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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독일행 초인 용쌤 Mar 22. 2018

지지않아 내 인생

 2009년 12월 26일부터 2010년 12월 25일까지 정확히 365일 동안 나는 520권의 책을 읽었다. 처음 '하루 한 권 책읽기'를 목표로 시작한 1년 프로젝트는 155권을 초과 달성하며 막을 내렸다. 그때 내 나이 스물아홉이었다.


내 인생은 시작부터 꼬여 있었다. 볕이 들지 않는 집은 우울했고, 가난했다. 나는 간신히 숨만 쉬고 잠만 자면서 사춘기 시절을 보냈다. 좋은 대학에 가서 사회의 어엿한 일원이 된다는 건 내 계획에 없었다. 미래를 말하는 건 남의 이야기였다. 공부는 그들만의 리그였다. 어떻게 크는 게 아름다운 어른이 되는 건지 내게 모범이 되어준 사람은 없었다. 울타리 밖으로만 돌았다. 고등학교 시절은 책보다는 오토바이나 법원, 친구들이 더 가까웠다.


그러다 군대에서 뒤늦게 철이 들었다. 몸으로 하는 일이라면 다 자신이 있었지만 몸만으로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었다. 머리를 채워야 내 삶을 바꿀 수 있겠다고 믿고 이등병 시절부터 책을 접했다. 처음 몇 년 동안은 책을 손에 쥐기만 해도 뭔가 미래를 그려볼 것 같았다. 가슴이 뛰었다. 삶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독서 근력이 없었다. 한 달에 2~3권의 독서로는 아무런 변화도 이끌어낼 수 없었다.


1일 1독을 하게 된 건 제대하고도 한참 뒤였다. 스물여덟 살에 강남에서 6개월짜리 스파트라 영어프로그램에 등록해서 영어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때 원장의 지인이자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유명 저자가 특강을 왔다. 나는 뭐든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1년 동안 매일 한 권씩 책을 읽고 1년 뒤에 저를 찾아오세요' 그가 내민 과제를 덥석 물었다. 재고 따질 겨를이 없었다. 본래 승부욕이 강했던 까닭도 있었지만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절박했다.


나의 불쌍한 어머니는 유치원 때 사주신 위인전집을 아직까지 버리지 않고 보관하고 계셨다. 돌이켜 보면 어머니는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른의 독서, 성숙한 독서라는 게 뭔지 몰랐던 나는 어머니가 간직한 위인전집을 매일 한 권씩 읽기 시작했다.



한국 위인 30권, 세계 위인 30권 모두 60권의 책이 나의 첫 독서목록이었다. 책 한 권을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은 2시간 남짓이었다. 책 읽는 습관이 없는 내게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매일 일정한 시간에 책을 읽는 게 편안해졌다. 한 권을 완독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1시간으로 줄었다. 그렇게 60권 전집을 다 털고, 집에 굴러다니는 책들을 집어들기 시작했다. 물론 여전히 아이 시절에 읽음직한 책들이었다.


그렇게 100권 정도 읽었을 때 첫 번째 슬럼프가 찾아왔다. 아마도 조급증이 앞섰던 모양이다. 100권을 읽었는데 왜 나는 아직 제자리일까? 계절은 바뀌고, 빨리 돈 벌어야 하는데 지금 뭐하고 있는 건가? 인생이 달라질까? 회의심이 식은땀처럼 등허리를 적셨다.


200권이 가까워질 무렵에 두 번째 슬럼프가 찾아왔다. 책을 읽으면 뭔가 남는 게 있어야 하는데 너무 읽는 데만 정신이 팔린 건 아닐까? 몇 권을 읽었는지 권수 채우는 데만 급급한 건 아닌가?


내게 독서는, 마치 지나가던 중이 이 집에 우환이 꼈다며 알려준 액막이 처방이나 혹은 소원을 들어준다는 어느 마법사의 이야기였는지 모른다.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서 동쪽을 향해 100번 절을 하세요. 그러면 100일 뒤에는 당신의 소원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확신이 없었던 까닭에, 그 때문에 슬럼프가 찾아온 건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너무나 책에 내 삶을 집중했던 까닭에, 그 때문에 겁이 났던 건지 모른다.


나는 이 부정적 감정을 누르고, 기대감을 되살리고, 사태를 바꿀 만한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그때부터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마음이 흐트러질 때는 과거의 독서기록을 꺼내 보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마음을 다잡을 때마다 '이번에는 지지 않겠다'고 꼭 다짐했다. 1일 1독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 나는 인생의 쓴맛을 세 차례 맛본 전력이 있었다. 체육 교사가 되겠다고 준비했다가 실패하고, 경찰 공무원이 되겠다고 준비했다가 또 실패했다. 늦은 나이에 지방에 있는 대학교에 편입했다가 한 학기만 다니고 때려치웠다. 실패는 익숙해지지 않았다. 위축되는 마음도 없진 않았지만 그보다는 걷잡을 수 없이 분노가 솟구쳤다. 지기 싫다는 생각을 꼭 붙잡고 매번 슬럼프를 이겨냈다. 그러다 나의 승부욕에 기름을 부은 일이 생겼다.


나보다 먼저 프로젝트를 시작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마침 1년 365일을 완주했다. 그가 1년간 읽은 책은 총 420권이었다. 그 무렵 내가 읽은 책은 채 300권이 되지 않는다. 지고 싶지 않았다. 승부욕에 다시 발동을 걸었다. 하루에 2~3권씩, 1주일에 총 15권씩 읽어갔다. 내 목표는 이미 365권이나 420권이 아니었다. 아무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높이 오르고 싶었다. 최종일, 내 독서목표의 마지막 숫자는 520이었다.


520권은 내게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벌써 8년이 훌쩍 지난 요즘도 그때 기억이 떠오른다. 일상이 조금 게을러졌다 싶을 때, 삶이 잘 풀리지 않는 것 같다고 여길 때, 그때 '520'이라는 숫자와 함께 마법 같은 주문을 떠올린다. 아직 이기는 게 익숙하지 않은, 그러나 이기기 위해서는 지지 않는 법부터 배워야 했던 내게 가장 큰 그 주문을 떠올린다.


지지 않아, 내 인생


- 행복한 자기계발자 초인 용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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