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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장단콩 마을에서~

by miso삼삼


이름마저 설레는 ‘꿈꾸는 여행자’.

육 주 동안 이어진 강의는 멈춰 있던 내 시간에 바람을 들였다. 지난한 세월을 건너온 사람들끼리라 그런지, 서로의 주름 속 이야기가 따뜻하게 겹쳐졌다.


여섯 주 동안의 여정이 끝난 지금도 우리는 달에 한 번씩 얼굴을 맞댄다. 일곱 멤버 중 윤은 르완다의 하늘 아래를 걷고 있고, 수는 손주들의 웃음 속에 머물고 있다. 다섯 남은 사람들, 서로의 안부가 계절의 인사처럼 이어진다.


오늘, 우리 다섯은 장단콩 마을로 향했다. 민통선의 철망 뒤로 가을이 숨 쉬고 있었다. 검문소 앞에 잠시 멈춘 차 안으로 서늘한 바람이 스며들었다. 신분증을 맡기고 경계를 넘자, 마을은 느릿하게 우리를 맞았다.

콩잎이 흔들리는 소리는 마치 연인의 속삭임 같았고,

들녘의 벼들은 마지막 햇살을 품은 채, 황금빛 물결이 되어 졸고 있었다.

점심상에 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된장의 구수한 냄새가 마음을 다독였다.


식사 후 천천히 마을길을 걸었다.

길가의 들꽃이 바람에 눕고, 낙엽 하나가 발끝에서 돌아섰다. 고요한 들판 위로 바람이 흘러갔다.

그때, 숙이 낮게 말했다.

“이제 겨울이야. 가을옷이 울고 있어."

그 한마디에, 다들 조용히 웃었다. 말없는 공감이 우리를 감쌌다. 모두의 발걸음이 천천히 같아졌다.


도라산 평화 공원, 오래된 사진들이 우리를 맞았다.

1950년대의 개성, 기와지붕 위에 비가 머물고 있었다.

‘아이쓰크림, 아이쓰케키’라 쓰인 간판이 몹시 사랑스러웠다.

그 시절의 여인들은 한복 차림으로 웃고 있었다.

아이들은 함진아비를 따라 뛰었고, 청아한 웃음소리는 흑백의 시간 위에서 여전히 빛났다.


시대가 바뀌어도 사람들의 기쁨은 같은 빛깔이었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 사랑하고, 기다리고, 때로 이별하면서, 다시 길을 걷는다.


오늘 장단콩 마을의 가을은 깊었다.

콩잎들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계절의 속살이 드러났다.

나는 생각했다.

삶이란 결국,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흔들리며 서 있는 것이며, 다시 피고, 다시 스러지면서도 여전히 꿈꾸는 여행자로 남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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