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돌비 Oct 11. 2022

소나무의 시작

나무는 모두 식목일에 태어나는 줄 알았어

    백운산을 오르기로 했다. 커피 친구는 제법 산에 가는 사람처럼 배낭을 챙겨 왔는데 그에 비하면 나는 집 앞 공원에 나서듯 맨손이었다. 우리는 정상까지 오른 뒤에 잠시 벤치에 앉아서 쉬었다. 빈손으로 온 나와 다르게 커피 친구는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담아왔고 스틱커피와 종이컵까지 챙겨 왔다. 짧은 산행에도 배낭이 필요한가 싶었는데, 이런 걸 준비해오다니. 내 몫의 종이컵까지 있는 걸 보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맛보고 나머지는 땅에 흘려버려야 했다. 속이 쓰려서 딸꾹질 한 번에 위가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지난 주말 가족들을 만나 운전연습을 하고 난 저녁부터 속이 좋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배가 고파야 할 시간인데 끼니때마다 몸안에서는 음식이 들어오는 걸 거부하는 것 같았다. 특별히 소화할 것도 없어서 소화제 대신 카베진을 두 알 먹었는데 크게 호전되지 않았다. 진짜 사건이 터진 건 그다음 주 월요일이 되고 운서로 돌아왔을 때였다. 나만 사는 집에 오니 마음이 풀어져서 이제야 제대로 한 끼를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스트레스가 쌓였는지 매운 게 땡겨서 마라탕을 시켰는데, 시키면서도 지난번에 별점 리뷰를 약속했다가 도저히 5점을 줄 수 없어서 거짓 리뷰 대신 약속을 어겼던 곳이란 생각이 언뜻 들었다. 하지만 동네 마라탕 가게 중 1위라고 적힌 사진과 만점에 가까운 별점 리뷰를 보자 다시 한번 시도해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주문을 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일이 잘못되었다. 도착한 마라탕을 한입 먹자마자 위에서는 역겨운 걸 빼내려는 듯이 구역질이 올라왔다. 결국 싱크대에 먹은 걸 뱉어내고 구토를 유발하는 남은 마라탕을 싱크대에 다 쏟아부었다. 그 이후로 어떤 음식을 먹어도 소화가 되지 않고 하루 종일 몸 안에 고대로 얹혀있는 느낌이 들었다. 소화제를 아무리 먹어도 나아지질 않았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도 이미 위 안이 꽉 차 있는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한참을 굶고 뭐라도 먹을라치면 누가 속을 쥐어짜는 것처럼 아팠다. 백운산 등산을 하는 날도 여전히 컨디션이 좋지 않아 아침을 먹지 않고 빈속으로 오른 거였는데, 정상에 올라서 마신 커피 한잔에 속이 다시 뒤집어진 것이다. 억울한 건 그러면서도 너무 배가 고팠다는 점이다.


    손에 든 커피를 마시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와중에 커피 친구는 하늘에 흔적처럼 지나가는 희미한 비행기를 보고는 핸드폰을 들어 비행기를 확인하는 앱을 켰다. 저건 어느 항공의 어떤 모델이라고 말하면서 즐거워하는데, 비행기엔 조금도 관심이 없는 나는 그 모습에 어떤 공감도 해 줄 수가 없었다. 조금 더 친한 친구였다면 그게 뭐가 재밌냐고 공격적으로 물었겠지만 커피 친구와 나는 여전히 서로에게 존댓말을 쓰는 사회에서 만난 친구였다. 커피 친구가 두 번째쯤 그 앱을 켰을 때 나는 조심스럽게 비행기를 좋아하냐고 물었다. 커피 친구는 그렇다고 말했다. 나는 한번 더 돌려서 비행기 타는 것도 좋아하냐고 물었다. 커피 친구는 그렇다고 답했다. 비행기를 보는 것도 타는 것도 좋아한다고. 사실 정말 하고 싶었던 질문이 있었다. ‘비행기 조종하는 것도 좋아해요?’하고 물었고 커피 친구는 ‘조종하는 것도 좋아하죠.’하고 말했다. ‘파일럿이 되는 게 꿈이에요.’하고는 내가 뭐라고 반응을 하기도 전에 ‘농담이에요.’하며 뱉은 말을 주웠다. 두 문장의 텀이 너무 짧아서 뱉은 말이지만 주워 담을 수 있을 정도였다. 서둘러 웃으며 농담으로 무마하는 사람을 보면서, 그게 왜 농담이 되냐고 더 물어볼 수가 없었다. 어떻게 조종사가 될 거냐고 왜 조종사가 되기 위해 항공대를 나오지 않았느냐는 식의 질문에 끝없이 시달린 사람일지도 모르니까.


    내려올 땐 백운사라는 절을 거치느라 주차해놓은 곳과 멀어졌다. 우리는 차를 찾으러 걸었다. 얼마 전에 겨울 내내 요긴하게 쓰고 다니던 군밤 색의 앙고라 털모자를 무심하게 세탁기에 넣어 돌렸다가 그 이후로 마땅한 모자를 찾지 못해 맨머리로 다니게 되었는데, 백운산 등산 역시 모자 없이 강행한 산책이었다. 온도는 영하 2도 정도였는데 바람을 맞으며 두 시간가량을 걷자니 이마가 얼얼했다. 귀는 이미 감각이 없었다. 지방이 유난히 많은 내 눈두덩이는 간질거리며 부풀어 올랐다. 차가운 곳에서 식어빠진 기름처럼 딴딴하게. 나는 작아진 눈으로도 열심히 백운산 자락을 살폈다. 평지에 내려와서 올려다보는 산의 옆면도 흠잡을 데 없이 멋있었다. 나는 자꾸 커피 친구에게 미국 그랜드 캐년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는데 큰 공감을 얻진 못했다. 신기할 정도로 조화롭게 생긴 산과 식물들의 모습은 내게는 커피 친구의 비행기와 같은 거였다. 나는 나무가 되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나이 때문인지 요 몇 년 사이에 눈에 들어오는 모든 풀과 꽃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감탄하지 않고 볼 수 있는 나뭇잎이 하나도 없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 사실을 사람들에게 숨기지 않고 말하며 살았다. 그런 나에게 영종도와 운서동은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다운 동네였다. 버려진 공터마다 시야를 가릴 정도로 자라나 엉켜버린 잡풀들과 그 사이를 비집고 자리를 잡은 낮은 소나무들도 경이롭긴 마찬가지였다. 운서동의 식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며 걷는데, 버려진 들판이 온통 내 키만 한 낮은 소나무로 가득 차 있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시야를 딱 가릴만한 높이로 자라 있어서 그 안으로 들어가자 미로처럼 느껴졌다. 커피 친구는 이게 다 소나무 씨가 바람에 날려와 자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얼마 전에 동네를 산책하다가 분지같이 생긴 오목한 곳에 소나무들이 듬성듬성 차오른 걸 본 적이 있었다. 언덕 위에서 내려오며 그 장면을 내려다보는데 꼭 다육이 화분을 보는 것만 같았다. 저기에 왜 소나무를 심었을까? 궁금하면서도 먼지 하나 타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 있는 모습을 보고 여기가 소나무 분재를 하는 소나무 양식장 같은 곳인가? 하고 혼자서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데 영종도 로컬인 커피 친구의 말에 의하면 사람이 심은 게 아니라 주인 없는 땅에 혼자 날아와 스스로 자란 거라고 했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나무는 땅을 파서 인간이 심고 꾹꾹 발로 밟아주고 물을 줘야 겨우 자라나는 거 아니었던가? 그런 게 스스로 자란다고? 스스로 자랄 곳을 찾아서 뿌리를 내리다니. 너무 늦은 시대에 태어난 건지 꽃은 몰라도 나무도 씨앗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최초의 나무형태는 분명 허리쯤만치 자란 줄기로, 삽으로 움푹 땅을 파는 것부터 나무의 생애가 시작된다. 더 생각해보니 세상 모든 나무는 식목일에 태어난 게 분명했다.


    나 홀로 생각에 빠져있는데 동행은 그런 소나무를 좋아한다고 했다. 야자수도 좋다고 한다. 초록색인 나무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남들보다 식물을 아름답게 보는 나는 그 얘기가 잠깐 웃기다가도 한겨울인 지금 온통 갈색과 고동색 그리고 베이지색으로 덮인 산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건 겨울임에도 늘 초록빛을 띠는 침엽수 때문이란 걸 새삼 생각하게 된다. 조금 더 생각해보니 사계절 내내 변함없이 띄는 초록빛 덕분에 겨울에도 색을 잊지 않고 다음 봄을 기다리게 만든다. 산이 온통 푸른 잎으로 뒤덮이는 걸 기대하게 만든다. 소나무의 풍경처럼 당연하게 넘기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자연스러운 게 너무 낯설어서 모두 의도된 거라고 의심하게 되는 건 왜일까? 나는 항상 이곳의 버려진 공터를 바라보면서 빽빽하게 채워진 식물의 봄과 여름과 가을을 궁금해했다. 어떤 색으로 채워질지, 갈색 식물이 모두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나면 내 궁금증이 다 사라질 테다. 그러고 나서도 생각나는 게 이젠 있을 것 같다. 겨울에도 초록색이었던 그 나무들은 어디쯤 있는지. 겨울을 지나고 다른 계절에도 여전히 변함이 없을지.


    커피 친구와 차를 향해 나란히 걷는 동안 우린 소나무 하나를 눈앞에 두고 각자 다른 생각을 했다. 살면서 잠시 시간이 맞아 함께 걷는 듯 보이지만, 긴 시간을 두고 보면 각자의 방향으로 걸을 뿐이었다. 나는 곧 사라질 집을 걱정하고, 이미 사라져서 다시 찾아야 할 직업을 생각했다. 반면 커피 친구는 이곳에서 살고 일하는 걸 언젠간 그만두고 싶어 했다. 앞으로 어디서 살지 어떤 일을 할지 운을 띄우면 되돌아오는 답은 별로 없었다. 학교에서 그리고 회사에서 만난 친구와는 숨만 쉬면 이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나와 커피 친구는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인간 두 명이었다. 하늘에 나는 비행기를 보면 어떤 비행기인지 꼭 확인하고야 마는 사람의 마음을 내가 알리 없다. 우리가 여러 번 떨어트리지 않고 주고받을 수 있는 이야기라곤 커피에 관한 것뿐이었다. 친구가 생겼으니 두 달 정도는 아무도 없던 이곳에 더 머물러도 괜찮지 않을까 했던 생각이 한참 부족한 생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같이 걸을 수 있는 사람을 찾아 의지하고 털어놓고 싶다가도 모든 길은 결국 혼자 걸어야만 한다는 걸 깨닫는 찰나의 순간. 처음엔 시원하게 느껴지다가도 계속 마주하다 보면 이마가 시리다.


    커피학원을 다니면서 집에서는 커피를 마시지 않게 되었고, 운전연수를 받다 보니 운전대를 잡는 게 피곤해지고. 무언가 열을 내고 알아가고 배워간다는 것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있는 시간을 태워서만 얻을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작은 바람에 소나무 씨가 날리 듯, 아무도 관리하지 않은 텅 빈 땅에서 자리를 잡아 무럭무럭 자라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걸까. 이제 내가 알고 싶은 건 그것뿐이다.

이전 10화 하늘에서 내리는 커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