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화
어느새 휴직 기간이었던 3개월이 끝나갈 무렵, 회사에 복직 의사가 없음을 밝히고 최종 퇴사 절차를 밟았다.
같은 팀이었던 파트장님, 유능한 동료, 첫 파트에서 함께 도와주었던 팀원 모두에게 짧은 인사를 건넸다.
이직해 온 이 회사에서 오랜 시간 근무하지 않았던 터라 인사를 나눌 이도, 정리할 것도 단출했다.
이렇게 참 짧았던 3년 반, 전 회사와 이 회사에서 모든 조직 생활을 졸업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식날엔 신나고 명예로운 느낌이었는데. 패배자처럼 못 버티고 회사를 나가는 느낌이 영 유쾌하진 않았다.
그렇지만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글처럼 내가 틀린 것이 아니라 그저 이곳이 나와 맞지 않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사원증을 반납하는 것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3개월 동안 많은 의지가 되어주신 정신과 원장님과 상의 끝에 상담과 약도 일시 중단하기로 했다.
혹시 증상이 심해지거나 견디기 힘들면 곧바로 다시 병원에 방문하라는 말과 함께 원장님은 웃으며 가벼운 목례를 내게 전했다.
새햐얀 도화지에 나침반 없이 올라선 기분이었다.
어느 방향으로 갈지, 무슨 색으로 채울지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무(無)의 상태.
플러스 마이너스 0.
숨이 턱턱 막히는 여름과 손끝 발끝이 매번 얼었던 겨울이 한 바퀴를 도는 동안 나는 주 7일을 일했다.
회사완 달리 내가 일하는 만큼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점.
나의 한계를 한번 시험해 보고 싶다는 열망.
병아리 같은 예비 중등부터 인생 다 산 것 같은 말투를 하는 예비 어른 고3까지 대부분의 아이들이 아직 순수하다는 사실.
세 가지 이유가 나를 쉼 없이 일하게 했다.
학생 집에 들어설 때는 카메라 액션에 들어간 배우처럼 항상 웃고 밝은 모습을 준비했다.
그 덕에 학부모 후기에는 선생님이 밝고 활기차다는 의견이 많았다.
여전히 학생들마다 동네가 달라 이동 시간이 길고 고생은 했지만 그 덕에 동네별로 맛있는 맛집을 알게 되었고 여러 학군의 아이들을 통해 정보를 쌓을 수 있었다.
단어장 휘날리고 새 교재 쌓아가며 수업하던 어느 날, 문득 머릿속에 뭉게뭉게 희미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렇게 방문과외를
몇 살까지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