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자 Jul 25. 2017

그 여行자의 집 (30)

2017년 가을, 서른셋 재현의 그 해. #30

30.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핸드폰이 울렸다. 지금 쓰고 있는 글을 담당하는 출판 편집자이자, 데이트 상대인 은희였다. 그녀는 오늘도 늦게까지 야근이라며 내일 오전 약속을 오후로 미뤄도 되겠냐고 물었다. 나는 차라리 잘 되었다 싶었지만 약간은 서운한 듯, 하지만 배려하는 듯한 말투를 담아 그녀에게 알았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소주 한잔이 생각나는 밤이다. 하지만 마땅히 누구에게 전화를 걸어 자리를 만들 수 있을지 떠오르지 않았다. 가끔 보는 대학 동창도, 군대 선후배도, 글쟁이 친구도 적당한 사람 같지 않다. 단아를 7년이나 만났지만 그녀를 잘 아는 내 주변 사람이 많지 않았다. 편하게 전화를 걸어 "그 쌍년이 만나자고 하더라. 나보고 고맙대. 시발."이라고 시작해 꺼억꺼억 마음속에 있는 말을 풀어내고 서러움을 토해 남은 잔해를 씻어내는데 함께 해 줄 그런 사람이 아무도 생각나지 않았다. 결국 맥주 두 캔과 과자를 사 집으로 돌아왔다. 부모님이 요즘 한창 짓고 있는 지방의 별장에 가신 터라 큰 집이 텅 비어 있었다. 불을 켜고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켜고 맥주 캔을 땄다. 갑자기 어떤 그리움이 올라왔다. 그녀의 집에서 그녀와 함께 마주 앉아 술을 마시며 시시콜콜한 수다를 하던 시절의 따뜻함이 생각났다. 명확하게 말하자면 나는 그녀가 아니라 그녀와의 시절, 그 순간, 그 집의 공기가 느낌이 그리운 것 같다. 그게 아마도 그녀가 말했던 집이려나. 그녀는 이제 그 집을 찾은 것일까? 아니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일까? 그녀를 만난 내 심정은 씁쓸하고 참담했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랑했던, 누구보다 나를 사랑해줬던 그녀가 행복해 보여서. 나는 그녀 옆에 없지만 내가 그녀와 함께 꿈꾸던 그 삶보다 더 잘 살아주고 있어서. 어쩌면 그 삶에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아서 할 수 있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그건 처음부터 우리 둘이 함께 이룰 수 있는 꿈은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이제 어떻게 살려는 것일까? 

나는 대체 어떻게 살고 싶은 것일까? 


더 이상은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을 것만 같은 그 여자의 집이 궁금했다. 그녀가 정말 소망을 이루며 잘 살고 있는지. 



프로젝트 여행자의 집, 네 번째 이야기 中 : 자세한 이야기는 들어가는 글 참고 

그 여行자의 집 : 1장, 단아의 이야기  |  2장, 경재의 이야기 | 3장, 민주의 이야기 | 4장, 재현의 이야기




- 그 여자의 집 끝.  


이전 29화 그 여行자의 집 (29)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