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랑사 20화

T - 내가 하는 사랑의 시늉

그대라며 불러 세우지도, 시구절을 읊어주지도 못했다.

by 최동준


여느 때처럼 사랑 대신 그의 이름을 입속에 굴리고 있었다. 소식을 들은 나는 시끄럽게 울어댔고 열이 자주 올랐다. 열을 식히러 한강공원에 나가봐도 저 물에 빠져서 차갑게 죽어버리고 싶었고, 동네 남산을 오를 땐 마주치는 돌부리마다 머리를 깨뜨리고 싶었다. 세상이 문제라며 나 자신을 절간에 넣었더니, 자려고 누운 순간 마주친 높은 보에 목을 매달고 싶었다. 그럴 때면 날숨을 모두 뱉고, 숨을 있는 힘껏 참아본다. 이러면 될까 하고.


나를 우울의 끝으로 데려다주는 이가 있다. 나보다 훨씬 키가 작았던 사람, 두 뺨과 코끝엔 분홍빛이 스미던 사람, 고운 능선의 목선과 낮은 오름의 어깨선을 가졌던 사람, 내가 사랑이란 말 대신 낮게 불렀던 사람. 짧은 편지만 남긴 채 목을 매고 찬 몸이 된 사람.


잠시나마 무게를 버텨줬던 밧줄, 머리끝까지 담기는 큰 욕조와 크고 작은 칼날들마저 모두 버렸지만, 이마저도 그이가 내 등을 쓸어주는 기분이 들어서 그만 6층에서 뛰어내리려 했었다.


방에 햇살이라도 드는 날이면 그의 품이 이랬을까 싶어서 거울을 앞에 두고 껴안는 시늉을 한다. 이럴 때면 아무 숨결이 느껴지질 않아서 나도 숨을 있는 힘껏 참아본다. 이러면 될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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