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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서태지 12 - 존재의 절망

108 서태지의 고독과 비탄-Take 3, Zero

by 지현

코마 - #존재의 고독 #절망, #우울

연관된 노래- 영원, 슬픈 아픔, Take 3, ㄱ나니, Zero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서태지 '8집'으로 서태지의 음악을 정리하고 분석한다'는 얼토당토않은 기획이 무리라는 심정이 들 때가 이런 때다. 서태지는 사실 '존재의 밑바닥을 치는 우울함은 경험해 본 적은 없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조용하지만 알고 보면 슬픈 사람은 아니다. 장난도 잘 치고 아재개그는 선수급인 데다 웃기는 그림도 잘 그린다. 데뷔 20주년을 맞아 커피 이벤트(아이들 시절 92년에 한 잡지사의 인터뷰 속 '20년 후 팬을 만난다면?' 질문에 '커피 산다'라고 쓴 것을 잊지 않고, 2012년 팬들이 이곳저곳에서 커피를 공짜로 마실 수 있게 했던 이벤트)를 맞아 20년의 타임라인을 자신이 그린 만화로 채우고 킬킬거리는 것이 우리의 서태지다.

서태지의 20주년 자축 그림, 팬들을 상징하는 버팔로와 서태지 닷컴 마스터가 보인다.
서태지의 자화상. 일러스트레이션이 자신의 솜씨라고 말하는 '내가 다 그렸어~'


하지만 댄스가수 '오빠~~!'시절을 가뿐하게 졸업한 3집부터 청순한 미모의 서태지는 한켠에 슬픔을 그림자를 가지고 있었고 앨범마다 그런 계열의 음악을 한곡 이상씩 넣어 왔다. 영원(3집)에서는 '내가 지금 여기 없어도 슬퍼하지' 말라는 죽음의 이야기를 거의 성스럽게 풀어냈고 슬픈 아픔(4집)에서는 '떠나가버린 많은 사람들과 비참히 찢겨 버린 나의 외로움'을 노래하고 심지어 '가야 하겠어 나의 세상으로 이 슬픈 아픔들이 다 날아갈 수가 있게'라고 외쳤다. 얼굴 없이 곡만 쏘아 보낸 5집에 있는 Take 3는 가사도 제대로 안 들리는 어두운 톤의 메탈에 '난 이 어둠 속에 깨어 있어'라고 낮게 샤우팅한다. 2014년의 콰이어트 나이트 콘서트까지 한 번도 육성으로 부른 적이 없던 이 Take 3는 거의 항상 팬들의 신청곡 목록 첫번째를 차지했지만 부르는 걸 보는 게 너무 힘들까 봐 듣고 싶으면서도 두려웠다. 은퇴 이후 그가 느끼던 고독과 외로움을 목격하게 될 것 같아서였다.


서태지는 혼자 있으면 고독과 절망을 느낄 거라고 팬들이 생각하게 된 것은 역시 그 아픈 기억 때문이다. 1996년 1월 서태지와 아이들의 은퇴가 준 충격은 메가톤급이었고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 젊은 나이에 은퇴를 할까 하는 뒤늦은 깨달음, 우리의 스타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생사도 모르고 어디서 뭘 하는지 알 수 없는 그가 너무 괴롭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과 걱정으로 팬들은 오랫동안 힘들어했다. 나도 또한 그 시기에 서태지에 대한 꿈을 꾸면 주로 악몽이었고 외딴 곳에서 절망하는 그를 자주 떠올렸기에 그를 보지 못하고 듣는 '난 어둠 속에 깨어있어, 죽기를 바라는 것처럼 너를 일으켜, 이제 검은 흙이 나를 뒤덮고 그것은 고통의 무게로 날 짓누른다'는 Take 3의 가사는 고통스러웠다.


한국에 돌아와서 활동을 시작한 6집에도 아동학대를 암시하는 가공할 만한 뮤직비디오와 공포의 퍼포먼스가 어우러진 ㄱ나니가 있었고 7집에는 '엄마 나는 왜 이 세상에 있는 걸까' '모두가 가식뿐, 더 이상 이 길엔 희망은 없는가' 묻는 제로가 있었다. 제로 ZERO는 7집의 전국 투어 제목이기도 했는데 항상 이 음악으로 앙코르송을 해 끝내 팬들이 울면서 콘서트장'을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는 8집에는 코마가 있다. 코마는 2008년 한 방화범에 의해 화재로 소실된 숭례문을 모티브로 하여 사람들의 무력함과 망각에 대해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이 공식적인 곡의 소개였다. 보도자료에는 기억을 상실해 가는 현대 문명에 대한 노래로 소개되었고 국보를 잃고 상심한 마음, 무력함이 느껴졌다. ‘높게 올려 쌓은 담/ 이 단절 속의 난/나의 꿈에 거짓을 고한 이후/그 향긋했던 약속의 이 도피처로 돌아온 나는/단 하루도 편히 잠들지 못했는걸’이라는 가사로 봤을 때 화자가 서태지 자신이며 외로운 자신의 모습을 가사에 투영되었다고 다들 생각했고 '아, 8집에는 이 곡인가' 하면서 절망 시리즈는 연장되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코마는 그 해 5월 29일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일과 떨어뜨려 놓고 이야기 할 수가 없다. 나는 외국에 사는지라, 마음이 정말 너무나 괴로운데 아무것도 못하겠고 얘기할 사람도 없고 갈 데도 없어 차 속에 앉아 코마만 주야장천 들었던 기억이 있다. 참람한 마음으로 밤마다 눈시울을 적시고 뉴스조차 클릭하지 못했던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평소라면 워낙 조용한 그라 상관없었을 텐데 2009년은 그의 활동기여서 팬들은 좀 혼란스러웠다. 자기의 의견을 음악 외에 다른 통로로는 절대 피력하지 않는 서태지. 어떤 팬들은 그를 사랑해서 그의 침묵과 소통부재(?)의 상황에서 혼자 앓기도 했다. 시국에 관한 코멘트를 할 책임은 그에게 전혀 없지만 나는 혼자 중얼거리기도 했다. ‘아마 태지도 나와 똑같을 거야, 그래, 나랑 똑같을 거야’. 높은 담벼락 밑에서 혼자 무릎을 세우고 우는 것 같았다.


결국은 태지도 반응을 했다. 2009년 뫼비우스 전국 투어 앙코르에서 코마를 부르기 전에 그가 코멘트를 한 것이다. "이 노래를 듣고 마음에 위로를 받길 바라고 희망을 잃지 말자고요. 그리고 고개를 들어서 세상을 똑바로 보자구요." 짧은 말이었지만 콘서트에서는 거의 우스개 소리만 하는 그가 유일무이하게 한 진지하고 긴 말이었다. 나중에 발매된 콘서트 블루레이에도 이 멘트는 고스란히 살아 있다. 이심전심. 그가 5월의 일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게 팬들에게는 분명했고 나를 포함한 사람들에게 이 노래는 다시 큰 위로가 되었다. 결국 코마는 서태지의 초기 창작 의도와 상관없이 시대가 날줄이 되고 팬들의 반응이 씨줄이 되어 다시 짜내려 간 곡이 된 것이다. 시대유감이 그런 류 첫째 곡이었다면 오랜만에 그걸 이었달까. 곡이 발표되고 시간이 지나 박제가 되어가는 것보다 현실과 부딪혀 의미를 얻어가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10집을 발표하지 않고 있는 서태지에게 어쩌면 코마는 소위 '존재의 절망' 시리즈의 마지막 노래인지도 모른다. (9집 콰이어트 나이트에는 그렇게 줄을 세울 수 있는 곡이 없다. 성탄절의 기적이 조용한 노래이기는 하지만 절망으로 분류되는 노래는 절대 아니다) 코멘트에서는 희망을 잃지 말자고 했지만 사실 나중에 발표된 코마 뮤직비디오에는 스러져 가는 불행한 사람들만이 화면을 채우고 있고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실은 인간은 절망과 불행의 깊은 바닥에 닿으면 역설적으로 희망을 얘기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TAKE 3에서 들을 수 있듯 주위에는 절망밖에 없지만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죽기를 바라는 것처럼 너를 일으'키는 수밖에는 사실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다.


아토모스 앨범의 또 하나의 비밀과 코마가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로 마쳐야겠다. 2008년 서태지 8집 컴백 전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8집에 들어갈 곡이 11곡이라며 사전 판매를 했었다. 그러나 거의 1년이 지나 비로소 발표된 정규앨범에는 리믹스 포함 12곡이 들어있었다. 추가된 마지막 곡이 코마 어쿠스틱일 거라고 나는 지금도 확신한다. 마지막 트랙에 실려있다는 이유가 크지만 가끔 존재의 절망을 느끼며 외로와 하는 모두에게 주는 위로의 주는 선물이 완성판이 바로, 본 곡과 어쿠스틱을 아울러서, 서태지의 코마인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지금도 그렇다.


seotaiji coma.PNG

서태지 코마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오랜 시간이 지나가버렸지

어떻게 난 아무런 기억들이 나지 않는 걸까

수 많던 저 인파들 속에서 본 적 없는

저 낯선 풍경이 나를 노려 보네

높게 올려 쌓은 담 이 단절 속의

난 나의 꿈에 거짓을 고한 이후

그 향긋했던 약속의 이 도피처로 돌아온 나는

단 하루도 편히 잠들지 못했는걸

그 누구도 I Can't Keep Going

아무튼 난 저 인파에

저 인파 속에 난 어째서

다시 상처를 입을까

You See The Lie? 눈을 감은채

무리 속을 다'홀로 걷고 있어


무력함 저 TV가 내게 약속할 때

어차피 난 아무런 말도 못 한 채 그저 웃지

높게 올려 쌓은 담 이 단절 속의

난 나의 꿈에 거짓을 고한 이후

그 향긋했던 약속의 이 도피처로 돌아온 나는

단 하루도 편히 잠들지 못했는걸


https://youtu.be/mku9KIr6wN4?si=w5_o7B7cUB5CBof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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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서태지-서태지는 왜 10집을 내지 않는가


1부: 서태지의 음악

102: 서태지의 자연사랑과 방랑벽 - 프리스타일, 모아이, 숲속의 파이터

103: 서태지의 반항과 비판의식 - 교실이데아, 틱탁, 시대유감

104: 서태지의 고유성, 지키기 위한 싸움 - 레플리카, 수시아

105: 서태지의 플라토닉 러브 - 줄리엣, 10월 4일, 영원

106: 서태지의 이성애적 사랑 - 버뮤다[트라이앵글]

107: 서태지의 본업, 기계취미 - 휴먼드림, 로보트

108: 서태지의 절망, 고독, 비탄 - 코마, Take 3, Zero


2부: 서태지 이야기

201: 그가 이룬 것은...

202: 지극히 사적인,

203: 페미니스트 서태지

204: 세계속의 서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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