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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텐텐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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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세핀 Oct 02. 2023

피넛버터



 

 옆집에 이사 온 남자가 신경 쓰인다. 그의 얼굴도 모르지만 말이다. 사실 스쳐 지나가듯이 본 것이 전부였다.


 로마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져 갈 무렵, 매일 가는 식료품점 사장님께 이제 잘 지내셨냐고 정도는 물어볼 수 있게 되었을 즈음이었다. 나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사는 집 문은 아직 나를 받아들이지 못한 모양이었다. 오래된 건물이라 문이 잘 안 열리는 때가 가끔 있었는데 그날도 그날이었다. 우리 집 문은 나만큼 예민하다. 열쇠가 딱 들어가면 ‘딸깍’하는 느낌이 있는데, 운 좋게 그게 맞아야 문이 열린다. 나는 그날도 그 감을 찾기 위해 열쇠를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


 그때 누가 내 뒤를 스쳐 지나갔다. 그의 뒷모습만 볼 수 있었는데, 흰색 반바지에 흰색 반팔 셔츠. 위아래로 흰색 옷에 검은 머리카락. 순간적으로 ‘한국인인가? ’ 싶었다. 원래 옆집에는 나이 든 이탈리아인 아저씨가 살고 있었다. 그 아저씨는 내게 때때로 아직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걸었는데, 제스처를 사용해서 이해해보려고 해도 나는 단 한 번도 그의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럼 새로 이사 온 사람인가. 그의 뒷모습과 향기에 그가 궁금해졌다.


 있는 돈을 끌어모아 로마로 온 지 두 달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모든 것이 꼬여가기만 했다. 그저 튤립 같은 드레스를 내 손으로 만들어보고 싶은 것이 꿈이었는데,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밤을 새우고 디자인을 빼앗기고, 손가락이 성한 날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럴수록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명확해질 뿐이었다. 나는 나의 것을 만들고 싶었다. 누가 뭐래도.

 나에게 내가 준 시간은 딱 삼 개월이었다. 그 안에 이곳에서 승부를 내야 했다. 이제 두 달이 지났고, 아무것도 없이 한국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 무렵의 나는 지쳐있는 줄도 모르게 지쳐있었다. 지쳤더라도 뭐라도 만들어서 누군가에게 보여야 했다. 그날 밤도 늦게까지 옷을 만들고 있었다. 운 좋게도 한 부티크 브랜드에서 내 디자인을 마음에 들어 했고, 내일 아침까지 보여줄 만한 것을 만들어오라고 했기에 또다시 열을 올리고 있었다.


 드레스 끝부분에 작은 꽃잎 자수를 놓는 작업 중이었다. 갑작스럽게 배가 고팠다. 한숨 쉬며 냉장고를 열어보았는데 내일 먹을 우유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잠깐 밖에 나갔다 오려고 옷을 챙겨 입었다.


 그리고 현관문을 열었는데 그 남자가 서 있었다. 그 남자는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고 있었다. 나를 발견하고 어색했는지 고개를 까딱했다.


*

생각한 대로 잘생겼다.

*


 늦게까지 여는 슈퍼에 가서 과자를 사 오는데, 아무 생각이 안 들었다. 옆집에 저렇게 잘 생긴 사람이 있다고? 말이라도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무슨 말을 걸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멍하니 집으로 돌아왔다. 하던 일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어이없게도 옆집에서 나는 모든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 날, 겨우 만들어낸 드레스를 들고 부티크로 찾아갔다. 웨딩드레스를 전문으로 하는 그 부티크는 내 인스타그램을 보고 연락을 주었다. 그들은 원하는 디자인을 콕 집었고, 실물로 볼 수 있는지 물었다. 급한 마음에 나는 해서는 안될 대답을 했고, 이렇게 밤을 새워 만든 드레스와 숍에 도착해서 반쯤 멍하니 서 있다.


  “좋네요.”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몇 개 안 되는 문장이었다. 로마에 오고 나서 처음으로 받은 인정이었다. 드레스를 살펴본 그들에게서 다음 주부터 출근하라는 말을 들었다. 물론 작업실에서 바느질부터 시작해야 하지만 내게는 더는 없을 기회같이 느껴졌다. 나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들은 내가 영어를 할 수 있다는 것에 조금 안도하는 것처럼 보였다.


 드레스를 품에 안고 다시 멍하니 집으로 걸어오는데 누군가 내 드레스를 잡아당겼다. 화를 내려고 고개를 확 돌렸는데 또 그가 서 있었다. 오늘은 위아래로 녹색 옷을 입었다.


 “차요.”

 “차...”


 눈 깜짝할 새에 람보르기니 한 대가 내 앞을 지나갔다. 몸이 휘청였지만 겨우 중심을 잡았다. 그가 멀어져 갔다. 나는 다시 희디 흰 드레스를 품에 꼭 안았다. 빨리 침대에 눕고 싶었다. 오늘은 부디 문이 한 번에 열리길.




 그는 언제 집에서 나갈까. 언제 외출하는 걸까. 회사는 다니는 걸까. 학생일까. 뭐 하는 사람일까. 모든 생각과 상상이 동시에 들었다.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말을 걸어볼까. 매일 밤 잠이 오질 않았다.



 부티크로 출근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출근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꿈은 이루자마자 현실이 된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그렇게 하고 싶던 일은 해내자마자 일상이자 짐이 되었다. 하루는 빠르게 흘러갔고, 여름은 더욱 뜨거워졌다.

 오랜만의 휴식에 켠 유튜브에서는 백종원 아저씨가 콩국수를 만들고 있었다. 콩국수... 파스타면으로라도 만들어볼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로마에서는 먹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음식이지만 오늘은 무조건 먹어야 할 것 같았다. 아저씨는 콩국수에 땅콩버터를 넣으라고 했다.


*

집에 땅콩버터가 있나?


옆집 생각이 났다.

*


 용기 내 그의 문을 두드렸다. 그가 문을 열었다.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가 누구시냐고 물었다.


*

휴... 누구나니.

*


 당황스러움을 감추고 옆집에 산다고 했다. 그에게 땅콩버터를 빌릴 수 있을지 물었다. 그는 내게 집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어색하게 들어간 나는 그에게 전에 살던 아저씨는 어떻게 됐냐고 물었고, 그는 자신의 학교 교수님이었는데, 여름 방학 동안 살라고 해서 살게 됐다고 했다. 나는 그 아저씨가 교수였다는 사실에 놀라고, 이 남자에게 유통기한이 있다는 사실에 서글펐다.


 그는 냉장고를 한참 뒤지더니 땅콩버터를 꺼내줬다.


“근데, 왜요?”

“아. 콩국수 먹으려고요.”

“콩국수에 땅콩버터가 들어가요?”

“네. 그러던데요?”

“아.”


 땅콩버터를 받아 뒤돌아서 가려는데, 아무래도 뭔가 해결하지 못한 게 있었다.


“혹시 같이 드실래요?”

“으... 겁나는데.”

“맛있을 거예요.”

“그래요. 그럼. 뭐 준비할까요?”

“제가 해올게요. 혹시 오이 있으세요?”

“오이... 네.”

“오이만 좀 썰어두시겠어요? 오이를 올려야 맛있어 보여서.”

“네.”


 나는 후다닥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부리나케 콩국수 레시피를 찾았다. 시간은 딱 30분이 있다. 30분... 나는 할 수 있다. 두부와 땅콩버터를 믹서에 넣고 갈았다. 파스타면을 삶았다. 얼음을 꺼내 들고 면을 마사지해 주었다. 손이 시렸다. 너무나... 그리고... 콩국수가 완성됐다.


 그의 집 문을 두드렸다. 약간 땀을 흘린 듯한 그가 서있었다. 오이 자르는 게 힘들었나? 열심히도 잘라 놓은 오이를 콩국수에 올려 먹었다. 콩국수로 시작된 여름 나기는 한 달이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하루는 그가 삼계탕을 만들고, 하루는 내가 초계국수를 만들었다. ‘여름 음식’이라고 할 만한 모든 것들은 다 해 먹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 달이 갔다.


 우리는 서로 같이 밥은 먹었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어차피 끝으로 수렴할 인연이었다. 한국 음식이 그리워질 때쯤 만나게 된 친구였을 뿐이었다. 그가 나에게 지속적으로 선을 긋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나도 선을 지키고자 하는 말은 아니다.


 부티크로 출근한 지 한 달이 지나자 그 근처에 있는 곳으로 이사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한 시간은 걸리는 거리를 매일같이 오가는 것도, 가끔 집에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일이 몰리는 것도 힘들었지만 이제 디자인 하나를 맡게 되어 온전하게 집중하고 싶었다는 것이 가장 컸다.


 마지막으로 이 집에 있을 날이 다가 오자 이 동네에서 알게 된 사람들을 불러 파티를 열기로 했다. 동네 슈퍼 아줌마, 동네 투어를 시켜 준 한국인 친구, 이탈리아어 학원 선생님, 그리고 옆집 남자. 옆집 남자도 친구들을 몇 명 데리고 온다고 했다. 우리는 열심히 음식을 준비했다. 땅콩버터 샌드위치, 오이 샐러드, 로스트 치킨 등을 만들었다. 우리가 친해질 수 있었던 음식이라며 서로 의미를 부여했다.

 얼추 파티장 같은 느낌이 진해지자 친구들이 하나 둘 왔다. 어색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서로 친하게 잘 어울렸다.

 집 안을 둘러보니 그가 오이 샐러드 앞에 서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한 달 동안 고마웠다고, 심심하지 않았다고. 재밌었다고. 그도 웃으며 고마웠다고 말했다. 그의 친구가 다가왔다.


“야. 너 오이 싫어하면서 오이 샐러드는 왜 했냐?”

“어?”

“세상에 오이는 다 죽어야 한다며”

“... 야.”


*

그와 밥을 먹던 첫날, 땀 흘리던 모습이 이해가 갔다.

집에 오이가 없었던 것이다.

오이를 구하러 어디까지 갔다 온 거지...

*


실컷 떠들던 내 친구들도 내 곁에 왔다. 그들이 땅콩버터샌드위치를 집어 들었다.


“먹어볼까 어디.”

“야 웬 땅콩버터샌드위치냐. 너 환공포증 있어서 콩 싫어하잖아.”

“... 야.”


 그와 눈이 마주쳤다. 어쩌면 한 달 전부터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콩을 싫어하는 여자와 오이를 싫어하는 남자의 콩국수로 시작된 인연이 생각보다 오래갈 것이라는 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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