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국비유학
케임브리지에 온지 두 달이 되어간다.
그리고 한국에서 보낸 선편 택배를 얼마전에 무사히 수령하여 정착과 관련하여 우려하던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됐다.
걱정했던(그리고 이제는 모두 해결된) 것 들은 아래와 같다.
첫째, 생필품
영국은 우리보다 선진국이기에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케임브리지 내 Oseyo 등의 매장이 있어 여기의 재료만으로도 거의 모든 한식 요리를 할 수 있으며, 집 근처엔 대형슈퍼마켓인 Aldi가 있어 환율을 감안해도 한국보다 약간 저렴하게 장을 볼 수 있다. 가전가구와 기타 소모품은 한국과 같이 대형매장이나 온라인으로 구매할 수 있다. 아마존 프라임을 이용하면 기저귀, 화장품류 등 자주 주문하는 필수품은 하루만에 받을 수 있다. 식료품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비용은 한국 대비 2배 이상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런던에 유학 다녀온 회사 선배는 "영국에서는 숨만 쉬어도 한국보다 2배 비용이 든다."고 말했다. 불가항력이지만 최근 원화약세로 체감 비용은 2.5배에 가깝다.
둘째, 교통수단(자전거)
우리는 케임브리지에서 자가용을 구하지 않기로 하였기에 도착하자마자 중고 자전거 2대를 구했다. 택시는 비싸고 버스는 느리며 배차간격이 길지만 도보 30분 또는 자전거 15분 이내로 시내 중심가 어느 곳이든 이동할 수 있다. 도로에서도 자전거가 신호 대기 줄의 맨 앞에 서며, 자전거와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뒤따라오는 차들이 천천히 달린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자전거 도난에 대한 경고를 수차례 받아서 두꺼운 D자 자물쇠를 구하고 자전거를 세워둘 땐 항상 잠가두는데 아직 도난 당한 적은 없다. 아이를 태울 수 있는 자전거 리어시트도 구했고 내년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다면 주로 자전거로 등하원시킬 것이다. 매일 수업을 위해 시내로 오가는 필자에게 자전거는 생활 필수 수단이 되었다.
셋째, 집
민간 소유 주택을 렌트하는 것은 까다롭고 복잡하다고 익히 들어 학교 칼리지에서 제공해주는 기숙사를 택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 2층에 위치한 플랫이란 아쉬움과 싱크대 물이 안 내려가는 등의 사소한 문제는 있었지만 칼리지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유지관리 관련 문제는 빠르게 해결되었다. 다른 칼리지 숙소에 비해 시내 중심가나 기차역에서 멀리 떨어져있다는 점이 아쉽지만 인적 드문 주택가에 위치하여 집 밖 정원으로 다람쥐, 고양이, 여우가 출현하는 점은 좋다. 집을 고를 때는 몰랐지만 이 일대가 3~4인 가족이 많이 사는 조용한 주택가라서인지 필자의 아내가 인근 놀이터에서 종종 다른 가족들과 만나고 친분을 쌓고 있다.
넷째, 선편 택배
오늘 이 글을 쓴 계기이다. 한국 우체국에서 9월 초에 보낸 택배(우체국 6호박스 4개. 각 20kg)가 11월 말에 도착하였다. 2.5개월 정도가 소요된 것이다. 도착지 주소를 루시 칼리지 Porter's Lodge로 적어야 했는데, 기숙사에는 택배를 보관하는 Porter's Lodge가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확정된 필자의 기숙사 주소를 도착지로 적었다. 한국처럼 문 앞에 두고 가는 방식일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한국에서 선편 택배를 보낸 후 루시 칼리지 홈페이지를 보다가 그렇게 하면 안 됐음을 깨달았고,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Porter에게 문의하였지만 이런 경우에는 택배가 반송될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좌절했다. 설상가상으로 대전 국정관리원 화재로 인하여 우체국 택배 상태 조회도 불가하였다. 그러나 다행히 영국 내 배송회사 웹페이지에서 송장번호로 반복 조회하다보니 영국 도착 이후에는 배송상태 조회가 가능했고, 필자는 택배가 영국 땅에 도착한 걸 확인하자마자 기숙사 입구 곳곳에 안내문을 붙여 연락처를 남기고 우리 택배가 도착하면 연락달라고 적었다. 택배는 두차례 나눠서 왔는데, 택배기사들은 구름 낀 이른 아침임에도 안내문을 잘 발견해서 우리에게 연락을 주었고 우리는 한국에서 보낸 여름·겨울 옷들과 무거운 가습기 등 모든 물품을 무사히 받았다.
필자가 예상하지 못 했던 것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원화가치는 어디까지 낮아질까?
한국이 선진국 반열에 든 이후 최고 수준에 가까운 파운드화 환율을 보며 기숙사비 등 큰 금액 결제는 신용카드로 결제하거나 페이팔로 할부 결제하여 결제 시점을 지연하는 전략을 택했으나 잘못된 판단이었다. 2025년 11월 25일 현재까지 원화대비 파운드 가치는 계속 오르고 있다. 달러 인덱스와 비교해보면 파운드화가 강세라기보다는 원화 약세 탓임을 알 수 있다. 미리 알았더라도 큰 차이는 없었겠지만, 지금이라도 마이너스 통장의 돈 일부를 외화로 바꿔 두는 것이 나을지 고민된다.
둘째, 집이 중심가에서 멀다.
자가용, 버스, 지하철로 주로 이동하는 한국 도시와 달리 케임브리지의 축척은 보행과 자전거를 기준으로 한다. 우리집에서 중심가까지는 2km 정도로 서울 시내 평균적인 지하철 2개역 거리에 불과하고 도보 30분, 자전거 15분 이내로 이동할 수 있다. 다만 아이를 양육하며 생활하기에는 도보 30분도 부담스럽다. 시내 중심가까지 가는 길에는 케임브리지 내에 몇 안 되는 경사로가 있고 보행로가 좁아 유모차 이용이 쉽지 않은 점도 불편을 가중한다. 학생식당과 도서관이 위치한 칼리지 밖에 집이 위치한다는 점도 많이 아쉽다. 집이 칼리지 울타리 내에 위치했다면 안에서 아이를 키우기도 좋고 (칼리지 내에는 차량 출입과 자전거 이동이 금지되고 일반적으로 학생과 교직원만 출입할 수 있어 아이들이 돌아다니기 안전하다.) 필자도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집을 오가는 것이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여기서 가장 자주 이용하는 시설인 대형 슈퍼마켓이 집에서 도보 5분 이내로 가깝다는 것이다.
셋째, 칼리지는 안전하게 지망했어야 한다.
루시 칼리지는 필자가 지망한 칼리지는 아니지만, 배정된 후에는 최악은 아닌 위치(중심가에서 엄청 먼 호머튼, 거튼)와 가족 기숙사 입소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전화위복이라 여겼다. 그렇지만 여기 와보니 필자가 당초에 파악한 것과 달리 중심가에서 훨씬 가까운 칼리지들도 가족 기숙사를 갖고 있는 경우가 있었으며, 입소도 용이했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를 미리 알았더라면 칼리지 지원 시에 가족 기숙사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상대적으로 인기가 많은 Gonville과 Selwyn College를 1, 2 지망에 고집하기 보다는, 중심가에서 꽤 가깝고 인근에 가족 기숙사 플랫도 여러 호를 갖춘 Darwin이나 가족 기숙사가 칼리지 울타리 내에 있고 부지 규모와 재력이 큰 Churchill 등을 1지망으로 지원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전혀 예상할 수 없던 요인도 숨어있었다. 올해부터 영국 정부는 이민 정책 강화의 일환으로 국비 지원 유학생이 아닌 이상 1년 석사 유학생의 가족에게는 동반자 비자를 발급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케임브리지에 거주하는 신입생 가족이 대폭 줄어들었다고 한다. (작년까지 아이로 가득 찼던 처칠 칼리지 내 놀이터가 올해는 텅 비었다는 얘기도 들었다.) 사실 상황이 평시와 같았다면 가족 기숙사 입소가 더 어려웠을 것이고 입학 확정과 기숙사 신청이 늦은 필자는 루시에서조차 가족 기숙사를 받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넷째, 트럼프 효과
이건 케임브리지에 입학한 필자에겐 긍정적인 요인이다. 트럼프 정부 반 이민 정책의 일환으로 외국인 학생에 대한 미국 대학 장학금이 줄고 중국 등 특정 국가 유학생의 입국이 제한되어, 같은 영미권 국가인 영국이 유학생의 대안으로 부상하였다. 필자 주변에도 이 정책의 영향으로 케임브리지를 택하였다는 학생이 많았으며, 중국인 학생 중에는 미국 대학원에 합격하였음에도 비자가 나오지 않아 케임브리지로 선회한 경우도 있었다. 반대로 입학 경쟁은 평소보다 더 치열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어쨌든 필자는 무사히 입학한 이상 예년보다 더 강한 경쟁을 치르고 들어온 인재들과 동기가 된 셈이다.
미국 내 외국인 신입생 등록률이 예년 대비 17% 하락하였다. (출처: BBC, '25.11.17.)
케임브리지 1년 생활의 목표는 졸업, 연구보고서 작성, 가족과의 시간이다. 도시에 잘 적응했기 때문에 이제 공부만 잘 하면 된다. 2주도 남지 않은 방학을 무사히 맞이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