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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사랑하는 법을 알았던 거다

by 이다한 Mar 26. 2025

그래서 편견도 서열도 없었던 거다. 그러다가 된통 당한 거지. 어느 정도의 편견과 서열은 고려를 했어야 했는데. 대가리가 꽃밭이라.

자기 자신을 제대로 사랑해야 남을 사랑할 수 있다는 말, 그건 진리다.

내가 나를 사랑해야, 남과의 질투나 비교 그에 따른 피해의식과 열등감이 없거든.

그러니 남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거다. 있는 그대로.

나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자만이 남도 받아들일 수 있는 거다.


근데 이게 굉장히 이상적인 생각이라는 걸 알았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면 뭐하나? 남들은 이미 나를 재단하고 있는데.

나는 아가든 노인이든, 여자든 남자든,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상관없다. 나는 어떤 껍데기로도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심지어 아가와 노인은 나였고, 나일 존재들이기 때문에. 결국 모든 게 나인데. 내가 나를 사랑하면, 어찌 내가 남을 싫어할 수 있겠냐고. 겉 껍데기로만. 감히.

물론 사람을 보는 기준은 더 뚜렷하긴 하다. 겉 껍데기로만 사람을 보지 않기 때문에 그 외의 기준이 엄청 날 서 있기 때문.

근데 남들은 나를 겉 껍데기로만 재단하고 판단하고 있더라고. 이렇게 기준이 하나 더 추가 됨. 겉 껍데기로'만' 보는 사람들도 조심해야겠다.

그리고 나도 겉 껍데기를 챙길 필요가 있겠다.


생각해보면 나와 어긋났던 사람들, 그 결정적인 순간들은 전부 내가 생각하는 나, 내가 아껴주는 나를 제때 해석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예를 들면 내게 '여리다'고 평가했던 사람. 나는 내가 여린 걸 알고 있다. 그런데 보통 그게 타인에게 불편함을 주기 때문에 그걸 숨기고 씩씩하게 살았던 건데, 그걸 '이제야' 알아봐줬다는 게 김이 빠지더라. 6~7년은 안 사이였는데. 그제야.

또 "너는 다 '같이'하고 싶어하잖아." 하면서 내가 모르는 나를 알려주겠다는 식으로 얘기했던 사람. 그걸 내가 몰랐을 것 같나? 얘는 내게 "철학적이네?" 하고 얘기 했던 앤데, 얘도 6~7년은 안 사이였는데 이제야. 그리고 이게 뭐 대단한 사실이라고 이제야. 말하면서 '너 자신을 알라' 이런 느낌으로 얘기하는게 어이가 없는거다. 그리고 뭐 대단한 거 고백하듯이 나에 대해 본인이 가졌던 생각을 다 얘기하는데, 난 이미 알고 있었던 거다. 난 그래서 이들과 관계를 끊었다. 그 말을 해서가 아니라, 이제야(가장 힘들어서 제일 약해진 그 때 이때다 싶어서) 그걸 말했다는 사실에 경악스러워서. 그러니까 그동안 나만 이들을 이해하고 내가 전달 됐다고 생각하고 나만 그 다음 스텝으로 가려고 한 거였구나.. 싶어서.


그러니까 쟤네들 다 남에 대한 애정도 없고 관심도 없고 자기 안에 갇혀서 이기적으로 살던 애들이었다고. 무언가를 사랑하면 성공할 수밖에 없는 게 그 몰입도가 달라서인 것 같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런데 아쉽게도 여기에 지능이 작용하긴 한다. 지능이 높아야 더 깊숙하게 갈 수 있다. 그리고 현실적인 조건도 물론 중요하지, 돈이나 방법 같은 것들. 무언가를 열심히 사랑할 수 있고, 지능도 높아서 예상도달치도 높은데, 방법을 모르고 돈이 없다면 사실 가다가 추락하는 거지. 그게 나였고. 그래서 덕업일치가 사실 노동자로서 최고의 삶이긴 함.. 근데 나는 좋아하는 게 일이 됐을 때 성과를 꼭 내야만 한다는 게 너무 아프더라고.. 그래서 현실적으로 도움 되는 직업을 택했지 머.. 근데 이건 너무 극단이라.. 좀 손을 봐야겠음..


인형들. 저들과의 관계가 끊어진 건, 나를 위해서 정말 좋은 일이었다. 남들 대상화만 하고 본인들은 관객인. 얘넨 또 주변에 그런 사람들밖에 없어. 본인 스스로에 대한 관심이 없고 본인 스스로에 대한 탐구를 하지 않고, 그냥 무더기 속에서 사는 거야. 그러니 자기 얘기하는 거 싫어하고, 남을 못 믿어. 맨날 남 얘기만 하고 대화가 겉돌아. 근데 동물적인 눈치랑 본능은 있어서 사회생활은 또 잘 해. 알맹이 없이 그냥 사회생활만 잘해. 진짜 관계 유지를 위해서는 자아탐구의 정도가 맞아야 된다는 생각을 제대로 했다. 자기가 스스로에 대해 해석하고 스스로의 길을 찾고. 실행하지 않더라도, 현실에 드러나지 않더라도 그 생각의 크기. 사고력. 그리고 나는 이들을 사랑했다는 것도. 바보같이. 기대했던 거다. 자기 사고를 하고 있겠거니. 


그러니까 내가 인형들이랑 안 맞는다고 했던 거, 그 인형들. 사고를 안 하는 사람들이었던 거야. 바보같이, 그런 사람들을 거르는 방법을 몰랐던 거야. 대가리가 꽃밭이라. 그래도 모든 사람들에겐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그런 사람들이 잘하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바로 '생존'. 저들이 바로 배부른 돼지다. 좋은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난 그런 삶으로 사는 게 안 되는 사람이다, 고달프게도. 배부른 소크라테스가 되려고 평생을 노력해야지 어쩌겠어.


근데 나는 나고, 남은 남이었다. 남은 모르는 게 맞다. 사랑할 수는 있는데, 기대를 하면 안되는 거였다. 나는 됐는데, 남은 안 되더라. 나는 안 됐는데, 남은 되고. 이러니 비교가 자연스레 되고, 급을 나누고, 편견을 갖게 되는 것 같다. 특히나 나는 나였던 것, 내가 생각해본 것, 그런 것들을 사랑했던 것 같은데, 그러면 더욱 내가 내게 했던 기대를 투영하면서도 얘는 어떻게 다르게 할까 그 차이와 고유함을 기대했는데, 그게 느껴져서 상대가 더 힘들어했던 것 같다. 그게 안 되는데 어쩌나. 그리고 나도 깨달았지, 아 안 되는 사람이 있구나.. 이건 사실 애들 가르치는 알바를 하면서도 많이 느꼈다. 똑같은 말을 해도, 해석하는 거 자체가 다름. 진짜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남한테 전달할 수 있는 에너지의 크기는 '방향 제시해 주고, 방법 제안해 주는 것' 거기까지다. 진짜 참고용. 끝까지 책임지고, 도착점까지 지도하고 이건 내 영역이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았다. 그래서 그런 걸 잘하는 교육자들이 귀한 거고. 끝까지 그래도 지켜봐주고 싶다면, 해줄 수 있는 건 '응원'이더라. '현실적인 지지대'까지 있으면 금상첨화고. 그런데 그런 것까지 투자할 정도면 그건 가족이지. 가족이 아닌 그러니까 경제적으로 묶이지 않은 사이에서는 방향제시, 방법제안, 응원. 이게 최선이더라. 


어차피 자기 삶은 결국 자기가 찾고 자기가 만들어야 됨. 창의성은 꼭 예술을 하지 않아도,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너무너무 필요한 소양이다. 창의성은 꼭 새로운 것만 만들어내는 게 아니다. 그냥 자기 인생을 기준으로 두고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걸 하면 그게 창조다. 세상에는 이미 나온 거일 수 있겠지만, 혹은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을 아이디어일 수 있겠지만, 본인 인생을 기준으로 두면 결국 새로운 거잖아. 안 해본 걸 하면서 사는 것. 자기 인생을 창의적으로 사는 것. 그 능력. 그걸 한국 교육은 다 망쳐놨다. 그러니 사람들이 이렇게 되지. 스스로 생각할 줄 모르잖아. 자기 인생에 대해서. 그러니 무당을 찾아가지. 인생엔 답이 없는데. 자기 하기 나름임. 근데 운은 있음. 개인적으로 자신의 사주는 공부할 만하다고 생각하는데, 이게 또 제대로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하면 왜곡되기 때문에 추천하진 않겠다.


결국 '나'를 사랑하라는 것. 내가 겪은 과정을 기록하자면,

1. 나의 구석구석을 사랑하다보면 결국 나도 남도 다 똑같구나, 다 똑같은 인간이구나 하는 '무아'의 상태가 된다.

2. 타인과의 경계선이 흐려져서 이 세상 저 세상 모험하다가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3. '나'는 '나'고, '남'은 '남'이구나를 직시하게 된다.

4. 타인과의 경계 속에서 '나'의 세계를 확인하게 된다. 나는 개싸이코더라. 어릴 땐 웃긴 또라이롤이었던 것 같은데, 이젠 걍 싸이코임. 그래서 지위가 필요함. 유해하지 않다는 인증이 필요함. 무해한 싸이코입니다..

5. 이제 그 세계를 즐기면 된다. 모험했던 경험들을 살려서. 그런데 즐기고 열심히하는 모습을 함부로 드러내면 안 되더라. 그러면 타인이 경쟁의식을 가짐. 질투하고 공격함. 겉으로는 포커페이스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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