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랑사 24화

X - 안경을 닦는다

그의 머릴 쓰다듬어줄 때의 이야기였다.

by 최동준


그가 “사랑이 하나의 결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라며 내 이마를 뚫어져라 보고 있을 때의 난 이미 반쯤 잠긴 눈이었다. 넓은 들판을 본 적 있냐는 내 말을 끝으로 기억나질 않았고, 어느새 눈이 부셔 부스스 깼다. 일찍이 나간 그에게 인사도 없이 보낸 것에 헛헛한 마음이 들었다.


눈이 나쁜데도 집이 아니고서는 안경을 잘 쓰질 않았다. 그마저도 자주 썼다 벗었다 했고.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거라곤 그가 돌아오기 전까지 안경을 깨끗이 닦아두는 일이었다. 수첩과 펜을 가지런히 정리했고, 책장의 먼지를 닦았다. 회식에 돌아온 그의 외투에 탈취제를 뿌리고, 팔과 어깨쯤에서 긴 머리카락을 몇 개를 떼어내고, 따뜻하게 씻을 수 있도록 보일러를 틀었다. 정적의 사랑이 내 일이었다.


넓은 들판의 바람을 보면 하나의 결이 아님을 안다. 거긴 초록의 파도가 이리저리 휘었고, 떨어진 한 방울의 파동처럼 퍼져나가기도 했다. 나는 사랑이 한 결이길 바라는 그의 말을 안다. 강하게 누워버리는 풀들에 주체할 수 없단 것을 안다.


헛헛한 마음으로 안경을 닦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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