸 참기가 어려웠다. 태즈메이니아라는 들어본 적 없는 곳에서 한국을 알리고자 노력하시는 마음이 진하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감동적인 마음이었다.



그리고 태국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내내 뭔가 울렁거리는 기분을 느꼈다. 한인회 회장님의 노력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나에겐 마침 브런치라는 플랫폼이 있다. 헤어지기 전 이 글을 본격적으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회장님의 집을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장님의 집은 Dokdo-rise라는 도로명에 위치해 있다고 말씀해 주셨었다. 그 이름을 어떻게 지으셨는지 물으니 사라져 가는 이름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사라져 가는 Dokdo-rise를 알리기 위해서 내가 태즈메이니아에 온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 운명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나는 작고 보잘것없는 사람인데 너무 큰 사명을 받은 것만 같은 중압감도 느낀다.


요즘 바깥에 있을 때 시드니에서 만큼 그리 큰 행복을 누리지 못했다. 요즘 나는 모든 일에 이유가 있다고 믿으며 지낸다. 그래서 내가 도대체 왜 이런 걸까? 이상했다. 그리고 이런 임무를 받았다. 그러니까 밖에서 그만 즐거워하고 집 안에서 글을 열심히 적으라는 신호인지도 모른다. 집 안에만 있어도 그리 서글프지 않게 멋진 풍경을 선물 받았으니까.




그리고 나는 독도라이즈 글을 올리고 처참한 성과를 기록했다. 내가 올린 글 중에 가장 조회수가 낮은 글이 독도라이즈였다. 이 날의 이야기가 담긴 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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