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랑사 22화

V - 숨이 찼다

"사랑해."

by 최동준


그녀에게 왜 '세' 날갯짓인 건 데라며 물었을 땐, 정말 그거밖에 되지 않냐는 표정으로 말을 잃은 듯했다. 내 말은 굳이 날갯짓으로 따라잡을 게 아니라, 그냥 사랑한다는 말을 하면 안 되냐는 건데. 그냥 말하면 되는데.


이렇게 그녀를 집에 바래다줄 땐 별의별 얘길 다 했다. 유치원부터 여중, 여고까지 같이 나온 우리도 참 질기지도 않냐-로 시작해서 내가 키우던 햄스터를 잃어버려 둘이서 싱크대를 뜯어내 버린 것, 중학교 때 그녀가 숫총각 선생님에게 사랑 고백을 했다가 차인 것, 교통사고로 내 다리가 부러졌을 때 그녀가 교양 강의를 빠져가며 수발을 들어줬던 것. 그런 내용들이었다. 물론 여태까지 사랑한다고 말할 기회가 없었다는 건 아니다.


나와는 다르게 그녀는 사랑한단 말을 곧잘 하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취할 때면 알 수 없는 얼굴로 나를 더 오래 바라봐주기도 했다. 언젠가는 영화관의 팝콘에 자꾸 손이 부딪혀서 덥석 손을 잡았더니, 사랑한다느니 뭐니 금방이라도 장난치려 해서 말할 수 없었다.


“바래다줘서 고마워, 사랑해.”라고 그녀가 평소처럼 웃어 보였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쯤, 그 말은 나도 모르게 순식간에 튀어나왔다. 나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얼굴이었음을 기억한다. 드디어 목에 걸려있던 것을 토해냈다고 생각했지만, 집에 돌아와서도 나아지지 않았고, 구태여 말하자면 숨이 찼다.


어쩌면 그녀와 세 날갯짓쯤 멀어서 그 말이 들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 땐, 나만큼이나 그 새도 가쁜 숨을 쉬고 있을 것만 같아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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