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한 아이가 블록을 조립하다 원하는 모양대로 안 끼워졌는지 바닥에 냅다 던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얼굴 표정을 보니 씩씩거리며 화가 나 있었고 눈가에 눈물도 조금 그렁그렁해 보였습니다. 처음부터 포기했던 건 아녔을 텐데 그 잠깐의 인내와 노력이 필요한 시간은 아이들에게도 쉽지 않은 시간인 건 맞는 것 같습니다.
조심스레 다가가 왜 화가 났는지를 묻자 울먹이며 이유를 말하는 아이였습니다. 그리곤 잠시 생각해 봤습니다. 여기서 어른인 제가 바로 도와줄 수도 "이렇게 다시 해볼까?"라며 방법을 일러줄 수 있었겠지만 그보다 더 나은 대안은 없을까 싶었습니다. 순간 떠오른 제 해답은 아이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해 주기였습니다.
아이들은 성장하며 수많은 감정을 겪고 알아가며 구분하기 시작합니다. 그중에서 부정적 감정 중 좌절의 기분을 겪을 때 가장 힘들어하는데 이를 그대로 수용해 주자고 판단했습니다. "그랬구나, 잘 안 끼워져서 속상했겠어. 원하는 대로 잘 안 끼워지면 화가 나기도 해."라며 마치 제가 속상하듯 한 마디 한 마디 건넸습니다.
가끔은 제 어릴 적 이야기도 해줄 때 있는데 그 순간 아이들의 눈은 동그랗게 귀는 쫑긋하며 들을 때가 있습니다. '선생님도 그랬다고요?'이런 뉘앙스의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죠. 이렇듯 어쩌면 아이들은 어른의 해결과 최선의 방법보단 '선생님도 내 마음을 이해해주고 있구나'싶은 공감이 먼저가 아닐까 싶습니다.
공감을 해줬을 뿐인데 울먹이던 아이는 갑자기 닭똥 같은 눈물을 몇 방울 떨어트립니다. 곁으로 다가가 가볍게 포옹을 해주니 폭 안기던 아이 그리곤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습니다.(모든 아이들이 그런 건 아니고 감정이 좀 섬세한 아이들이 이런 반응을 보일 때가 종종 있습니다^^)
울음이 좀 진정되었을 때 아이에게 제안을 하나 해줬습니다. "OO아, 우리 OO가 OO에게 이야기 한 번 해볼래?" 뭘 하라는 건지 처음엔 이해 못 했던 아이가 천천히 제 말을 따라 말합니다.
"OO아, 많이 속상했지? 그래도 괜찮아."
"잘 될 때도 있고 잘 안 될 때도 있는 거야."
"그래도 나는 네가 좋아."라고 말이죠.
아이는 가만히 듣더니 따라서 말을 했습니다. 여전히 울고는 있는데 내가 나에게 아이가 아이 자신에게 해주는 이 말들이 뭔가의 공감 섞인 위로가 되었는지 이제는 혼잣말처럼 말하는 것였습니다.
아이 왈, "OO아 그래도 괜찮아, 나는 네가 좋아."라고 몇 번을 말이죠.
어쩌면 아이는 어른의 위로보다 내가 나에게 주는 위로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방법은 오로지 내가 직접 표현해 줬을 때 더 빛이 나고 단단해지는 법이니까요.
아이는 그 이후로도 여러 번 반복해 말하더니 이내 눈물을 닦고 다른 놀이를 하러 달려갔습니다. 그리곤 며칠 뒤 또 씨름하며 놀이하는 중에 이번엔 꽤 시간이 걸리는 듯했지만 원하는 걸 얻어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인형 옷을 입히고 있었는데 끝까지 다 입혀 마지막에 찍찍이를 붙이고 제게 보이는 그 미소란! 그렇게 기특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 하루는 색종이로 딱지를 접어 딱지치기를 하려는데 바닥에 있던 딱지가 잘 뒤집히지 않았습니다. 여러 번 시도해 봐도 왜 뒤집히지 않는지 사실 어른도 하기 힘들어 답답해할 때 많은데 아이 역시 비슷한 감정을 겪는 상황였습니다. 이번엔 "나 안 해."라고 포기하려 할 때 우리는 지난번의 대화를 떠올리며 함께 이야길 나눴습니다.
속상했고 잘 안 될 때도 있다는 걸 대화하며 자신의 마음을 토닥습니다. 그리고 그래도 괜찮다며, 딱지 잘 못 치는 나도 좋다며 가볍게 웃음을 보이자 아이는 금세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그러더니 제게 건네는 말, "포기하지 않아, 다음에 다시 해볼래."라고 말이죠.
아이는 순간의 상황을 포기하기보다 한 템포 쉬어가는 법을 배우는 것 같았습니다. 때론 원하는 결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기에,다음에 해보면 혹 이뤄질 수도 있음을 바라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 같았습니다.
제가 가르쳐주고팠던 건 사실 이것였던 것 같습니다.
좌절했지만 '좌절의 감정을 견디는 힘', 부정적 감정이 들었지만 그 감정이 결코 어둡지만은 않다는 걸 말이죠. 그 감정 속에서 충분히 자신을 다독일 줄도 알고 그러면서 또다시 일어서려는 태도야말로 아이에게 진정으로 필요했던 건 아녔을까요? 타인의 격려와 응원보다도 스스로에게 충분히 건넬 수 있는 포옹과 인정하는 마음을요.
어른 역시 무언가 '작심삼일만 하자' 하는 것도 참 어렵게 느껴질 때 많은데 우리 아이들 또한 비슷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쉽게 포기하려는 습관보다 '그럼에도'라는 마인드, 내가 나를 사랑할 줄 알고 '또 한 번 더 해 보자'라는 마음의 울림이 어릴 적부터 시작된다면 훗날 아이의 인생은 지금보단 꽤 단단해져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