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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자 Jul 25. 2017

그 여行자의 집 (29)

2017년 가을, 서른셋 재현의 그 해. #29


29. 

 그녀의 눈빛에 애정과 슬픔이 차올랐다. 내가 미련을 부려 그녀를 잡고 싶은 생각이 들만큼. 그래도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녀는 다시 돌아올까? 그러려고 만나자고 한 것일까?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꼭 한번 만나고 싶었어. 이게 미련 같기도 하고 우리가 가진 관념상 희망 없는 사이엔 해선 안 될 나쁜 짓 같기도 한데. 네가 괜찮다면 만나서 이야기해주고 싶었어. 늦었지만 그동안 정말 고마웠다고. 내게 일어났던 수많은 좋았던 일, 나빴던 일. 네 덕분에 더 좋았고 견딜 수 있었다고. 그래서 앞으로 보지 못하더라도 어디서든 늘 널 응원할 내 마음을 알고 든든했으면 좋겠다고 말이야.」  

그냥 떠보는 말일까? 아니, 그녀는 진심으로 끝을 맺기 위해 나를 찾아온 걸까. 순간 잠깐이나마 상상했던 헛된 희망, 잔인한 교만의 감정들이 파도처럼 나를 덮쳐 화와 당혹스러움이 일었다. 

「혹시, 요즘 누구 만나?」  

이런 상황에서 왜 그런 질문을 한단 말인가. 스스로에게 혐오스러움이 치밀었다. 그녀는 두어 번쯤 눈을 껌벅이더니

「아니.」 

라고 감정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말을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갈등하다가 

「난,」 

이라고 말을 꺼낸 찰나 그녀가 말을 이었다. 

「나 다음 주에 고흥으로 내려가. 엄마가 살던 집. 그 집에서 살려고.」  

「어머니 돌아오셨어?」  

「아니.」  

「어머니 기다리게?」  

「아니. 벌써 사라진 지 3년째야. 아직까지 기다리지 않고 원망만 했는데 이제 와서 기다리는 게 무슨 소용이겠어. 괜히 미련 부리는 거겠지. 그냥, 거기서 살려고. 현재로선 내가 쓸 수 있는 유일한 빈 집이니까. 매달 월세를 낼 필요도 없고, 마음대로 바꾼다고 뭐라고 할 사람도 딱히 없으니. 그러다 엄마가 돌아오면 같이 살지 뭐.」  

그녀가 개구지게 웃는다. 진심인 걸까? 대체 시골 가서 뭘 하고 살려고. 일자리 구하기도 어려울 텐데. 하지만 그런 말은 건네지 않았다. 그건, 그녀가 내게 건넬지언정 내가 건네기엔 낯선 말 같았다. 아마도 우리의 관계에 혹은 각자 자신들에게 정말이지 변화가 생겼나 보다. 

「그래. 왠지 너라면 잘 살 거 같아.」 

「응, 그냥 존재하는 걸로 살아보게. 무리해서 노동하지 않고, 뭔가에 쫓기지도 않고. 여행하는 동안 한국 소설책이 정말 그리웠거든. 책 열심히 보다 그도 정 심심하면 뭐든 하고 싶은걸 찾아 하겠지.  어쩌면 그러다가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뭘 정말로 좋아하는지 찾을지도 모르고.」 

아득함이 느껴졌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우리의 거리가 가만히 있는데도 조금씩 멀어지고 있는 것처럼. 나는 편안해진 마음과는 달리 제대로 멋지게 인사를 하지 못하고 그녀와 헤어졌다. 두고두고 이 장면이 떠오르고 후회가 될 것만 같았지만, 내가 가진 순발력이, 쿨함이 이것밖에 안 되는 걸 어찌하겠는가. 잘 가, 내 사랑, 내 소중했던 청춘이여. 



프로젝트 여행자의 집, 네 번째 이야기 中 : 자세한 이야기는 들어가는 글 참고 

그 여行자의 집 : 1장, 단아의 이야기  |  2장, 경재의 이야기 | 3장, 민주의 이야기 | 4장, 재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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