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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웃음이 Sep 16. 2020

초코파이를 닮은 아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TV 속 초코파이 광고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CM송. 정(情)이 연상되는 추억의 초코 빵.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초코파이. 나는 이 초코파이를 닮은 아이를 알고 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어여쁜 눈짓을 지어주는 아이. 말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은 아이. 피아노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올라오던 아이가 베란다 창가에 서 있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엄마.”



“얘들아, 어서 손 씻어.” 퇴근 후 시댁에 들러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왔다. 집안으로 들어선 나는 가방을 내려놓고 손을 씻자마자 냉장고 문을 열었다. 냄비에 물을 받아 육수 낼 재료들을 넣었다. 야채실에 있는 야채 몇 가지와 두부를 꺼내 들었다. 도마를 꺼내 먹기 좋은 크기로 야채를 썰고 있었다. ‘탁’ 갑자기 주변이 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뒤를 돌아보니 서연이다. 주방 스위치 앞에 아이가 환한 얼굴로 서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보며 소리 없이 웃었다. “고마워, 서연아.”



몸이 무거운 하루였다. 속은 메슥거리고 머리에서 느껴지는 극심한 통증에 지쳐 집으로 들어왔다. “들아, 엄마 조금 누워 있다가 밥 해줄게.” 그대로 소파에 누워 눈을 감았다. 바쁜 발걸음 소리와 함께 사부작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목덜미 사이로 작은 손이 느껴졌다. 그 손은 내 머리를 위로 들어 받치고 그 사이에 베개를 넣었다. 잠시 뒤 이불이 내 몸 위로 덮였다. 따뜻했다. ‘탁’ 감은 눈 위로 거슬리던 환한 거실 등이 꺼졌다. 소근 대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하연아, 쉿! 조용히 해. 엄마 아파서 쉬어야 되니까 방에서 놀자.”



또 왔다. 이놈의 어지럼증. 천정은 빙빙 돌고 나를 집어삼킬 것 같은 공포마저 들게 했다.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헛구역질에 속에 있는 걸 다 비워내고도 또 몇 차례를 들락거리게 만든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데도 이따금 찾아와 나를 괴롭힌다. “엄마, 괜찮아요?” “으응. 서연아, 엄마 좀 누워 있을게.” 방으로 따라 들어온 아이는 팔다리를 주물러주기 시작했다. 때마침 울려온 전화. “ 할머니, 저 서연이예요. 지금 엄마가 아파요. 엄마 계속 화장실에 가서 토하고 어지럽대요. 할머니 우리 집에 와 줄 수 있어요?” 대화 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더 이상 들려오지 않을 때쯤 친정엄마는 나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





우리 부부에게 찾아온 첫 선물. 서연이. 우리는 아이의 태명을 웃음이라 지었다. 이것은 나의 예명이기도 했고 많은 이에게 웃음을 주고 웃음이 가득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아이를 위해 나는 클래식 태교음악을 들으며 초음파 사진을 예쁜 종이에 붙여 스크랩을 했다. 동화책을 읽어주고 피아노를 연주하며 많은 대화를 했다. 산전 우울증이 왔을 때는 내가 안고 있던 여러 가지 걱정들을 늘어놓으며 펑펑 울기도 했다. 그런 기간이 한 달쯤 이어졌다. 그래서였을까. 아이는 마치 태어날 때부터 나를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가 커 갈수록 내 고민은 조금씩 늘어갔다. 집 안팎에서의 내 모습이 너무도 달랐기에. 사실 아이가 내 등 위로 오는 것이 불안하고 두려웠다. 아이를 잡 업어주지 못했다. 머리를 잡아당겨 가발이 벗겨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말을 잘하기 시작했을 때는 혹 어디 가서 머리에 관련된 이야기를 할까 봐 조마조마했다.  그것은 기우였다. 아이는 단 한 번도 화장대 옆 가발에 손을 대지도 가발 걸이로 장난하지도 않았다. 또 어느 곳에서도 내 머리를 만지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내 머리에 대해 이야기  적도 없었다.




“엄마, 퇴근하고 배고플 것 같아서 챙겨 왔어요.” 유치원에서 나오는 간식을 이따금 가져오던 아이. 나는 아이의 마음이 고마워 맛있게 먹었다. 뭔가 뿌듯한 듯 웃으며 지켜보고 있는 아이와 눈이 마주쳤고 나도 함께 웃었다. 알고 있다. 그 또한 아이의 마음인 것을. 세월호 추모회 무대 위에서 시 낭송을 하던 날. 낭송을 마치고 내려와 아이를 안고 어땠냐고 물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나의 떨림이 아이에게 그대로 전해진 것 같았다.




나는 퇴근 후에 늘 아이들이 배고플까 봐 정신없이 저녁을 준비했다. 나의 급한 마음은 습관이 되어 불을 켜는 것조차 놓치는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말없이 불을 켜준다. 피곤해 보일 때면 색종이에 쓴 편지를 들고 싱크대 한쪽에 올려놓고 간다. 소리 없이 등 뒤로 나타나 툭하면 부러지게 생긴 고운 손으로 등허리를 안마해 주고 나면 그 힘이 얼마나 큰지 하루의 고단함 사라지게 만든다.



오늘도 집에 들어와 밥통에 남아있는 밥을 비워 새 쌀을 씻고 있는 내 뒤로 불이 켜졌다. 뒤 돌아 서연이를 보고 나는 고마움의 눈짓을 보냈다. 아이는 마음을 들킨 듯 특유의 미소와 눈짓으로 웃어준다.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서로를 향한 눈짓이 반짝이고 있으니. 나는 알고 있다. 아이의 모든 마음이 사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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