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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독일행 초인 용쌤 Mar 26. 2018

악몽에서 깨어나기

 


  한때는 새엄마를 죽이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 여자에게 두들겨 맞았던 기억이 떠오르면 나도 모르게 이를 악물게 되고, 몸서리를 쳤다. 그 여자와 함께했던 3년 6개월 동안 내가 먹었던 건 마늘장아찌와 김치, 밥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눈칫밥을 먹었던 까닭에 배부르게 먹었던 적이 없었다. 변비와 설사에 시달렸고, 영양실조가 아닌가 싶을 만큼 몸은 말랐다. 오늘날 흔히 아동학대라고 부르는 그 일들은, 내 몸에 깊게 각인되었다. 내가 마른 몸을 싫어하고, 운동을 하게 된 이유도 이와 무관치는 않을 것이다. 


  악몽 같은 4년여의 시간을 보낸 뒤 나는 서울에 사는 친어머니 집에서 살게 되었다. 너무 못 먹고 자란 나머지 초등 시절 내 키는 5~60명 전체 중 10번 대였다. 중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작은 키와 깡마른 체격은 여전했다. 같은 반에 덩치만 믿고 친구들을 괴롭히는 애가 있었는데 하루는 그 녀석과 시비가 붙었다. 나보다 머리 하나가 더 있는 녀석은 큰 덩치로 밀어붙이더니 나를 바닥에 눕히고 발로 밟았다. 나는 태아처럼 웅크리고 있었고, 머리통만큼이나 큰 녀석의 발이 내 몸을 짓이겼다. 


  맞다 보면 확실히 매에 무뎌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진짜 아픈 곳은 따로 있었다. 유리처럼 깨져 버린 나의 자존감. 일방적인 싸움 끝에 나는 내 한 몸도 지키지 못하는 바보가 되고 말았다. 같은 반 친구에게까지 맞아야 하다니, 내 자신이 너무 바보같이 느껴졌다. 싸움이 끝난 교실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지만 나는 더 이상 일상으로 복귀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의 모습 그대로 살아가고 싶지 않았다. 


  발에 짓밟힌 그날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윗몸일으키기와 팔굽혀펴기를 시작했다. 엄마를 졸라 구입한 아령으로 팔운동도 했다. 기초적인 체력 운동을 마치면 재빨리 숙였다가 스피링처럼 튕겨 일어서며 펀치를 날리를 연습에 돌입했다. 상대의 선제공격을 피하고 반격을 가하는 연습이었다. 누구에게 따로 배운 건 없었다. 그저 tv나 무술 영화를 보며 따라했을 뿐이다. 피하고 때리면 이길 것이라는 생각으로 동물적인 행동을 무수히 연습했다. 거친 숨을 토하며 허리 숙이기와 주먹 휘두르기를 반복했다. 


  피하고 때리기의 반복 횟수는 매일 무조건 100회 이상이었다. 같은 동작을 반복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매일 횟수를 갱신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힘이 조금 붙은 뒤로는 아령을 손에 쥐고 피하고 때리기를 시작했다. 팔을 들기도 힘들 만큼 땀에 전 날에는 가만히 앉아 숨을 고르며 머릿속으로 싸우는 방법을 연구했다. 

  숙제를 빠뜨리는 날은 있어도 훈련을 쉬는 날은 없었다. 5월의 따사로운 나날이 어이지는 가운데도 숙였다 휘둘렀다를 반복했고, 더위가 시작된 6월에도 팔굽혀펴기를 멈추지 않았다. 기말고사를 치르던 7월에도 교과서 대신 아령을 들었다. 방학식을 하던 날에도 나는 방중 훈련표를 짰다. 방학은 훈련하기 딱 좋은 시간이었다. 당시 나는 어머니가 운영하는 미용실에서 낮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하루는 거울을 보며 펀치 날리는 연습을 하다가 아령을 놓치는 바람에 거울을 깨뜨린 적도 있었다. 그래도 훈련은 계속되었다. 


  2학기가 시작되고 얼마나 지났을까? 반년이 흐르는 동안 내 몸은 날렵해지고 세졌다. 아직 체격은 왜소했지만 이제는 그 친구와 붙어도 질 것 같지 않았다. 기회는 금방 찾아왔다. 나를 짓밟았던 그 녀석이 다시 시비를 붙여왔다. 연습은 배신하지 않았다. 덩치만 믿고 달려드는 녀석을 나는 보기 좋게 때려눕혔다. 다시는 나에게 덤비지 못하도록 흠씬 패주었다. 


  그러나 그 사건이 있은 뒤로도 내면의 분노는 사라지지 않았다. 우울하고 충독적인 나는 감적을 해소하지 못한 채 키만 자라고 있었다. 어쩌면 고등학교 시절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했던 이유가 제어하지 못하는 분노 때문이었던 것 같다. 새엄마에게 맞을 때마다 나중에 크면 반드시 찾아와서 죽이겠다고 되뇌었던 그 마음이 이제는 어리석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감정만큼은 어쩌지 못했다. 군대에서 책을 접하기 전까지 말이다. 


  이병 시절, 나의 동기 중 한 명은 대학생이었다. 그것도 이름만 대면 다 인정하는 명문대생이었다. 나는 그 동기가 부러웠다. 뭔가 내 자신을 바꾸고 싶은 마음에 가까이 지내려고 했고, 방법을 묻기도 했다. 책을 만나게 된 계기였다. 갓 입대한 이병에게 책이 무슨 말인가? 어렵게 구한 책을 바지 속에 숨기고 화장실에 숨어들어서 까막눈을 열기 시작했다. 시간도 환경도 능력도 여의치 않아 한 페이지를 읽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짬밥이 차고 난 뒤에도 한 달에 2~3권 정도 많아야 5권 정도를 읽는 데 그쳤다. 



  책은 맘껏 읽을 수 없었지만 대신 생각하는 시간은 많아졌다. 위병이나 보초를 서고, 잡초를 뽑거나 삽질을 하다가도 가끔씩 먼 산을 바라보며 상념에 사로잡혔다. 제대하면 돌아갈 집은 있지만 딱히 할 게 없는 인생이었다. 군대가 좋을 리 없겠지만 때때로 제대가 두려울 때가 많았다. 그럴수록 책에 더욱 의지했다. 책에서 읽었던 좋은 글귀를, 책을 읽을 수 없는 시간에 되새김질하며 실천해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러다 만난 네 글자가 '역지사지'였다.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그렇게 가정적인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건축업을 했던 아버지는 한 번 밖을 나가면 한두 달에 한 번 집에 올까 말까 싶었다. 기껏 집에 들어와서는 살림을 때려 부수고 새엄마를 때리기 바빴다. 밖에서는 집을 지어주고, 안에서는 집과 자신을 때려 부수는 남편.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나와 형에게 옮아온 것이리라. 그렇게 상념에 잠겨 있다 보니 새엄마가 참 불쌍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 정말 불쌍했고 너무 가여웠다. 


....아직도 모르겠다. 인생이라는 게 왜 이렇게 힘든 것인지. 그러나 최소한 한 가지는 알게 되었다. 분노와 복수, 힘은 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대신 내게 필요한 건 따로 있었다. 이해와 용서, 그리고 책....이들이 나를 악몽에서 깨어나게 만들 수 있으며, 내 삶을 정상으로 돌려놓으리라고 나는 믿기 시작했다. 


- 행복한 자기계발자 초인 용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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