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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텐텐 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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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세핀 Oct 17. 2023

꽈당 쿵!



 내가 원하던 능력은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내게 찾아온 이 힘은 저주 같기도 하고 선물 같기도 했다. 이 힘에 필요한 조건은 딱 세 가지였다. 먼저 목표 대상이 시야에 들어와야 하고, 머릿속으로 그 사람이 넘어지는 상상을 해야 하고,  마지막으로 내 눈을 감아야 한다. 이 세 가지 조건만 맞으면 그 사람은 무조건 '꽈당 쿵!' 넘어진다. 

 이 능력을 발견한 것은 평소와 다름없는 어느 오후였다. 그날도 나는 재활치료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택시를 타고 말이다. 재활 치료에서 이미 땀을 많이 흘린 상태라 지쳐있던 나는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어떤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길가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고 있는 취한 남자였다. 나는 자연스레 그 남자의 다리를 보았다. 두 다리로 꼿꼿하게 서 있는 남자. 그리고 내 다리를 보았다. 아직 깁스를 하고 있는 내 다리. 저 사람 보다 도대체 내가 잘못한 게 뭐기에 나는 이 꼴이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가 저렇게 휘청대다가 넘어지기를 속으로 바랐다. 그리고 고개를 돌린 순간, 그가 정말 '꽈당 쿵!'하고 넘어졌다. 사실 처음은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나도 그랬다. 그러나 두 번째는 아니었다. 

 두 번째는 조금 의도적이었다. 목발을 짚고 학교에 간 날이었다. 그날은 우리 학교와 성주고 축구부의 친선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원래 내 것이었어야 할 8번 축구복을 입고 경기장에 들어서는 민혁이 보였다. 친구들의 열렬한 응원 소리가 들렸다. 민혁은 경기 내내 날아다녔다. 옆에 있던 친구들이 나를 안쓰럽게 보기도 했지만 이제 민혁의 실력에 다들 감탄하면서 민혁이 도내 축구 대회에 대표 선수로 나가야 한다고 까지 이야기했다. 나는 기분이 상했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민혁이 벌써 세 번째 골을 넣을 기세로 상대방 골대로 달려가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그가 넘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꽈당 쿵. 민혁이 넘어졌다. 당황한 내가 벌떡 일어난 순간 골이 들어갔다. 건너편에서 달려오던 나의 동료 진호가 넣은 것이었다. 민혁은 살짝 넘어졌는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라긴 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 조금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그때 나는 완전히 깨달았다. 나에게는 힘이 있었다. 

 훈련을 시작했다. 거미줄을 뿜거나 초인적인 힘을 가졌거나 미래를 보거나 하는 초능력은 아니지만 내 초능력도 가끔은 쓸 때가 있었다. 복도에서 친구의 돈을 뜯는 일진 애들을 봤을 때 나는 눈짓 하나로 그 놈들을 쓰러뜨릴 수 있었고, 길가에서 괜히 시비가 붙어 싸우는 사람들도 바닥에 눕혀 놓을 수 있었다. 가장 뿌듯했던 일은 아르바이트하던 편의점에 강도가 들어왔을 때 그를 붙잡은 것이었다. 그는 넘어지느라 편의점 밖으로 나갈 수 없었고, 그렇게 그는 경찰이 올 때까지 수십 번을 꽈당 쿵했다. 점장님은 내가 어떻게 다 낫지도 않은 다리로 강도를 잡았는지 신기해하며 보너스를 주셨다. 

 더 많은 훈련을 거듭해서 넘어질 사람을 떠올리는 시간과 그 사람이 실제로 넘어지는 순간의 시차를 줄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사실 일상 중에는 넘어뜨릴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편의점에 든 강도에서 나쁜 놈들 피크를 찍고 그다음에는 한동안 잠잠한 삶을 살아갔다. 어딘가에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을 텐데, 매일 밤을 방황하다가 집에 뒤늦게 들어갔다. 혹시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하는데 내가 필요한 때에 있어주지 못한 것은 아닐까 싶어서 전에는 없던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렇게 걱정과 평화가 뒤섞인 삶을 살고 있는데, 어느 날 머리에 봉투가 씌워지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동차에 태워졌다. 차에서는 폐 몇 개는 썩었을 듯한 담배 냄새가 났다. 누군가 숨을 쉴 때마다 그 사람의 건강이 걱정될 정도였다. 방금 먹었을 듯한 곰탕 냄새도 났다. 그렇다. 나는 어떤 조직에게 납치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리고 머리에 씌워진 봉투가 벗겨졌다. 나는 어두운 창고 안에 앉아 있었다. 영화에서 보던 곳이었다. 비싼 양복을 입은 남자가 들어왔다. 편의점에 가끔 오는 주상 복합에 사는 아저씨가 입는 양복과 같은 것이어서 알아보았다.


 "오늘 해줄 일은 이거다."


 그 남자가 종이를 내밀었다. 종이에는 그날의 경마 일정이 쓰여 있었다. 


 "이거를 어떻게..."

 "네가 쓰러뜨릴 말은 9번 말이다."

 "네?"

 "몇 달 동안 너를 주시해 왔지."

 "저를요?"

 "너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는 걸 알아. 그걸 우리를 위해 좀 써줘야겠다."

 "아니..."

 "다 아니까 모른 체하지 말고."

 "아니... 동물은 안 해봤는데요."

 "뭐?"

 "동물한테는 안 써봤어요. 능력을."

 "흠..."


 남자가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길고양이 한 마리를 금방 잡아왔다. 


 "자."

 "네?"

 "넘어뜨려 봐."

 "..."

 "살고 싶으면."


 남자가 주먹을 꽉 쥐어 내 얼굴에 갖다 댔다. 눈이 저절로 감겼다. 고양아, 미안해. 고양이가 넘어졌다. 그리고 곧바로 다시 일어났다. 


 "되네."

 "되네요..."

 "경마는 1시간 후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기도 전에 그가 철문을 닫고 나갔다. 그래도 사람을 구하는데 쓰고 싶었는데. 달리는 말이 넘어지면 아프지 않을까, 다른 사람들도 다치지 않을까. 걱정이 밀려왔다. 그제야 묶여 있는 팔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만약에 말을 넘어뜨리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벌써부터 죽을 각오를 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경마 시간이 되었다. 검은 양복을 입은 그 남자와 양복을 입은 남자들, 그리고 등산복 차림의 남자들이 나를 경마장으로 데리고 갔다. 그들은 가장 높은 층, 좋은 자리를 차지했다. 프라이빗하게 경마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나는 창가에 놓인 한 의자에 묶였다. 그들이 8번 말을 가리켰다. 나는 고고하게 서 있는 그 말을 멀리서 지켜보았다. 위풍당당한 기세를 뽐내고 있는 갈색의 멋진 말이었다. 말은 죄가 없지.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살펴보자 그들은 내 능력을 아는 모양인지 다들 몸을 피했다. 이윽고 8번 말을 보여 준 그 남자가 내 눈을 가렸다. 혹시 자신을 보고 명령을 내릴까 겁나서일 것이다. 이 사람은 내 능력을 왜 이렇게 자세히 알고 있는 거지? 내 능력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는데... 아 혹시 점장님인가? 싶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말을 생각하지 않으려면 최대한 다른 생각을 해야만 했다. 


 탕! 하고 경마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해봐."


 남자가 차분하게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해보라고!!"


그가 내 몸을 격하게 흔들었다. 눈이 가려진 나는 머릿속으로 말만 떠올리면 되었다. 그 8번 말에게 넘어지라고 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그러고 싶지 않았다. 말은 죄가 없었다. 경마장이 각기 다른 말을 응원하는 환호 소리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귀가 왱왱 울렸다. '말을 생각하지 마.'라고 하면 말을 떠올릴 것 같았다. 축구부 민혁이를 떠올렸다. 그는 이제 내 자리를 완전히 차지하고 영웅이 되어가고 있었다. 괜찮다. 나는 아마 이제 축구는 못할 것이다. 만약 여기서 살아서 나간다면. 살아서 도망친다면. 그래도 축구를 다시 해볼까? 몇 년이 걸리더라도 다시 해볼까?라는 생각을 했다. 

 내 능력을 눈치챘던 옆집 할머니가 떠올랐다. 할머니의 속을 한동안 썩이던 막내아들을 살짝 넘어뜨린 적이 있었다. 할머니의 팔목을 잡고 실랑이하던 그 사람. 그 사람이 넘어지지 않았다면 할머니가 넘어졌을 것이다. 내가 남몰래 구했던 여러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실 얼마 전부터 이미 봤던 사람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면 넘어뜨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이미 본 얼굴이니 그 얼굴을 기억하고만 있다면 말이다. 만약 그 방법이 지금 제대로 통한다면? 나도, 말도, 살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가려진 눈을 더 꼭 감고 나를 경마장으로 데려 온 사람들을 떠올렸다. 


 자, 모두 넘어지세요. 여러 번. 넘어지세요. 모두들.  


 얼마 지나지 않아 꽈당 쿵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여전히 아래층의 다른 사람들은 환호하고 있었다. 8번 말을 연호하는 목소리들 사이로 '꽈당 쿵'소리가 점점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꽈당 쿵

꽈당 쿵

꽈당 쿵

...


 그리고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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