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 서태지의 본업, 기계취미 - 휴먼드림, 로보트
휴먼드림 - 기계 취미, RC, 아마도 그의 본업
연관된 노래-로보트 (7집))
분홍색과 은색의 메탈느낌 쫄쫄이 옷을 입은 댄서들. 하얀 셔츠 안에 분홍 이너를 입은 서태지가 같이 로보트의 동작을 하며 노래를 부른다. 무대는 온통 사방이 핑크핑크한 가상공간. 일반인이 생각할 수 있는 서태지와 가장 거리가 먼 이미지가 휴먼드림의 이미지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기계음이 잔뜩 들어가고 게임을 연상하게 하는 간단한 비트가 가득 차 있으나 드럼은 또 더 이상 세밀할 수 없을 정도로 자잘하게 쪼개진 휴먼드림은 참으로 스페셜해 8집의 콘서트 뫼비우스 외에서는 불려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는 쫄핑맨이라고 불린 댄서들을 계속 활용하며 이 콘셉트로 방송활동을 했고 거의 블록버스터 급의 스케일을 자랑하는 뮤직비디오까지 만들었으니 애정이 대단했다 할 것이다.
한 부부가 자신들의 정보를 이용해 어린이 로보트를 주문 제작해 입양해 사랑해 주다가 자신들의 친아이가 태어나며 로보트 아이와 데면데면해진다는 것이 뮤직비디오의 줄거리이다. 진짜 간략하게 말한 건데 그도 그럴 것이 뮤직비디오가 10분이 넘는 대작이라 짧게 줄이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서태지는 이 뮤비에 직접 출연하면서 로보트 아이와 같은 손에 난 상처를 흘긋 보여줌으로써 이 로봇 아이의 장성한 모습이 자기라는 힌트를 흘리고 있다. 그리고 최대로 기계적인 안무로 춤을 추며 자기가 로보트인지 휴먼인지 시청자가 헷갈리게 만들고 있다.
https://youtu.be/brVfHQjorT8?si=KEivcrYYi8k7N_1q
그래, 그의 의도는 통했고 이 긴 뮤비에 숨어 있는 상징들, 서태지 본인의 역할은 무엇인지 등등 퍼즐을 맞추는 것은 장년의 나에게 너무 어렵우리 서태지는 왜 이런 콘셉트의 노래를 했고 서태지에게 휴먼드림은 무슨 의미인지 말해보고자 한다.
Nobody Feel me now
난 Mechanic Super Style
남몰래 새기던 이 아픈 기억
Byte 10 Billion
Nobody Save me now
널 닮은 눈물로 밤새워 푼 계산이
내겐 또 뿌찢 뿌찢 뿌찢
이런 맙소사 Breedy
...
Human feel me Human Dream
기막힌 방법으로 Human feel
너의 뇌 속에서 나를 느끼렴
(서태지 8집 휴먼 드림 가사 일부)
서태지는 알다시피 북공고를 중퇴한 속칭 '공돌이' 출신이고 취미는 알씨 RC 조립이며 장래희망은 장난감가게 주인이라는 사실은 팬들 사이에서는 상식이었다. 시나위 시절에도 베이스 주자로서, 박자는 기가 막히게 맞추지만 감수성은 엉망이라는 '칼박똥필'이라는 평가를 주위로부터 받았다. 아이들 시절에도 앨범활동만 끝나면 조립식 비행기를 조립하고 날려보냈고, 은퇴를 해도 RC를 할 거기 때문에 늙는 것이 두렵지 않다는 말을 한 적도 있다. 'nobody feel me now'이고 '메카닉 슈퍼스타일'이었던 서태지는 기계를 만지고 싶어 아주 초기부터 8비트 컴퓨터를 건드려 보았고 미디 MIDI를 접하고선 샘플링 기법을 동원해 '난 알아요'를 만들어 본, 음악가라기보다는 엔지니어 워너비였다. 거기다 그는 80년대 소년잡지 감수성도 가지고 있는데 그가 어릴 때 아마 읽었을 걸로 짐작되는 소년중앙, 어깨동무, 새소년 등의 잡지에는 단골처럼 미래의 로봇사회, 모아이를 비롯한 세계의 7대 불가사의 등이 인기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그때의 어린이들(아마 나도)은 그런 잡지를 보며 언젠가는 가봐야지, 언젠가는 로보트와 함께 살게 되겠지 하며 꿈과 희망(?)을 키워 왔었으니 테크놀로지를 소재로 한 이런 노래가 그의 디스코 그래피에 포함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다 할 것이다.
하지만 휴먼드림의 화자는 휴먼의 꿈을 꾼다. 'Human feel me Human dream' 더 이상 기계로만 정의되지 않는다. 뮤직비디오에서도 나타나듯이 이 로봇 소년은 부모의 사랑을 받으려 인간이 되고자 한다. 잠깐. 이런 노래는 또 있었다. 7집(2004)수록곡 로보트Robot에서 그는 사람냄새가 없는 자신의 인생을 가지고 놀다 망가진 로보트에 비유한 바 있다.
매년 내 방문 기둥에 엄마와 내가 둘이서
내 키를 체크하지 않게 될 그 무렵부터
나의 키와 내 모든 사고가
멈춰버린 건 아닐까
난 아직 사람의 걸음마를 사랑하는 건
잃어버린 내 과거의 콤플렉스인가
오늘도 내 어릴 적 나의 전부이던
작은 로봇을 안고서 울고 있어
더 이상 내겐 사람 냄새가 없어
만취된 폐인의 남은 바람만이
(서태지 7집 로보트 가사 일부)
'어릴 적 나의 전부이던 작은 로봇을 안고서 울고' 있는 서태지는 휴먼드림에서 인간의 꿈을 꾸며 '사람냄새'를 원하는 주인공과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기계를 좋아하던 '로보트' 서태지가 음악활동을 하면서 수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고 인간사를 알게 되었다는 것을, 사람으로 살고 싶은 로보트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그의 기계적 취미는 8집에서 전면적으로, 음악양식으로도 드러난다. 나는 8집이 서태지로서는 자신의 음악을 집대성한 대작업이었다고 여러 번 말한 바 있다. 그것은 8곡 각각이 그의 대표적인 8가지 성향을 나타낸다고 열심히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박자를 가루가 되도록 잘게 쪼개는 네이처파운드라는 양식 실험을 끝까지 밀어붙이고 전부 일렉으로 된 리믹스를 8집 안에 포함하는 등 기계적인 요소를 최대로 사용하지만 겉으로는 네이처, 즉 자연을 닮게 하는 궁극의 음학音學정진이 달성된 앨범이 8집이기 때문이다. 밴드 악기로 연주한 '인간적' 모아이와 일렉으로만 된 '기계' 모아이 리믹스가 주는 정취가 그리 다르지 않게 들리는 경험을 해보시라.
그렇다면 억측이라도 이렇게 말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서태지 음악의 진화, 뿅뿅거리는 1집의 8비트 음악에서 8집의 네이처 파운드까지의 스물 몇 해의 여정이, 어쩌면 기계가 사랑을 경험하며 인간성을 가지게 되는 휴먼드림에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고. 그래서 내추럴본 '공돌이' 서태지의 음악여정의 축소판이 휴먼드림이라고.
사족: 서태지는 RC가 본업이고 음악이 취미라고 말한 적도 있을 정도로 RC매니아다.그가 몰두할 수 있는게 음악이었을 때 우리는 운좋게 그것을 만났지만 그가 지금 알씨라는 본업으로 돌아갔더라도 원망은 언감생심이다. 일찍 스타가 된 사람으로서 취약할 수 있는 그의 정신건강을 책임지는 취미가 있다는 것이 그냥 고마울 뿐.
아무튼 서태지-서태지는 왜 10집을 내지 않는가
1부: 서태지의 음악
102: 서태지의 자연사랑과 방랑벽 - 프리스타일, 모아이, 숲속의 파이터
103: 서태지의 반항과 비판의식 - 교실이데아, 틱탁, 시대유감
104: 서태지의 고유성, 지키기 위한 싸움 - 레플리카, 수시아
105: 서태지의 플라토닉 러브 - 줄리엣, 10월 4일, 영원
106: 서태지의 이성애적 사랑 - 버뮤다[트라이앵글]
107: 서태지의 본업, 기계취미 - 휴먼드림, 로보트
2부: 서태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