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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텐텐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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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세핀 Oct 11. 2023

게임보이




 술에 많이 취한 한 남자가 경찰서로 뛰어 들어왔다. 빛바랜 청재킷을 입고 있는 그는 무척이나 지쳐 보였다. 그의 술냄새를 먼저 맡은 경찰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애... 도윤이가 없어졌어요."

 그가 고함을 쳤다. 아니다. 사실 그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고 생각했다. 경찰들이 얼굴을 찌푸리자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큰 목소리로 말했는지 깨닫더니 입을 막았다.

 "언제요?"

 "오늘 아침에 방문을 열었더니 없었어요."

 "학교에 간 건 아니고요?"

 "학교는 이미 갔다 왔죠!"

 이번에는 그가 정말로 소리를 질렀다. 경찰들이 다시 한번 인상을 찌푸렸다. 그가 고개를 숙였다.

 "제발 찾아주세요..."

 한 순경이 일어나서 그 남자를 의자에 앉혔다. 그가 쓰러지듯 의자에 앉았다.

 "잠시만요."

 그 모습을 본 다른 경찰들이 그에게 들릴 듯 말 듯 말하기 시작했다.

 "술주정뱅이 아버지한테서 도망간 거 아냐?"

 "그러니까요. 손에 상처도 많은 걸로 봐서 때린 건 아닐지."

 "그러게..."

 의자에 앉은 남자가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그 자리에서 죽을 것 같은 몰골이었다.


 그래서 그 소년은 어디로 갔을까?




#1

 도윤의 일상에 작은 균열을 일으킨 건 명준의 등장이었다. 그때까지는 괜찮았다. 모든 것이. 다른 사람들은 큰 고통으로 여길 만한 술을 마시는 아버지를 두었다는 것도 도윤에게는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었다. 어머니도 없이 지난 5년 간 아무렇지 않게 아버지 민철을 다뤄 온 그는 이제 도가 텄다. 물론 가끔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튀어나가는 아버지 때문에 맞은 적도 많지만 도윤은 이제 그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애써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나 명준이 등장한 이후 도윤은 달라졌다. 명준은 지금까지 그가 만난 그 누구와도 다른 아이였기 때문이다. 도윤이 생각하기에 명준은 모든 면에서 도윤보다 나았다. 그에게 없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와 다른 세계 사람처럼 보일 정도로 명준은 새로웠다. 도윤은 보청초등학교 5학년 3반의 다른 모든 아이들보다도 명준이 신경 쓰였다.

 며칠 후 도윤은 명준의 생일잔치에 초대받았다. 이 학교로 전학 온 지 얼마 안 된 명준이 친구들과 친해지기 위해 생일잔치를 연 것이다. 도윤은 명준이 그 아파트에 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은 지 얼마 안 된 고급 아파트. 페인트칠이 아주 깨끗하게 된 흠잡을 데 없는 그 아파트. 그 아파트에 한 번은 들어가 보고 싶었던 도윤은 하얀 봉투에 들어 있는 초대장을 받았을 때 아무도 모르게 심장이 뛰었다. 그는 초대장이 없으면 혹시 그 아파트에 들어가지 못할까 봐 아끼는 책 속에 꽂아 가방 깊숙이 밀어 넣었다.


 "너 오늘 기분 좋아 보인다?"

 "아무 일도 없는데요."

 "히죽대면서 웃지 마."

 "네."

 "가서 소주나 사와."


 그날은 아버지의 심부름도 싫지 않았다. 이번 주 토요일이면 그의 삶이 조금 더 빛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2

 그리고 토요일이 아무렇지 않게 왔다. 도윤은 명준의 생일 선물로 숨은 그림 찾기 책을 한 권 샀다. 그의 아버지가 마신 소주병을 모두 모아 판 돈으로 산 것이었다. 예상치 못한 지출이었지만, 도윤의 꿈과도 같은 곳에 들어가 볼 수만 있다면 준비물 정도는 챙길 수 있었다.

 정시에 도착한 도윤이 문을 열었을 때 미리 와 있는 친구들은 편하게 거실에서 치킨, 김밥, 과일, 탕수육을 먹고 있었다. 명준의 어머니로 보이는 사람이 부엌에 서 있었고, 명준은 소파에 앉아 친구들과 대화하고 있었다. 도윤이 집으로 들어오자 명준이 그를 알아채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고, 도윤은 어색하게 웃으며 거실에 놓인 식탁 끝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십 분 정도 지나고 대부분의 친구들이 오자 불이 꺼지고 부엌에서 촛불을 켠 2단 케이크가 생일 축하 노래에 맞춰서 거실로 들어왔다. 촛불에 비친 명준 어머니의 얼굴은 누구보다도 행복해 보였다. 명준의 앞에 케이크가 놓이고, 그는 잠깐 소원을 비는 듯하더니 촛불을 후 하고 불어 껐다. 그리고 불이 켜졌다. 도윤의 눈에는 촛불의 번쩍이는 잔상이 한동안 남아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

 명준의 생일임에도 구석 자리에 앉아 있는 도윤의 곁에 친구들이 한두 명씩 모여들었다. 이번 운동회에서 도윤이 달리기 1등을 한 덕분에 5학년 3반이 전체 1등을 했고, 그런 도윤을 친구들은 사랑했기 때문이다. 도윤을 칭찬하는 친구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그렇게 대화는 자연스레 운동회 이야기로 흘러갔다. 이야기에 끼어들지 못하는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운동회 이후에 전학 온 명준, 그리고 도윤은 그런 명준이 신경 쓰였다. 그때 명준의 어머니가 접시에 케이크를 한 조각씩 담아 내왔고, 케이크를 먹느라 이야기는 자연스레 중단되었다. 도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케이크를 다 먹자 아이들이 또 떠들기 시작했고, 명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도윤에게 자신을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의아했지만 도윤도 일어나 명준을 따라갔다. 명준이 도윤의 손을 끌고 들어간 곳은 자신의 방이었다. 도윤의 집만 한 그의 방은 눈이 부시게 정리되어 있었다. 박물관에 온 기분이었다. 그 어떤 것도 손대면 안 될 것 같았다.


 "앉아."

 "어디에?"

 "거기, 작은 의자에."


 명준이 가리킨 곳에는 작은 원형 의자가 있었다. 도윤이 그 의자에 앉아서 명준을 바라보았다.


 "네가 반에서 제일 인기 많더라."

 "그런가."

 "애들이 다 너만 찾던데? 축구할 때도 도윤이. 수학 풀 때도 도윤이."

 "아무래도... 반장이니까."

 "그래?"


 명준의 '그래?'라는 말에 왠지 날카로움이 삐져나왔고, 도윤은 애써 모른 척했다.


 "자. 이거 가져."


 명준이 도윤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도윤은 손을 뻗어 그것을 잡았다. '콘솔 게임기'였다.


 "난 많아서. 너 줄게."

 "어?"


 명준이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에는 '콘솔 게임기'가 색깔별로 들어 있었다.


 "줘도 돼?"

 "응. 아빠가 또 사주실 거야. 그 모델은 좀 질렸거든."

 

 도윤이 게임기를 만지작거렸다. 받아도 될지, 안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만약 명준이 다시 내놓으라고 한다면? 도윤을 도둑으로 몬다면? 도윤의 눈앞이 순식간에 캄캄해졌다.


 "못 받아."

 "아니. 받아. 나 정말 괜찮다니까. 선물이야."

 "네 생일이잖아."

 "너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그래."


 명준이 도윤의 손에 들린 게임기를 다시 한번 도윤 쪽으로 밀었다. 도윤이 두 손으로 게임기를 움켜쥐었다.

 

 "우리 더 친하게 지내자. 도윤아."


 명준이가 방문을 열고 나갔고, 도윤이 그를 따라갔다. 여전히 두 손에 게임기를 꼭 쥔 상태였다.


#3

 집으로 오는 길은 그 어느 때보다 길게 느껴졌다. 누가 그의 게임기를 훔쳐갈까 두려워서, 아버지가 오늘 일찍 올까 두려워서 있는 힘껏 달렸는데도 집은       아득히 멀었다. 방문을 걸어 잠근 도윤이 게임기를 켰다. 붉은 불빛이 들어오며 게임기가 소리를 내며 켜졌다. 그의 상기된 얼굴이 게임기의 화면에 비쳤다. 화살표 버튼을 이리저리 내리며 게임을 골랐다. 그리고 게임을 하나 선택한 순간 기계가 소리도 없이 꺼졌다.


 "어? 왜 이러지?"


 도윤이 다시 게임기를 켰다. 켜지지 않았다. 도윤이 게임기를 두드렸다. 켜지지 않았다. 버튼을 계속 눌러보았다. 켜지지 않았다. 온오프 버튼을 딸깍딸깍 움직였다. 켜지지 않았다. 그가 조심스럽게 게임기를 자신의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게임기는 다시 켜지지 않았다.


 "뭐야..."


 그때 방문 밖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분명 오늘도 술을 마신 것이다. 도윤이 게임기를 가방에 넣었다. 아버지가 도윤의 문을 열려고 했다.


 "이 새끼 이거 왜 문을 잠갔어?"

 "잠시만요!"


 도윤이 문을 열자 주먹이 날아와 그의 배를 가격했다. 그가 꼬꾸라져서 방바닥을 굴렀다.


 "문 잠그고 뭐 하냐?"

 "아 옷... 갈아입고 있었어요..."

 "개소리하네."


 아버지가 도윤의 옷에서 치킨 기름 냄새를 맡았다.

 

 "너 오늘 어디 갔다 왔냐?"

 "친구 집에요."

 "지 혼자만 맛있는 거 먹고."

 "아니..."

 "뭐 받아온 건 없고?"


 도윤의 키의 두 배는 되는 남자가 성큼성큼 도윤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의 가방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가방을 뒤집어 탈탈 털었다. 게임기가 떨어졌다. 바닥을 굴렀다. 바닥을 구른 게임기가 뒤집어졌을 땐 화면이 깨져있었다. 도윤이 작게 신음 소리를 내었다.


 "훔쳐왔냐?"

 "아니에요. 받은 거예요."

 "개소리하네. 이걸 누가 너한테 줘?"

 "친구가... 친구가 친해지고 싶다고."

 

 이제 한 마리 짐승으로 보이는 남자가 게임기를 집어 들었다. 게임기를 켜보는 그 짐승. 그러나 게임기는 켜지지 않았다.


 "어디서 고장 난 거를 받아 와서."


 그가 게임기를 구석으로 던졌다. 도윤의 시선이 굴러가는 게임기를 따라 굴러갔다. 그의 아버지가 문을 쾅 닫고 나갔다. 도윤이 방구석으로 굴러간 게임기를 따라 쪼그려 앉았다. 작은 손으로 방금 전까지 온전했던 게임기를 만지작거렸다. 누군가의 품을 찾듯이 작은 아이는 구석으로 점점 더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잠이 들었다.


#4

- 안녕?

- 안녕.

- 넌 이름이 뭐야?

- 나는 도윤이야. 너는?

- 나는 이름이 없어. 네가 붙여 줘야 해.

- 너 혹시 저 게임기에서 나왔어?

- 응.

- 정말이야?

- 정말이야.

- 신기하다.

- 신기한가? 당연한 거야. 네가 날 깨웠잖아.

- 그래? 어떻게?

- 잘은 모르지만 날 깨우는 방법이 있나 봐. 알려지진 않았지만.

- 그렇구나.

- 그래서 내 이름은?

- 온이 어때?

- 온이?

- 켜질 때 온 버튼을 누르잖아.

- 좋아. 온이.

- 온아 근데 여기 꿈이야?

- 꿈 아냐.


#5

 그날 이후 도윤은 매일같이 게임기를 품에 넣고 다녔다. 깨진 게임기지만 그 게임기에는 온이가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온이는 가끔 캡모자를 쓰고 후드티와 반바지를 입은 채로 게임기에 나타나고는 했다. 도윤은 목소리로, 온이는 문자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그와의 대화는 남들에게 절대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다.


 - 도윤아 오늘 하루는 어땠어?

 - 나쁘지 않았어. 급식에 고기완자가 나왔거든. 맛있더라.

 - 맛있었겠다.

 - 온아 너는 어땠어?

 - 나도 좋았어. 다른 게임 세상에 다녀왔거든.

 - 다른 게임 세상?

 - 응 친구들이 있는 세상이 있어.

 - 우와.

 - 너도 이쪽으로 오면 볼 수 있을 텐데.

 - 내가 어떻게 가?

 - 올 수 있는 방법이 있어.

 - 정말?

 - 응. 다들 너를 기다려.


 온이는 밤마다 도윤을 지켜주었다. 도윤의 슬픔을 아는 이는 온이밖에 없었다. 도윤은 매일 밤늦게까지 온이와 대화하며 잠들었다. 학교에서 명준은 도윤에게 게임기를 잘 가지고 놀고 있냐고 물었다. 도윤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도윤은 알고 있었다. 명준은 온이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을. 그리고 발견할 일 같은 것도 없었을 것이라는 것을. 도윤에게 게임기를 준 후 명준은 도윤에 대한 흥미를 잃은 듯 보였다. 친구들은 벌써 다음 학기 반장으로 명준을 꼽고 있었다. 체육 시간에 명준이 달리기를 하는 모습을 본 친구들 사이에서는 가을 운동회에서는 명준이 대표로 달리기 대회를 나가는 게 좋겠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었다.

 

 - 그런 게 중요한 거야?

 - 나한테는 그것밖에 없으니까.

 - 그렇구나.

 - 애들이 이제 나를 싫어하는 걸까?

 - 내가 있잖아. 도윤아.

 - 너는... 멀어.

 - 아니야. 가까워.

 - 멀어...


 갑자기 화면에서 온이가 사라졌고, 도윤은 실망한 듯 게임기를 몇 번 흔들다가 주머니에 넣었다. 하늘을 보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도 집에 가면 아버지가 있을 것이고, 반복되는 밤이 찾아올 것이고, 그는 구석에서 또 잠들 것이었다. 오늘따라 그 모든 것이 크게 느껴졌다. 분명 명준을 만나기 전에는, 온이를 만나기 전에는 전부 다 버틸 수 있는 것들이었다. 도윤은 갑자기 그들이 원망스러워졌다. 문을 잠그고 또 잠이 들었다. 아버지가 오기 전에 잠들어야 했다.


 - 도윤아

 - ...

 - 도윤아?

 - ...

 - 도윤아 나 온이

 - ...

 - 일어나 봐.

 - 싫어.

 - 일어나 봐. 얼른.

 - 싫어.

 - 도윤아. 나랑 같이 가자.

 - 어디로...

 - 더 좋은 곳으로.

 - 네가 있는 곳으로?

 - 응.

 - 사람도 갈 수 있어?

 -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 정말이야?

 - 여기는 주정뱅이 아버지도 없고, 너를 짓누르는 것들도 없어.

 - 없어?

 - 없어. 나하고 네 친구들만 있을 거야.

 - ...

 - 어떻게 할래?

 - 다시 돌아오고 싶으면?

 - 그럴 일 없을 거야.

 - ...

 - 행복한 곳이야. 저곳은. 나를 보면 알잖아.

 - 그래도...

 - 그래. 네 선택이야. 난 기다릴게. 여기서.

 - 응.



#6

 도윤이 덮고 있던 이불이 풀썩 꺼졌다.

 다음 날 아침 도윤의 아버지가 문을 부수듯이 열었을 때 방 안에는 고요함만이 감돌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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