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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가특별한교육 May 24. 2023

제대로 된 지원에 초점을 맞춘 기초학력 정책

특집

  기초학력보장법 제정(′21.8)과 제1차 기초학력 보장 종합계획(′22.10) 발표에 따른 후속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 체감되는 변화는 그리 많지 않다. 기초학력 진단 평가는 그 이전부터 많은 학교들에서 시행되고 있었고, 기초학력 보장을 위한 다중지원팀이나 두드림학교 운영도 예전부터 추진되던 정책들이다. 


  하나의 변화라고 한다면 ‘학습지원대상 지원협의회’가 구성되어, 기초학력 진단 평가 이후 학습지원 대상자로 구분된 학생들을 파악하고, 지원 방법을 논의하게 된 점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구성원들의 전문성이 부족해서 협의회는 무의미하다. 하반기에 맞춤형 학업성취도 평가가 시행되면, 표집 학교로 선정된 학교에 더해 자율적으로 참여를 결정하는 학교들이 늘어나는 정도가 향후 나타날 변화로 추측된다. 


  과연 교육부가 발표한 기초학력 보장 종합계획대로 시행되면 학습지원이 필요한 학생들이 적기에 적절한 방법으로 지원을 받게 될까? 기존의 시스템과 지원방식을 유지하면서 예산을 조금 늘리는 정도의 변화를 보이고 있는 현재로서는 큰 기대를 갖기 어렵다. 

학습지원 정책의 성공을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우선, 몇몇 교육청이 실시하려고 하는 모든 학교의 학업성취도 평가 강제 시행, 결과 공개 등 과거 일제고사 추진과 다르지 않은 정책은 기초학력 지원을 오히려 방해하는 정책이 될 수 있다. 모든 학교를 강제로 학업성취도 평가에 참여하게 하고 그 결과를 공개하도록 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학교 간 비교와 경쟁을 촉발시킨다. 그러나 이는 과거 사례와 같이 기출 시험지 문제풀이 수업, 학업성취도 평가 대비 수업 등 교육과정 운영의 파행을 야기하게 된다. 


  더 큰 문제는 문제풀이 수업, 평가 대비 수업 등으로 학습지원 선별 검사를 통과한 학생도 실제로는 학습지원이 필요한 학생이었다는 점이다. 즉, 이 학생을 지원 대상에서 누락시키는 결과의 왜곡을 일으키고, 학습지원 대상 학생을 감추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의미다. 이와 같이 기초학력 지원을 방해하는 정책이 마치 학력을 향상시키는 정책으로 둔갑하여 실시되고, 언론 등에서 학력 저하의 문제의 대안으로 학업성취도 평가 전수조사 등으로 거론되는 일이 계속된다면 학습지원 정책은 실패하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또 하나, 기초학력 정책으로 학습지원 대상 학생을 없앨 수 있다고 기대하는 관점도 폐기되어야 한다. 교실 속에는 다양한 원인으로 발달 단계에 맞는 학업 수행을 못하는 학생들이 항상 존재한다. 난독이나 경계선 지능과 같은 학습장애를 갖고 있는 학생, 주의력이 부족한 학생과 같이 개인적인 특성을 갖고 있는 학생이 있고, 빈곤이나 중도입국 다문화 학생 등 환경적인 문제를 갖고 있는 등 학습이 뒤쳐지는 학생은 항상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는 누군가의 잘못으로 인해 발생한 오류가 아니다. 어떤 사회든지 10% 내외의 학생들은 또래가 수행하는 학습을 수행하기 어려워한다. (학습지원 정책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는 핀란드의 경우에도 10% 정도의 기초학력 부족 학생이 발생하고 있다. 장애 학생만 특수교육 대상 학생으로 판별하는 우리나라(특수교육대상학생 비율 1.3%)와 달리 다른 선진 국가에서는 6%~15%까지 광범위하게 선별하여 그에 맞는 학습지원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학습지원 대상 학생이 많이 발생하는 것을 단지 문제 상황으로 간주할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교실 안에 학습지원 대상 학생이 존재하는 상황을 고려하여 상시적인 학습지원 시스템을 학교에 구축하는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기초학력 진단평가를 무조건 반대하는 것도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기초학력 진단평가는 어떤 학생이 학습지원이 필요한 학생인지 아닌지 정도를 판별해 주는 평가이다. 건강보험공단에서 일정 나이가 되면 건강검진을 실시해서 이상 소견이 있는지 없는지 정도를 판별해 주듯, 특정 학년에서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진단 검사를 실시해서 학습지원 대상 학생이 누락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은 지원 정책에서 매우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반대로, 같은 검사를 매년 실시할 필요도 없다. 대상자가 같다면 결과는 유사하게 나올 가능성이 크고, 교사가 수업 중에 만나면서 학습을 어려워하는 학생을 찾아내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지원의 결정적 시기를 고려해서 진단 검사 시행 학년을 정하고, 해당 학년의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진단 검사를 실시한 뒤, 학습에 어려움을 가진 학생이 파악되면, 원인을 정밀하게 찾아서 그에 맞는 지원 방법을 결정하게 해야 지원 대상을 놓치는 일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한 번 파악된 학생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다음 학년에 연계하도록 한다면 매년 진단 검사를 할 수고로움을 덜 수도 있을 것이다. 


  다양한 지원 방법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일도 중요하다. 현재 학교에서 시행되는 학습지원 정책은 학생이 실패한 학습방법을 그대로 반복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학생이 학교 수업을 잘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는 해당 분야의 기초 지식이 부족한 경우도 있지만, 글을 못 읽거나, 유창하게 읽지 못해서 새로운 정보를 실시간으로 습득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이런 학생들은 해당 과목을 반복 학습할 것이 아니라 읽기를 향상시켜 줄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그러나 교육청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들의 전문성이 떨어지고, 프로그램을 시행할 전문성을 갖춘 전문가도 상주하지 못하는 실정에서 학습지원 정책의 성공은 요원한 일이다. 효과가 검증된 좋은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학교 현장에 보급하고, 진단부터 지원까지 전문적인 판단과 지원을 할 수 있는 전문가가 학교에 상주하게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전문가가 학교에 상주하게 하는 방법 중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은 학생을 가르친 경험을 충분히 가진 교사에게 관련된 전문성을 갖출 연수 과정을 거쳐 전문가로 양성하는 것이다. 학교 밖 전문가는 관련 전문성을 갖고 있으나, 학생을 가르친 경험이 없어 학교에 적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10년 이상된 교사들이 관련 전문성을 갖춘다면 가장 확실한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전문성을 갖춘 경력 교사가 학교에서 해당 업무를 총괄하게 한다면 효과적인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게 된다. 


  학생 수가 줄어 교원이 남을 것으로 예측되는 이 때가 전문 교사를 확보할 절호의 기회라 할 수 있다. 물론 해당 분야에 대한 학교 관리자의 전문성도 중요하다. 교감, 교장이 되는 과정에서 반드시 학습지원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게 해서 전문가의 역할을 하거나 관련 시스템을 구축•운영하게 해야 한다. 


  교실 속에는 학습지원을 필요로 하는 학생이 항시적으로 존재한다. 모름지기 교사는 이 학생들을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습을 어려워하는 학생을 돕는 것은 모든 교사들의 책무라 할 수 있다. 교사들이 관심을 갖고 이들을 위한 다양한 수업 방법을 개발하고, 학습을 잘 따라오고 있는지 한 번 더 점검하는 수고가 필요하다. 


  그러나 여러 학생을 상대하는 교사들이 이 모든 학생의 문제를 다 해결해 주기는 어렵다. 그래서 시스템이 필요하다. 학습이 어려워진 아이들이 언제라도 찾아가서 학습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전문적인 교사를 적정 수만큼 배치해야 제대로 된 지원을 할 수 있다. 학업성취도 평가 여부, 진단평가 실시여부, 결과 공개 여부와 같은 무의미한 논쟁을 넘어 제대로 된 지원에 초점을 맞춘 학습지원 정책을 기대한다.


- 김영식(좋은교사운동 전 공동대표)




모두가 특별한 교육 매거진 목차

여는 글_모두가 특별한 교육 창간호
1. 시론
2. 특집
3. 학교이야기
4. 인터뷰
5. 책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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