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중세 도시들은 모두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다. 군중들이 모일 수 있는 광장을 중심으로 시청사, 교회가 있고 그 지역을 상징할 만한 조형물이나 인물의 동상이 서있다. 프라하, 뮌헨, 프랑크푸르트, 피렌체, 암스테르담 등이 그러했다.
그리고 이런 중세 도시들은 대부분 바닥이 돌로 된 타일로 되어 있어 울퉁불퉁하다. 이러한 돌로 된 바닥은 목발을 짚고 다니는 사람에게 쥐약이다. 목발 고무가 찢어지기도 하고, 혹 휠체어를 타는 경우 휠체어 바퀴가 펑크 나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 아주 난감한 상황이 벌어진다. 이런 중세도시들은 모두 자동차 문화가 생기기 전에 형성된 도시라 당연히 자동차로 광장까지 접근하기 어렵다. 두 다리가 성성한 사람들은 걸어 다니면 되지만 나같이 목발을 짚고 다니는 사람은 이러한 광장에 접근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마땅치 않다.
일전에 호주 시드니에 갔을 때 처음 빅버스(Big Bus)를 타보았는데 편했다. 빅버스란 유럽 및 미국의 각 관광지를 운행하고 있는 체인점 비숫한 시티투어 버스인데 'Big Bus'라고 하여 '덩치가 큰 버스'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상호(영업상의 회사 이름) 비슷한 것으로 보면 되겠다. 각국의 빅버스가 동일한 상호를 가지고 영업을 하는데 내부적인 경영관계는 모르지만, 버스의 운행 방식이 거의 비슷하다.
이 시티투어 버스는 저상버스이고 일정한 코스로 주요 관광지에 정차한다. 한국에서 출국하기 전에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미리 버스의 운행코스를 살펴보면서 여행 코스를 궁리해 볼 수 있다. 유럽의 도시들은 택시를 잡기 쉽지 않고 어떤 도시는 일부러 택시정류장을 찾아가야 한다. 처음 가는 도시인 경우 어디에 택시 정류장이 있는지 알 수도 없고 혹 잘못 걸리면 빙 둘러 가거나 바가지요금에 당할 수도 있다.
빅버스는 모두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이 탑승할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리프트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나는 목발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리프트나 경사로를 이용하지 않았다) 다른 시티투어 버스처럼 2층 버스로 되어 있어 2층에서 관광을 할 수도 있는데 우리같이 보행이 부자유한 사람은 2층 계단으로 올라가기 불편해서 1층에서 관광해야 한다는 점이 좀 아쉽기는 하다. 버스 1대당 1대의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티켓 값은 버스나 지하철에 비하여 많이 비싸기는 하다.
이런 버스는 Hop On, Hop off로 운영되고 있는데 '아무 때나 타고 아무 때나 내릴 수 있다'는 의미이다. 여행사 전용관광버스로 움직이는 경우 관광지에 도착하면 바쁘다. 가이드가 관광객들에게 '몇 시까지 모이세요'라고 하면 다들 화장실 볼 일 보고 인증 사진 한판 찍고 나면 벌써 소집 시간이 다되어 허겁지겁 버스에 오르기 바쁘다. 여행사를 통한 여행이 아닌 자유여행인 경우 이런 Big Bus를 이용하면 느긋하게 여기저기 어슬렁 거리다가 아무 때나 내가 내키는 시간에 버스를 탈 수 있으니 편하다.
이번 뮌헨 여행 시 도착 다음 날 아침 일정부터 빅버스를 이용하기로 하였다. 한국에서 미리 빅버스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노선을 보고 출발점을 확인한 터라 뮌헨 중앙역 부근에 빅버스가 있을 법한 장소로 걸어가 보기로 하였다. 어렵지 않게 빅버스 정류장을 찾았다. 한국에서 이미 인터넷으로 보아두었던 파란색 빅버스는 내 눈에 잘 띄었다.(다른 도시에서 운행하는 Big Bus는 모두 붉은색인데 뮌헨에서 운행하는 버스만 파란색이다)
뮌헨 빅버스의 노선도
뮌헨 첫날은 알테 피나코테코(Alte Pinakothek)를 방문하기로 하였다. ‘알테 피나코테코(Alte Pinakothek)
'의 의미는 ‘오래된 미술관’이라는 뜻인데 그렇다고 하여 그리스나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아니고 르네상스 정도 시기의 미술품을 전시해 놓은 곳이라고 보면 되겠다.
빅버스의 팸플릿을 보니 알테 피나코테코(Alte Pinakothek)로 가려면 쿤스트할레 정류장에 내려야 했고, 쿤스트할레 정류장은 빅버스의 운행 상 첫 번째 정류장이었다. 그런데 23유로를 내고 첫 번 째 정류장에 내리기 아까워서 나는 운전기사에게 ‘한번 순환코스를 모두 돌고 내리겠다’고 하였다. 그러니 운전기사가 ‘이 버스가 한번 순환하고 다시 오려면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데 그래도 괜찮겠느냐’고 하길래 나는 상관없다고 하였다.
빅버스 안의 모습
빅버스는 팸플릿에 나와있는 코스대로 움직인다. 뮌헨 시내는 여기저기서 공사 중이어서 공사판 가림막이가 설치되어 있던 터라 차량 운행이 원활하지 않았다. 나는 팸플릿에 나와있는 빅버스 노선도와 스마트폰 상으로 보이는 구글 지도상 현재 위치를 확인하면서 다녔다. 그렇게 하면 뮌헨 시내의 전체 개요를 빨리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빅버스는 영국정원을 지나 이자르강을 건너고 다시 다리를 건너 마리안광장부근에 정차하였다.
마리안 광장 부근 (성 피터교회)
뮌헨 신시청사(신시청사가 구청사보다 디자인 상으로 더 올드해 보인다)
뮌헨 구시청사
마리안 광장에서는 유명세에 걸맞게 많은 사람들이 붐비었고 빅버스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타는 장소였다. 이곳에는 한참 정차하는 것 같았다. 내가 뮌헨에 와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붐비는 곳은 처음이다. 비유하자면 서울 명동에 가서 사람구경하는 수준이었다.(서울 명동에 가본 지 하도 오래되어 요즘 상황은 모르겠다.) 주말에 한번 더 왔을 때는 정말 군중들이 많아 약간 과장하면 가만히 있어도 떠밀려 다닐 정도였다. 카페나 레스토랑을 보면 모두들 만원이다. 여기는 오늘의 목적지가 아니므로 버스에서 내리지는 않았다.
뮌헨 시내 주변을 흐르는 이자르 강을 건너는 다리
마리안 광장은 볼 것이라야 시청사, 프라우엔 교회 등 몇 군데일 텐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은 이 유명한 장소에 와본다는 것만으로 즐기는 것 같았다.(나중에 알고 보니 마리안광장 부근에는 내가 몰랐던 관광지가 훨씬 많았다.)
빅버스는 마리안 광장에서 한참 정차하고 나서 다시 움직인다. 순환코스를 마치고 처음 출발한 장소로 돌아왔는데 운전기사는 나에게 뒤에 정차해 있는 뒤차로 옮겨 타라고 한다. 나는 처음에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가만히 있으면 이 버스가 다시 처음 코스대로 운행할 텐데 왜 나에게 내려서 뒤차를 타라고 하는 거지? 나중에 알고 보니 한번 A코스로 운행한 버스는 다음에는 B코스로 운행하는 식이었다. 내가 처음 탔던 버스는 A코스를 운행하였고 다음에 B코스로 운행할 것이니 다시 A코스로 관광하려면 A코스로 운행하는 뒤차를 타라는 이야기였다. 뒤차는 한참 후 다시 운행을 하였고 나는 쿤스트할레 정류장을 정확히 몰라 옆 좌석의 중년 부인에게 물으니 친절하게 알려준다.
쿤스트할레라는 곳에 내려 사방을 보아도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 나는 알테 피나코테코로 가는 길을 또 묻기로 하였다. 지나가는 남녀 일행이 보이길래 알테 피나코테코를 물으니 친절하게 알려 준다. 길을 모를 때는 체면 불고하고 묻는 것이 상책이다. 뮌헨 사람들은 모두 친절히 알려준다. 어떤 경우는 묻지도 않는 내용까지 손짓 발짓하면서 이야기하는데 내가 영어에 대한 히어링(Hearing) 실력이 시원치 않아 다 알아먹지는 못한다. 뮌헨 사람들은 대충 영어 단어만으로도 통한다. 내가 내린 지점은 사거리인데 알테 피나코테코는 대각선 방향으로 건너편에 보이는 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