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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로 Apr 24. 2023

은밀하게(?)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탐색했다

제27화

[이 글은 현재 영어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는 제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 자리에 오게 되었는지를 연대기로 정리하는 시리즈 글입니다.]






한 번 물꼬를 트니 마트 시식 코너처럼 감질나긴 했지만 학생들이 하나둘씩 모집되었다. 


네이버 카페에서 직접 구한 과외는 오롯이 수업료를 받을 수 있지만 중간에 중개업체를 통하면 많게는 첫 달 수업료의 100%, 적게는 60%에 해당하는 수수료를 떼이고 받았다. 


30만 원짜리 수업을 하면 한 달을 무료봉사 하거나 12만 원을 받고 수업하는 꼴이다. 


하지만 한 달만 수업하고 그만두는 학생은 많지 않으니 꾹꾹 참으며 버텨냈다. 


수도권 4호선 인덕원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금정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 병점역에 내린 뒤 27번 마을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학생의 수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편도 1시간 25분, 왕복 3시간이 가까이 걸리는 여정이었지만 상관없었다. 


학생이 원하는 시간에 수업을 맞추다 보니 밥때를 지키지 못해서 식빵이나 냄새나지 않는 빵을 싸서 다녔다. 


코로나가 생기기 한참 전의 일이라 길거리를 걸어가면서 우적우적 먹었다. 


추운 겨울에는 사람이 별로 없는 버스 맨 뒷자리에 떨어져 앉아 부스러기가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며 몰래몰래 기사님과 다른 승객들의 눈치를 보며 조용히 먹기도 했다. 


교재와 프린트를 잔뜩 이고 지고 다니느라 백팩을 메고 다녔는데 겨울엔 따뜻해서 좋았지만 여름엔 등어리에 백팩 모양으로 땀이 나 옷이 젖었다. 




새로운 학생 수업을 시작할 때마다 동네를 사설탐정 코난처럼 은밀하게(?)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탐색했다. 


아마 학습지 선생님이나 방문판매원이라면 공감할 텐데, 그 대상은 바로 동네의 공중 화장실. 


학생 집에서 볼일을 보는 것이 민망하기도 하고, 때론 가족이 아닌 이가 화장실을 쓰는 것을 불쾌해하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수업 전후로 공중 화장실에서 볼일을 해결 한 뒤 이동하다 보니 만렙 공중 화장실러가 되었다. 


보통 공원이나 큰 상가 건물에 하나씩 있어서 찾기 어렵진 않았다. 


국민의 세금으로 지어진 공원 화장실! 넓은 마음으로 상가 이용객에게 개방하는 무료 개방 화장실! 


고마운 마음에 공원 화장실에서 청소 미화원을 만나면 공손히 인사하고, 한 번씩 상가에서 커피를 사거나 편의점이라도 이용하곤 했다.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시리즈 초반부터 보기>


1화 영어 이름으로 제니퍼를 정했는데 철자를 모르겠다

https://brunch.co.kr/@25d4710156dd489/199

2화 내가 수업 시간에 최초로 ‘외운’ 영어 문장

https://brunch.co.kr/@25d4710156dd489/201

3화 별스럽지 않은 날의 퉁퉁 불은 오뎅꼬지

https://brunch.co.kr/@25d4710156dd489/204

4화 문제는, 나는 그들과 비슷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https://brunch.co.kr/@25d4710156dd489/206

5화 나는 동그라미 모양인데 그 회사는 별 모양이라서

https://brunch.co.kr/@25d4710156dd489/207

6화 경력직으로 입사한 나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https://brunch.co.kr/@25d4710156dd489/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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